51834-note

이름없는공연의 518 34주년 공연기획.
 
이름없는공연은 1980년 그날 이후 16년간의 침묵끝에
17주기가 되던 1997년에 광주아닌 곳 서울에서
첫 518공연을 가졌습니다.
16주기에 광주에 다가가 바라보고 순례하며
소외된 도시 그곳의 얘길 전하고
그곳 아닌 곳에서도 5월에 그 얘기를 함께 하기 위해서
5.18 전야제와 추념식이란 이름으로 5월17일과 18일 각 5시간의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이름없는공연의 첫 5월연작이 되었고 이후 17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5월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서 2013년까지 총 40편의 오월순례연작을 공연하고 영상 기획했습니다.
2014년은 이름없는공연이 직접 작업하고 행동하지 못한 17년 즉 1980년부터 1997년까지의
5월작업의 준비기에서 다시 17년이 흐른 34주기입니다..
즉 5월연작을 만들며 매년 빠트리지 않고 순례한 다시 1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17년동안 (1997-2014) 오월은 그 넋들의 염원대로 승화되고 꽃피어졌으나
망각과 편의를 찾는 살아남은 이들의 습성으로 인해
역사의 후퇴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40여개의 사적지들은 어느 하나 그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스스로 지워왔고,다섯 개 과제 그 어느 하나 완성 못한 채
17년에서 다시 17년 그렇게 34년이 흘렀습니다.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민주와 인권의 일반명사가 되어갔으나
다시 왜곡되고 망각되고  형해화되면서
금남로를 채우는 거대한 축제 속에서도 오히려 그 날의 소외감이 다시 몰려옵니다..
 
이름없는공연은 34주기인 2014년 오월을 빛고을에서 살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17년간 공연한 40편의 연작을 복기하면서
80년 그 날의 얘기가 아닌
1997년부터 2014년까지 17년간의 오월의 얘기를 모아서
오월민주광장과 금남로 그리고 이제는 그 이름만 남은 오월사적지 곳곳에서
넋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준비합니다.
가난한 작업자여서 무대를 만들거나 공간을 대관해서 설치하고 전시하고 영상회를 하지는 못하지만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누구하나 그런 장소를 제공해주지도 않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보다는 살포시 다가오셔서 어깨 두드려주고
같이해주시던 넋들과의 진정한 만남을 그리며
빛고을에서의 5월을 준비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의  34주기 오월작업은
지난 3월한달간 오월길 40여사적지를찾아서 준비한
마흔한번째 5월연작 오월길..을 시작으로
오월16일부터 28일까지 금남로와 오월길 곳곳에서
지난 17년간 금남로와 망월동 그리고 80년전남도청에서 공연했던 작품들을
다시 공연합니다.
복기해 공연할 작품들은
1997.5.17-18 51817(오늘같은밤이면+남행열차)서울 1
1997.11그날아닌날에도(서울) 2
1998.5.16-19 지워진소외(서울) 3
1999.5.17-18 후이넘에서 돌아와2-광주(금남로)4
2000.5.17-18 후이넘에서 돌아와2-그리움2+잊지마세요(금남로)5
2001.5 26-27 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6
2002.5-10 후이넘의기억-상무대(상무대,망월동) 5.19 상무대(5.18 22주년) 7
.5.20 망월동 (5.18 22주년)
6.4-6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씨어터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8
6.9l 후이넘의기억-상무대(수원화성국제연극제)경기도문예회관 6.11화성행궁 9
8.19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씨어터제로 (2002실험예술제) 10
10.19 후이넘의기억-상무대안면도(2002겨울여행,가을,안면도) 11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겨울여행2-유서 잊지마세요033 (서울여성프라자)12
2004.5.17-27 2004년5월(광주.전주)13
2005.5.24존재하는평화를향해(광주상무대,아시안인의마당)14
2006.5.18 순애언니 15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16
2007.5.25잊혀질 때까지는(518기념문화관,난장인프리)17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18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19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
2008.4.25 평화 그 그리움으로166(5.18기념공원) 21
2008.4.28 평화 그 그리움으로167(광주 문화의전당) 22
2008.4.29 평화 그 그리움으로168(광주 우다방) 23
2008.5.27후이넘의기억2-춘천마임축제,명동,중앙로건널목 24
2008.12.13-14시린겨울-이름없는공연 밤샘영상회(옛 전남도청3층)12.13-14 25
2009.5.4평화 그그리움으로236(전주한옥마을영화제,차마당)영상공연 26
2009.5.5-6평화 그 그리움으로237,238(광주 옛 전남도청별관) 27
2009.6.13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2009년6월 5월광주에서(옛 전남도청3층)6.13 28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9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30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31
2009.7.27평화그그리움으로244(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32
2009.7.27평화그림004-오월의문?(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33
2010.5.19-21 518 30주년5월연작영상회(23회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34
519평화 그그리움으로 520평화 그 그리움으로 521평화 그 그리움으로
2010.5.22 평화 그 그리움으로(30주년 5월광주 22일) 35
30년지나5월(2010년5월광주5.17-27)금남로,옛도청 36
2011.5.18평화그림013 -5.18 31주년기념서울행사,서울광장37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2012.5.17 12년전 그 금남로에서 39
2013.5.27겨울여행2-33년(광주80년도청앞)40
 등입니다.
 
그리고 기간 중 이러한 저희의 작업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전시공간 극장공간이나
자기주거공간 곁에 있는 빈공간, 거리벽면등을 빌려주시는 분을 찾았으나
응답해주신 분들이 아무도 안계셔서 포기하고
주인이나 공공규제가 없는 공간을 찾아서
오월연작공연사진전과 ,오월연작공연영화제를 마련합니다.
이름없는공연의 2014년5월작업엔 아직 아무도 동행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늦게라도 스스로 시간을 내서 다가와서 동행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사람들이 없는 시간,아무에게도 폐되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서
10여편의 거리공연과 카페,영상회,전시등으로
살아남은 자들과 새로 태어난 자들이 이용하고 추모하고 순례해온 지난17년간의 오월의 얘기와
2014년34주기오월에 새로이 그려보는 이야기를 모아서 공연을 완성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오전 8:49:47
 
 

518 34주년 이름없는공연5월연작 復棋공연

51834

 

예기플라타너스
이름없는공연팀
5월연작
522평화,그 그리움으로282(30주년,5월22일광주)
5월,그곳에 하늘이 열리고나면
그 희망으로 다시
그 긴기다림은 시작되고..

예기플라타너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작품목록
1997.5.17-18 51817(오늘같은밤이면+남행열차)서울 1
1997.11그날아닌날에도(서울) 2
1998.5.16-19 지워진소외(서울) 3
1999.5.17-18 후이넘에서돌아와2-광주(금남로)4
2000.5.17-18 후이넘에서돌아와2-그리움2+잊지마세요(금남로)5
2001.5 26-27 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6

2002.5-10 후이넘의기억-상무대(상무대,망월동) 5.19 상무대(5.18 22주년) 7
.5.20 망월동 (5.18 22주년)
6.4-6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씨어터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8
6.9l 후이넘의기억-상무대(수원화성국제연극제)경기도문예회관 6.11화성행궁 9
8.19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씨어터제로 (2002실험예술제) 10
10.19 후이넘의기억-상무대안면도(2002겨울여행,가을,안면도) 11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겨울여행2-유서 잊지마세요033 (서울여성프라자)12
2004.5.17-27 2004년5월(광주.전주)13
2005.5.24존재하는평화를향해(광주상무대,아시안인의마당)14
2006.5.18 순애언니 15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16
2007.5.25잊혀질 때까지는(518기념문화관,난장인프리)17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18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19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
2008.4.25 평화 그 그리움으로166(5.18기념공원) 21
2008.4.28 평화 그 그리움으로167(광주 문화의전당) 22
2008.4.29 평화 그 그리움으로168(광주 우다방) 23
2008.5.27후이넘의기억2-춘천마임축제,명동,중앙로건널목 24
2008.12.13-14시린겨울-이름없는공연 밤샘영상회(옛 전남도청3층)12.13-14 25
2009.5.4평화 그그리움으로236(전주한옥마을영화제,차마당)영상공연 26
2009.5.5-6평화 그 그리움으로237,238(광주 옛 전남도청별관) 27
2009.6.13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2009년6월 5월광주에서(옛 전남도청3층)6.13 28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9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30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31
2009.7.27평화그그리움으로244(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32
2009.7.27평화그림004-오월의문?(광주엣전남도청오월의문걸개그림앞에서) 33
2010.5.19-21 518 30주년5월연작영상회(23회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34
519평화 그그리움으로 520평화 그 그리움으로 521평화 그 그리움으로
2010.5.22 평화 그 그리움으로(30주년 5월광주 22일) 35
30년지나5월(2010년5월광주5.17-27)금남로,옛도청 36
2011.5.18평화그림013 -5.18 31주년기념서울행사,서울광장37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2012.5.17 12년전 그 금남로에서 39
2013.5.27겨울여행2-33년(광주80년도청앞)40
 
 
2014년 5월을 향해 준비하고 동행을 찾으며 기다린 5월이
여전히 민주와는 거리가 먼 세상,아픈 4월을 디디고 다가옵니다.
 
작업은 지난 17주기인 1997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2014년까지 17년간의 복기.
이 나라 삶을 돌이켜 보며 이루지 못한 것,스스로 잊어 버린 것
그리고 빼앗겨버려서 찾을 습성조차 잃어 버린 것들을 돌이켜봅니다.
그래서 개인은,민중은 국민은 이 좁은 우주 인간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립니다.
지구별 한편 우리에게 임무지어진 조그마한 원적지.
세 번째 갑오년 맞으며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던 노랫말 되새기며
단 한 사람의 주권도 찬탈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행동 그 두번째 연작으로.
만들며 오월의 얘기와 오버랩되는 2014년.
 
5월 그 하늘을 구속같은 핑계로 화두삼아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어리숙하게 그러나 절실한 마음으로
공간도 얻지 못하는 쓸쓸함으로 메아리도 없는 제안하고 기다린 반복.
그리움을 용기로 홀로 거리한편에 펼쳤던 오월의 제의..
산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해도
언제나 다정히 반겨주는 넋들과의 만남으로 기다리고 그렸던 얘기들이
17년간 40개의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17년만에야 용기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그 어리석음을 돌이켜서
그날 이 후 다시 17년간.
그래서 34년이 되어서 돌이켜보는 언덕 이편에서.산사람과 함께 못하는 죽음이후같은 회향길.
 
그 열입곱해 동안 이 나라는 그 아픈 희생의 선물을 안고 어느만큼 진화했는지?
오히려 앞의 열일곱해 아픔 속에서도 피눈물로 이루어낸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꺼트리고 사는 건 아닌지?
이기와 욕망에 편승해서 인간존재본연의 도리와 순리를 잃어 버린 채
자기합리화와 모르쇄로 제 시야 속 세상 안에 갇혀 의무를 조각해 나가는 것은 아닌지.
 
감히 근접할 수 없어서
그 아픔과 사랑이 연극이 되고 유희가 될까 봐서
한번도 그 날의 얘기를 가상으로 재현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공연이란 핑계로 대입하거나 묘사하지 않은 채
그 날의 죄악처럼 그들 자신이 될 수 없는 제3자의 모습으로 다가섰습니다.
 
시간을 겹쳐서 이방의 존재로서 이해와 공존을 노력했습니다.
처절하게 소외시키고 단절시켰던 그 고을에 다가가서
죄인처럼 나그네처럼 경건한 가슴으로 만나고 싶어했던 시간.
그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얘길 듣고 그 얘기따라 죽은 이 들이 들려주는 얘기만으로
그들의 흔적을 찾아다닌 작고 보잘 것 없는 순례.
하지만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을 거슬러 다가가서 만나고
고개숙여 정진코져 노력했던 시간..
 
51817남행열차부터 겨울여행2-33년까지.
그 작업의 흔적을 돌이켜 작품 안에 담겼던 장면들을 고르고
그 장마다 그리며 담고 싶었던 그 날의 마음을 찾아서
34년째 2월 마침내 고향처럼 다가서서
여유로 6개월의 시한부 거처를 정하고
3월,그들이 정해준 오월길따라
마흔한번째 작품으로 마흔여 오월의 사적지를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례를 바탕으로
이제는 모든 것, 스스로 지워버린 이 도시에서
지난 17년에그렸던 얘기들과
그 작품 속에 살아 움직여주었던 정겨웠던 이방인들을 다시 만나려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4월한달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처럼,
지난 17년간의 작업에 한번이라도 동행했던 사람들도 찾아보았습니다.
아무도 죽은 이는 없는데 아무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부르는 제 소리가 너무 적어서 듣지 못하였거나
들을 수 없는 곳.우연이라도 스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며 다시 다가갈 동행
아니 이어갈 얘기 나누고자 꿈속의 꿈을 꾸며 그렇게 매년 오월이 옵니다.
그리고 이제 열일곱해가 됩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17년 한번지난 34주기.
사람이 하늘인 세상,국민이 국가를 이루는 민초가 주인인 민주세상 향해서
학살당하고 희생하며 갈망해온 시간이
더디게 혹은 역류시킨 인간의 죄악.인간세의 흐름.
 
지난 17년을 돌아보며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잃어 버린 아니 스스로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시간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덕이편 차안에서 돌이켜보는 피안보다 더 아름다운 곳 향한 갈망
그 실천의 홀씨를 심듯
34주년 5월연작을 시작합니다...
2014년 5월 1일 목요일오전 8:51:13
 
 
 
 
 
34주년 그날. 17년전 그 날의 전야제와 추념식으로
 
16주기였던 1996년 5월.국제인권캠프 주최의 오월 순례에 동행하면서 만날 수 있었던
그리고 그곳을 돌아오면서 80년그날처럼 철저히 소외된 그 날의 도시와 나라를 바라보면서 작업을 준비했던
5.18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
세월이 흘러서 이젠 망월동엔 5.18국립묘지가 만들어지고
5월18일 오전엔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국가 기념일 행사가 열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리해서 더더욱 그리워지는 민주주의가 가득찬 나라.
그들을 추모하는 노래마저 마음껏 부를 수 없고
전야제 끝난 밤 금남로와 충장로 한편에서
오손도손 모여 담소하면서 얘기하던 벗들과 동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
오월의 사적지는 모두 지워지고 그 날의 그 모습 그대로를 찾아 순례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두세 곳 밖에 남지 않은 곳.
34주년 5월.
이름없는공연은 그 5월연작의 첫 작업이었던 51817을 다시 준비합니다.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 그날 서울에서의 전야제와 추념식을 위해
광주를 오가며 함께 제례를 준비하고,
도서관을 찾아서 그 날의 신문자료들을 다시 찾고
80년 5월부터 11월25일까지의 중앙지 편집국의 모습을 찾아서 공유했던
그 날의 얘기들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날 이 후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들.17년 이어가면서 계속 그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날의 그 모습대로 멎어 버린 아름다운 모습들 기억하면서
그들의 음성과 흐려진 모습모아
34주년 같은 날에 34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이 아닌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을 빛고을 넋들 앞에 홀로 준비합니다.
 
남겨진 1.2부공연의 대본과
2부의 조각영상.
그 위에 그려보는 17년의 흐름과
변해 버린 오늘의 얘기 아직도 변함없이
오히려 더더욱 모질고 교활하게 재현되는 역사의 후퇴.
5월17일 34주년 5월전야제가 끝난 금남로 한편에서
34주년 5월 그 작업의 복기  첫 작업 ,
마흔두 번째 5월연작.
51834-1 오늘같은 밤이면을 준비합니다.
초연의 대본을 바탕으로 돌이켜 그려 다짐하면서.
2014년 5월 1일 목요일오전 10:55:23
 
 
.
오늘같은밤이면(51817 1부) 초연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전야제 초연:1997.5.17 여해문화공간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뒷쪽 흐름의 사무실
후면 오른쪽 피아노와 거리. 쇼윈도우(영상,스크린)
 
1.(뒷면흐름.34세 금준)
 
흐름의 사무실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34세의 금준,
흐름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방금 전화메세지를 녹음한 듯 전화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방 안을 정리한 뒤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간다.
  
2.(뒷면흐름.비어있음)
 
무대에 남는 흐름의 빈 사무실.
이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빈사무실 공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3.(거리)
 
거리에 저녁녘 빛이 들어오면
비오는 거리.
 
4.(편집국.제시)
 
편집국.
제시의 공간일까?
제시,퇴근을 준비하는 듯 책상을 정리한 후
전화를 걸어본다.  
 
5(뒷면흐름.비어있음)
 
전화벨소리
흐름의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벨
 
자동응답기 목소리
 
금준-안녕하세요. 사무실입니다.
광주캠프참가준비로 일찍 사무실을 비웁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듣고 삐-소리가 난후 메시지를 녹음하는 제시
 
6.(편집국.제시)
 
제시-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제시 메시지 끝남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음악-카페에서
제시 수화기를 놓는다
 
7.(뒷면흐름.비어있음)
 
흐름의 사무실.
빈 공간의 시간의 변화.
 
8.(편집국.제시)
 
제시,편집국안을 회상하듯 거닐어보는 제시   
 
그의 목소리-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태해지고
선은 점차 악이나 고루함으로 되어져 가는 것 같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에 대해 고민하거나 그것을 잡고 놓치못하며 추구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소외되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인간적이란 말로 포장되며 세상을 점차 퇴화시켜가고있어.
지난 17년의 역사 안에서도 그게 보여.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서 자신이 그 옛날했던 말과 사고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퇴화를 인정하는 이는 없어.
이것이 역사와 인류의 슬픔인 것 같아.
반대로 변하지 않는 변질이 있지.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과 고뇌는 항상 이기적 신상 잡기에만 있었지.
늘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비굴화시키고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처신의 맥을 같이해.
즉 일관된 변절. 그리고 한번도 후회하거나 죄를 인정치못하는 존재들.
언론투이 얘기를 하다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언론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모두들 버티다 짤린 존재들.
그 버팀 안에는 항상 비굴한 현실주의적 타협이 들어있어.
곧아야할 존재들이 휘어져 비굴하면서도 버티다가 짤리거나 뽑힌 거야.
남은 이들은 자신의 비굴함을 순간마다 작은 자리에선 간혹 인정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비굴함을 인정치는 않는 거야.
17년이 흘렀어.
남행열차를 올라타는 한 탈피기자의 얘기가 그 잊혀진 변절감들을 상기시켜 자각시켜낼 수 있을까?
 
     
9.(제시.편집국에서 거리로)
 
제시, 편집국을 걸어나간다.
제시, 어두운 거리로 사라지고
 
10.(흐름무대 앞으로 이동하며)
다시 빈 흐름의 사무실
거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11.(거리)
노래하는 이(신현이)
 
얼마나 그댈 그리워 하는지 몰라
더 이상 외로운 난 견딜 수 없고
언제나 어두운 밤 찾아올 때면
살며시 그대이름 부르곤 했어
눈감으면 그대 곁에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그대숨결
느낄 수 없고
무겁게 나를 누르는  
이 빈 공간은
끝없는 방황으로
나를 이끄네
기나긴 기다림 속에 지쳐도
그대 외롭다고 눈물짓지마
언젠가 그대의 두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갈 테야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
 
기나긴 기다림 속에 지쳐도
그대 외롭다고 눈물짓지마
언젠가 그대의 두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갈 테야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
 
12.(앞면흐름무대 .비어있음)
흐름의 사무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
빛 다가오는 아침을 그린다.
 
13.(앞면흐름.신문배달소년.금준)
 
신문배달소년-흐름사무실 문 앞에 배달되는 조간신문
비개인 아침의 새들의 지저귐
금준 출근한다.
녹차 한 잔을 끓여 마신다.
책상 쪽으로 다가와 신문을 본다.
전화음성메시지를 듣는다.
 
삐-소리
 
제시-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금준,차를 마신다.
흐름의 공간 서서히 암전.
 
14.(제시실내 .제시)
 
제시의 공간으로 빛 오버랩 되면
제시 일상의 아침을 준비한다.
일어나고 창밖을 내다보고
간단한 몸풀이 운동도 해보고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냉장고를 열어 간단한 음료와 빵을 준비해서
아침식사를 요기하고
옷을 꺼내 입고 가방을 챙긴다.
문단속 확인
 
15.(제시거리)
거리로 나가면
영상은 사회를 조명하는 슬라이드 인
 
16.
흐름무대는 뒷면으로 다시 이동
 
17.(제시)
제시, 거리에서 만나는 일상들에 즐겁게 대처한다.
버스도 기다리고
지하철도 타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전화도 걸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춤추는 이의 모습도 구경한다.
 
18.춤추는 여인
 
19.제시, 밤으로 다가가며 쇼윈도우 앞에 선다.
 
20.(편집국,아침 신희은,금준)
 
제시가 시간을 떠나와 앉아있던 편집국.
거기엔 자기자리에 앉아 정리하는 신희은이 있다.
금준 들어온다.
마주앉으며
 
금준-신기자님, 부탁했던 지난해 망월동추념식에서 읽혀졌던
조시여요..
신희은-아 거기 있었네.고마워요.
금준-묘하죠? 17년전의 이 편집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게..
허긴 우리에겐 별 의미도 없는 추억일수도..
 
금준 정리하고 걸어나간다.
신희은, 금준이 넘겨준 시를 낭송한다.
 
신희은-시낭독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반병섭  
 
그때, 그대들이
민주의 횃불 들고
외치고 항거할 때
캐나다 이곳에서 소파에 앉아 TV로만
그 일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그 횃불 군화에 짓밟힐 때
그대들 상했고
그대들 총칼에 죽어
그 횃불 꺼지고
 
아! 그 칠흑의 긴긴 밤에
아이고! 아이고!
痛哭 한번 못하고
그대들 위한
뜨거운 시 한 줄
쓰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해마다 그대들의 피
다시 붉게 되살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광주로! 광주로! 가는데
나는 아직 그곳 찾아
무릎 한번 꿇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누가 나의 자던 잠을 깨우고
고향을 물으면
내가 "광주""光州"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금수강산 삼천리 名山중에
어느 산이 제일이냐 누가 물을 때
내가 "無等"이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세월 흐르고  
그 횃불 다시 밝혀지는
행렬(行列)에 뒤늦게
이렇게 따라가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편집국 조명 아웃되고
신희은 퇴장한다.
 
34세의 금준-흐름의 사무실로 옮겨와있다
 
21.
(흐름무대 뒷면으로 이동.제시의 거리공간열림)
 
22.
(피아노앞에 연주자 최고야 나와 앉는다. 연주)
 
피아노연주곡-즉흥환상곡
 
피아노연주 동안 제시는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와
다시 자기만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가 자리에 들면..
제시의 공간은 서서히 아웃되며 편집국과 흐름의 사무실을 비추며 음악이 흐른다.
 
23.
(피아노 연주소리 작아지면서 빈 제시의 실내공간에 노래 들려온다)
 
노래 -꿈에서 본 거리
 
아침에 문득 눈을 떠보니
낯설게 보이는 모든 게 내 주위에 가득차
일어나 다시 살펴보았더니 오래된 내 작은 방
어젯밤 꿈에 나는 보았지.
하얗게 뻗어 나가 있는 길 옆에 그 거리를
언제나 가슴으로 그리던 곳을 난 꿈을 타고 찾아낸 거야.
빠알간 벽돌 길모퉁이에서 난 플라타너스 바라보면서
웃음이 아닌 다른 건 모두 잊은 채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었지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 멀리 구름위로 날려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을
내 꿈에서 본 거리 일 꺼야  
 
빠알간 벽돌 길모퉁이에서 난 플라타너스 바라보면서
웃음이 아닌 다른 건 모두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지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 멀리 구름위로 날려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을
내 꿈에서 본 거리 일 꺼야  
 
24.
(편집국 부장인형 두기자인형 신희은 )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신희은 나와 앉는다
17년전의  그 모습들이 배치된다.
부장과 두기자는 허수아비로
그리고 흐름의 사무실은 무대 뒤에서 앞쪽으로 이동 배치된다.
 
허수아비들 그리고 신희은의 움직임.
 
그의 목소리-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잘보이지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안쓰기나 출근투쟁 등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궈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25.(앞면흐름. 금준 은정)
 
전면에 배치된 흐름의 사무실
금준,은정과 앉아있다.-
 
금준-
그는 지난해 시민연대의 광주국제인권캠프팀과 합류해서
광주금남로에서의 5,18 16주기전야제와 이튿날 망월동에서의
추념식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그날의 그곳을 찾았다고 해.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몸서릴 쳤다고했어,
그건 17년전 자신과 언론이 만들었던 그것과 똑같은 소외와
단절과 차단의 도시로 5월광주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지.
 
그리고 이 편지.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 하나가 그의 가슴을 적셨지.
읽어 봐.
 
은정-편지를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보았습니다.
 
26.(거리- 노래하는이(김주연) -그대 먼 곳에)
 
27.(노래하는이(신현이) -홀로 된다는 것)
 
28.(금준 노래한다)
 
-나의 친구야.
 
뒤돌아 볼 때마다 그리운 내친구들
어디로 갔나
어두운 뒷골목을 헤메이고 있나
차가운 새벽 들판을 서있나
 
어딜 가야 너를 만나나
어딜 가야 너를 만나나
그리운 내 친구야
 
푸른 옷 맺힌 꿈에 눈물 삼키고 있나
저 하늘에 별이 되어 떠있나
어디간들 너를 잊으랴
그리운 내친구야.
 
금준 노래하며 편집국으로 간다.
편집국에서 정리하며 17살의 금준으로 돌아간다.
 
29.
뒷편-피아노 앞에서 최고야 연주시작
혁명 이어진다.
 
30.
사람들 조용히 모인다.
거리 걸어가는 사람들
 
31.노래들-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32.노래들-그날이 오면
 
33.노래들-님을 위한 행진곡
 
34.흐름의 사무실은 다시 뒤편으로 옮겨지고
편집국에서 다시 흐름의 사무실 쪽으로 해서 퇴장하는 금준.
 
35.
피아노연주 서서히 줄어들며  
해금연주를 위한 공간 배치된다.
 
36.
해금연주시작 -적념  
스크린에 영상비춰진다.
연주가 끝나면 스크린올라가며..
 
37.무등의 어느 계곡.
두사람 제례를 위한 씻음.
다시 한사람의 제례를 위한 씻음
 
38.제례상을 갖고나오는 사람.
제례상을 준비함
그릇 놓기 과일 놓기
 
39.
노래-오늘 같은 밤이면
흐름의 사무실에서 편집국을 거쳐 걸어나오며 노래하는 사람
 
노래
-오늘 같은 밤이면..
 
40.
제례상을 차리는 사람들.
서서히 모든 빛 아웃.
 
-공연은 내일 저녁 7시로 이어집니다.
 
 
이름없는공연 34주년 5월 중 5월18일 공연할
[51834,5.18 17주년 추념식-남행열차]공연의
기본대본으로 사용할 51817-2 남행열차의 초연대본.
많은 사람들과 같이 준비하고 공연했던 17년전 그날의 5시간 극장공연을
17년 다시지나 그대 그사람들 그리고 새로이 다가와 준비해준 사람하나없이
아무도  동행하는 이 없어 홀로 1인극으로 빛고을에서의 야외공연으로
재구성할 복기공연입니다..
 
남행열차(51817 2부)
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추념식 초연:1997.5.18 여해문화공간
 
 
 
(무대는 1부 오늘같은밤이면의 무대를 재배치
,피아노위치 뒤로옮기고 교정부책상배치)  
 
41.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뒤쪽 흐름의 사무실
뒷면 오른쪽 어젯밤에 준비되던 그 상태의 제례상
  
42.(37과 같음)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찾음.
무등의 어느 계곡.
두사람 제례를 위한 씻음.
다시 한 사람의 제례를 위한 씻음
 
43. (38에 이어짐)
앞쪽 제례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부터
놓여진 제례상에 하나하나 마련한 음식을 가져다 놓는 사람들.
 
44.
스크린 내려오면 화면엔 [시민군 윤상원]이 투영된다.
이후 영화는 스크린에 공연내내 무성영화로 전편이 상영된다.
무등계곡 졔례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습사라진다.  
 
45.편집국
 
(복잡하고 정돈안된 신문사 문화부의 철제책상과 의자들
의자엔 부장과 두명의 기자모습이 인형으로배치되어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녹음으로들린다.
5년차기자인 신희은과 아르바이트여고생인 장금준이
간혹 드나들며 편집국의 일상을 표현한다)
 
1980년 3월 19일 - 오전 8시 10분경
  
희은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다. 어깨에 매는 가방과 정장차림.
들어오면서 부장 및 10년차 선배등에게 인사를 한다.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아 책상을 대충
정리한다.옆에 달려있는 책상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낸 후
얼굴을 정리한다.
얼굴,눈썹,입술 순으로 정리를 한후 머리등을 대충 매만지고,
이제서야 어제 쓰다만 원고를 들추면서 마저 작성을 한다.
작성을 대충 끝낸 후 원고지와 사진을 끼워 부장에게 다가간다.  
 
46.제대
(반복과 지속 공연의 끝부분 까지 무대점유)
 
제례상 앞에 나가앉는 두사람.
찾아오는 이에 대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이후 두사람의 기다림 앞에 관객들 내려와 분향해도 좋고
사람들 그곳에 와서 절을 해도 좋다.
공연이 끝날 때 이 부분은 무대에 자유공간으로 배치되어
오버랩된다.
 
47.흐름의 사무실
(17년이 지난 현재의 공간.금준의 사무실엔 친구인 은정이 간혹
찾아와 대화하며 금준은 흐름의사무실과 편집국 교정부 3개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과거와 현재를 표현하곤한다)
 
금준 한손엔 서류들도 허겁지겁 들어와
가방을 의자에 던져놓고 컴퓨터를 켠다.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손가락을 꺾더니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서류를 한 번씩 쳐다보며)
 
금준- 주.. 간.. 인..권.. 흐...름.. 서울대 한 단과대학의 대학원생인   
정아무개(34)씨등 구아무개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해 검찰 조사
착수/국가 보훈처, 7월부터 전립선암과 버거씨..병등 고엽제
후유증에 추가 적용키로..../교육부, 북한 돕기운동과 관련
학교,학급단위나 전교조등 단체차원의 모금활동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시.도교육청에
보내/ 어휴,, 죽어라죽어라 하는구만.. 에.. 또..정부(화면보고)
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다시한번 서류를 뚫어지게
보더니 눈썹을 찡긋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간다)정부... 황장엽..
 
 
48,편집국.(일상의 소리 1들리기시작)
1980년 4월 10일 - 오전 9시 45분경
 
신희은 ,여러 원고들을 꺼내어 놓고, 바쁘게 원고를 마감하는
모습을 비춘다.
하나 작성하고 하서, 다른 하나를 마저 쓰고, 취재했던 기록등을
들추어 가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몇몇 보도자료 등도 필요할 듯. 기사를 다 쓴 후 부장에게 넘기고,
부장으로부터 지시사항을 받는다.
미다시 등을 읽고(이 부분은 소리를 낼 수도 있을것 같음), 부장의
질문에 응수한다. (동작으로만 혹은 대사도 함께)
바쁘게 사진부로 뛰어간다.
(잠시 퇴장) 이후 잠시 후 몇장의 사진등을 들고 등장.
부장에게 보인 후 자리에 와서 클립등을 찾고 정리한 다음, 원고를
들고 퇴장.
 
 
49. 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2만..)
 
50 교정부-교정지읽는다.(1)  
 
51.편집국
 
(5월 3일 - 인터뷰, 취재차량, 사진기자 등의 섭외장면)
희은-전화걸고있다..
"여보세요? 남덕순씨..?? 아.. 예.. 저는 신아일보사 문화부에  신
희은이라고합니다.
 이번에 '아이다' 처녀출연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번주 저희
신문에 연재되는 '무대인'에 남덕순씨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언제쯤 시간이 되시나요? 그냥, 이제까지의 공부과정하고,
이번 작품에 관한 얘기들이죠, 뭐.. 시간요? 오늘중이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시면, 오늘 오후 1시쯤은 어때요? 예.. 그래요, 그럼.
숙대앞이요?? 그러 도록 하죠. 예.. 그럼, 조금 있다가 뵙죠. "
 
금준,들어와 문화부 각 책상에 통신지 놓고간다.
 
희은-  "예.. 저, 문화부의 신 희은인데요, 오늘 오후에
인터뷰건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거든요..?? 예. 어.. 시간은
1시요. 뭐, 한시간도 안걸려요. 많이 안나가요. 예? 가깝죠.. 숙대요.
예? 어.. 얼마 안걸려 요.. 한시간이면 되는데요? 아니.. 그래도,
인터뷴데.. 저는 사진 잘못한다구요.. 시간 좀 잠깐 내세요..!! 예?
아니.. 아까는 될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그럼 문화부 기사는 안중요한가요?
됐어요, 뭐.. 몇장 찍을건데, 그거 하나 안해주면.. 아니, 됐어요. 예..
안녕히 계세요. "
 
(독백) 사진까지 내가 찍냐..
 
 "예.. 안녕하세요? 문화부 신희은인데요, 예.. 취재차랑 지원을
받으려고요.. 1시요. 숙대앞이거든요. 예? 어.. 저. 그래두.. 시간을
아끼려는 차원에서.. 힘든가요? 차로 가면.. 30분도 안걸리는데..
예.. 하긴.   알겠습니다. 버스 타죠.. 뭐.."
 
 (독백 : 전화기를 노려보며) 되는 일이 없어!
 
 
53.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3)
 
 
54.흐름의 사무실
아침이다 밝은 조명켜지면 책상위에 엎드려 있는 금준.
(전화벨 소리)
금준-  (한참만에 수화기 들고, 하품하며) 여보..세요.. 응.. 응... 어.
(수화기 내려놓으면서 다시 고꾸라진다) 잠시 out..
 
55. 흐름의 사무실
(다시 조명 켜지면 책상 옆 의자엔 은정. 그 옆 간이대에서 녹차를
따르는 금준, 은정은 그런 그를 눈으로 좇으며 측은하단 듯이)
은정- 얘, 너, 그러다 시집가기도 전에 몸 축나겠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밤샘 작업을 하고 그러니...
금준:  (차를 건네며) 어구구, 그러잖아도 온몸이 쿡쿡
쑤신다..(기지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나저나 상담소는 어쩌구 이른
아침부터....
은정- 응. 오늘은 오후 교대야.
금준- 애들 해결사 노릇은 잘 돼고?
은정- (한숨쉬며) 에휴, 이젠 손 들고 싶어. 진즉에 시집이나 갈
걸.
금준- 언젠 또, 상담하는 애들이 다 지 새끼라고하더니.
은정-그래 넌 신문장사는 잘 돼가니? 요즘 새로운 인권소식은
뭐야.
금준- 너 장사 하면서 이리 궁상맞은거 봤니? 휴.. 늘 그렇지 뭐.
아직도 우린 바른말 하고 살긴 힘들다는거. 데모한다고 학생들에게
총을 들이대질 않나.  
컴퓨터 통신 한 번 잘못했다고 색깔의심받아 콩밥먹을 뻔하고..
겉으로는 역사 바로세우기다 뭐다 하면서 과거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답습하고 있으니...
은정- 얘, 그래두 예전에 입도 뻥긋 못할 때 보단 조금은 살만
하지뭐..
금준- 글쎄, 아직도 뒤통수가 근질근질 한 것이 누가 날 겨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기 어린 말에 은정 한 번 흘기고는 웃는다)
 
 
56.교정부-교정지읽는다(2)
 
57.편집국-빈책상 (일상의소리4 들린다.)
 
58.교정부-교정지읽는다(3)
 
59.편집국의 일상
1980년 5월 29일 - 오후 3시경
 
신희은 ,사전을 갖다놓고 외지를 번역중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번역을 하면서, 기사를 읽는다. (연재기사 - 퍼스트 레이디)
잠시 기지개를 켠다. 하품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신기자의 책상을 본다. 신문지를 하나 든다.
(당시 광주에 관한 기사) 미다시 등을 읽는다.
조금 읽다가 책상에 다시 놓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온다. 지금
번역  하고 있는 잡지를 들어서 본다. 신기자의 책상을 보다가,
다시 자신이 작성중인 원고를 보고 쓴웃음을 지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자리에 앉아 번역을 계속한다.
 
60.편집국(일상의 소리 5)
1980년 6월 15일 - 오후 2시경
 
옆에 가득쌓인 책들. 그 책들의 앞부분만 들춰가면서 신희은
기사를 작성 중.
가끔 독백으로, "다음 책은 뭐냐.. (제목을 부른다.)"
등등으로 책 소개란을 작성한다. (책은 4권정도)
 
 
61.빈 편집국 (일상의 소리 6)
 
62.교정부-교정지읽는다(4)
 
63.흐름의 사무실
 
(금준,은정과 앉아 얘기하고잇다.은정 들으면서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의 의사를 표현한다)
 
금준- 신문이나 언론이란건 언제나 그 모양이었어.사실 일제시대가
마감되엇을 때 일제안에서 만들던 신문들은 모두 폐간했어야 해.
80년 5월에 광주의 민주열기를 간첩의 소행이라 적고 시민들을
폭도라고 적고 보도하던 신문과 방송들
그리고 이후 5,6공에 충성하며 나서서 전두환칭송하기에 바빴던
신문과 방송들도 그 폭력의 역사가 밝혀진 그날,모두
자신폐간했어야 돼.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 등으로 모두 죄가밝혀지고 재판받는 지금
언론은 어느누구도 그 죄에 대해 법정에 서거나 용서를 비는
경우가 없이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자신들이
칭송했던사람들은 같은 입으로 몰아세우고 있어.
이 신문들 좀 봐.그 당시 언론들이 이렇게 이폭력에 대해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지않았다면 과연 군부독재정권이 군림할수
있었을까?
언론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하면서 어쩔수없엇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안해. 사람들이 폭력에 항거해 죽어가는 그때에 그들은
손가락하나 피흘리지않고 그저 검열에 복종하면서 신문사에
앉아서 가장 정의로운 것처럼 세상걱정만 해댔어.
그리곤 이튿날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선 자신이 어젯밤 말한거와는
180도 다른 거짓말을 해댔지.
그게 지식인의 양심이며 고뇌의 표현인가?
그들은 자기주변의 한두명에게만 진실을 말하고 수백만명의
독자와 시청자에겐 거짓말을 했지.
그게 죄악인걸 알기나 했겠어.
아니 모르니까 지금도 뻐젓히 살아서 이렇게 전두환예찬론과
국민의 자유자제론을 써대던 기자들이 부장이나 논설위원이 되서
전두환정권창출이 잘못된 것이라고 눈하나 깜박안하고 쓰면서
가장 정의로운체 하는게 아냐?
난 간혹 이런생까도 해.지금도마찬가지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벌써 훌륭한 민주화가 되엇을지도 모른다구.
언론이란 것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보도하지않으면서 오히려
진실된 여론의 형성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니까말야.
광주가 군화발에 짓밟힐 때 아예 신문이 나오지않고 방송이
없었으면 게엄사의 삐라만에 의존한 군부앞에서 최소한 진실의
왜곡은 없었을 것 아냐.        
늘 약자에게만 강하고 강한권력앞에선 해도 되는정도의 비평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개처럼 순해져서 앞서서 복종하며 민심을
호도하고 여론을 왜곡시키는게 언론이지.
참 어제오늘 언론인들이 프레스센타에 모여서 그 당시를
증언한다며?
당시엔 개처럼 복종하던 사람들이 역사의 증언자들처럼 진실을
밝힌다고 발언들을 하겠지? 그럼 그 당시 자기들이 슨기사들은
뭐야.   
청문회증인들이 위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듯 오보와 허위기사에
대해서 더큰 책임과 법적구속을받아야하는거 아냐? 그 허위기사가
역사를 얼마나 후퇴시켯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했는데.
박홍신부도 릴附愎?엉뚱한 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받는데말야.  
           
 
 
64.편집국
1980년7월 6일 - 오전 8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인사를 한 후 자리
뒤에 우산을 펴서 말린다. 화장을 고치는 일상을 반복한 후,
자리에 놓인 잡지쪼가리를 본다. 몇장 들추다가, 부장에게 질문
 
 "이거 뭐예요? 부업요? 그거..계속 해요? 잡지 그냥 베끼는
거잖아요.  이번엔 또 뭐예요? 양초공예...?? 할것두 많은데.. 예..
예..
알겠습니다.."
 
투덜거리면서(행동으로 표현 - 책을 탁소리가 나게 놓는다거나,
신경질적으로 볼펜을 꺼내든다) 잡지쪼가리를 정리해서 작성한다.
 
 
65.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5)
 
66.편집국
1980년 8월 19일 - 오전 11시
 
조금은 화려한 정장을 입고 있다.
잡지들을 들춘다. 의류다루는 방법 등과 음식에 대한 기사들을
찾는다. 몇개를 오려서, 부장에게로 들고간다.
  
  "저.. 여성란에 올릴건데요, 좀 보세요. '유행지난 의복손질
요령'하고, 금주의 식단으로 '모듬 야채튀김'을 하면 어떻까
해서요.
괜찮죠? 예.. 내일자로 올리죠. 예..?? 아.. (웃으면서) 옷이요??
어.. 저.. 오늘 패션쇼가 있거든요. 예.. 급하게 연락이 와 놔서..
예.. 호주대사관에서 하거든요. 저.. 하얏트 호텔요. 예.. 아..
저.. 그런데요, 저도 취재라고 하면서 간신히 얻어서요.. 저.. 힘들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대신, 다음에 더 좋은 쇼 있으면 표 드릴께요.
오늘은 취재라서.. 예.. 죄송합니다.. "
 
자리로 온다.
 
67.편집국 (일상의 소리 7)
 
68.흐름의 사무실
 
금준- 결국 언론은 정의와 양심을 소외시키는 범죄집단의 역할을
하고도 그죄를 뉘우치거나 재판받지않는 유일한 집단인 것 같아.
권력이 바뀌거나 정권이 몰락해도 언론만은 남아서 하룻만에
다른옷을 갈아입고 언제그랫냐는 듯이 어제하던 말을 180도
바꿔서 다시 그 당시의 정권에 적응하는 간신같은 존재지.
언론투이를 말하지만 그건 일부 언론노동자들의 얘기고 신문이나
방송의 사주입장은 언제나 당시 세력자의 편에서지.
근데 재미있는건 그 간신들의 우매한 용기야.
하다못해 기업이나 정치계의 비리는 증거찾기에 힘이들어 그들이
발뺌이라도 할수있지만 언론은 이렇게 들쳐보면 모두 나오쟎아.
즉 그들의 거짓말은 이렇게 기록되어있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물안에 담기는대도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범죄에대한 인식조차
못한다는거야.
예를 들어 여기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말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사뒤에 아무개기자라고 당시 신문에 적혀있고
[전두환영웅만들기]나 [원로를찾아서]등에서 보는 시루에
아부하는 충성스런 기사나 기회주의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이렇게
아무아무게교수 혹은 아무개 목사등 찾으면 바로바로 나오쟎아.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 이 윤종보기자 같은 사람은 요 며칠전
와선  전노재판땐 뉴스시간에 나와서 자신이 영웅시해 소개했던
전두환과 5공에대해 비판을 서슴치않쟎아.
자기같은 사람이 전두환을 영웅만들어 독자에게 소개하지않앗으면
그가 대통령이되고 국민투표에서 95%이상의 찬성을 얻어 5공이
생겨나기나 했겠어?         
허긴 그당시 언론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 정계에 진출했지.
내가있던 신아일보에서도 김길홍부장 이긍규차장 등  당시
정치부에서 5공생성을 오도하던 사람들이 바로 민정당에
들어가더라.  
 
 
69.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6)
 
 
70.편집국(일상의 소리8)
1980년 9월 3일 - 오전 9시 30분
 
신희은 들어와'진귀한 기록사진'에 낼 사진들을 챙겨본다. 많은
사진더미들.
그 중에서 4개정도를 골라낸다. 아래에 사진설명을 단다. 사진과
설명을 뭉쳐서 부장에게 준다.
 
 
71.편집국
1980년 10월 25일 - 오후 2시경
 
인터뷰가 거절되어서 따지는 모습과 결국은 전화인터뷰를 하는
모습.
 
 "... 아니.. 그게 말이 되요? 양교수님하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어제
말씀  드렸고 어제 힘들어서 그럼, 오늘하자고 했더니, 또 무슨
일이 있으신거예요? 예? 미루자구요?? 이봐요. 나는 양교수님과
날짜잡힐 때까지 한가하게 그냥 잇는 사람인줄 아세요? 저도
취재할거 많다구요. 아니요, 시간이라봐야 얼마 안걸리니까..
그럼, 지금 계세요? 왜긴요?? 직접 못뵈면 전화로라도 인터뷰를
해야죠? 예.. (잠시 기다린다) 여보세요..?
아.. 예.. 양교수님이세요?
인터뷰 하기가 힘드네요.. 예.. 저..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 있으시죠? 예.. 그럼.. 질문부터 하죠.
이번 공연을 하시게 된 계기는요? 예.. 예... 아.. 그러시군요.. 예..
어..  그럼.. 이번에 하시는 작품들은요? 잠깐만요.. 조금 천천히요..
예..
이백의 야시 세 수.. 그리고? 레이디 화이트... 예.. 오페라요.. 예..
중국민요요.. 저.. 레이디 화이트가 뭔가요? 예.. 예..."(이쯤에서
조명 서서히 아웃)
  
 
72.편집국(일상의소리9)
 
 
73.흐름의 사무실
 
은정- 그래서?! 암호놀이를 시작했단말야?
금준- 응,나두 첨엔 몰랐었어.기협소속기자들은 5,18이후
태업투쟁으로 기사작성을 거부하고 있었지.하지만 그런다고 신문이
안나오는 건 아니쟎아?.
오히려 부장과 중견기자들이 쓸데없는 내용없는 기사들로 지면을
메꾸고,그래서 알려야할건 안알리고 오히려 게엄사의 대변지같은
역할만했지.
그런데 문화부의 신기자가 갑자기 기사를 쓰기 시작한거야.
5월 27일 광주에서도청이 함락되던 그날에 쓴 연극기사였는데
[블안정한 속에서도 공감짙은무대들]이란 제목의
4면톱기사였어.
시청 언론검열단에 다녀온 그는 내심 흐뭇한 미소마져 짓더라구.
사실그날 그 기사가 나가자 다른신문의 젊은 기자들이 신기자에게
항의전화까지왓어. [너마져 배신하냐..]뭐 이런내용이엇지.
첫줄에 [극소수불순분자들에 의해 야기되는...]으로 시작되는 그
기사는 얼핏보면 계엄사의 입맛에 맞는 기사였지.
당시에 게엄사는 광주항쟁을 폭도라고 부르며 그것을 극소수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언론에 유포시켯거든.      
근데 그 타사동료기자의 전화를 받는 신기자는 전화로이러더라구.
[너두 광주가 극소수불순분자의소행이라고 생각하니? 너두알잖아?
전두환일당이 바로 극소수불순분자라는걸.]그리곤 그 기사를
찬찬히읽어보라고 그러는거야.
거긴 대머리에 여덟 개 발달린 문어가 용왕에게 [문어
너는너무과격해]하고 말들으며 긇는물에 데쳐져 죽는다는
내용도잇고 [폭력으로 흥한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내용도
있었어.
시청검열단의 보안사장교들이 첫줄이 [극소수불순분자..]로
시작하니까 자기편으로안데다가 단순한 연극기사인줄 알고 그냥
넘어간거지.
사실 그당시엔 감히 대머리란 말도 신문에 나오면 삭제해버렷거든.
만화가 안의섭씨가 신문만화에 대머리를 그렷다가 두거비만화가
중단됐고 코미디언 심철호씨는 주걱턱이란이유만으로 방송출연을
못했으니까.     
그게 은유로된 기사의 시작이었어.최소한의 알릴수있는단어나
어휘만이라도 신문지면에 담아 독자에게 상징적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암호놀이같은거였지.
 
 
은정-은유로 된 기사.하지만 그렇게 은유로 쓴기사가 시민들에게
전달이 되엇을까?
 
금준-글쎄? 하지만 난 그것이 적지않은 사람들에겐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어떤 조그마한 역할은 햇다고 봐.
동아방송음악프로의 DJ를 맡고있던 작가 김홍신씨는 생방송중에
상징처럼 최근 같은단어가 다르게 쓰이면서 왜곡되어 쓰이던
단어의 진실을 다시찾아준 경우를봤다는식의 코멘트를 하기도했지.
그 [극소수불순분자.]의 얘기였지.
 
이후 신아일보가 폐간될 ㄸ까지 문화면에선 그런 식의 은유로 된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어. 샤르트르의 무덤없는주검이 인용되고  
굳이사람들이 밧줄에 묶인 공연사진을 싣기위해 조그마한
이벤트공연을 기사화하기도하고 민중의식을고취시킨 허균의
생각이나 단재 신채호의 사상 등을 찾아서 기사화하는 것도 그런
은유의 하나였어.
씨알의 소리가 10주년을맞을 땐 검열단에서 기사의 3분의2가
짤렸지만 그걸 각오하고 써낸 기사여서 발행인 함석헌님의 이름이
한자도 안남고 삭제당한 기사안에서도 [날 수 있을 때
까지날기위한연습이라도 하기위해 씨알의 소리를 만든다]는
문장만은 살려서 통과시켯지.
80년가을 난 그날 그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도 큰 희망을 얻었었어.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쓴 기사가 세상을바꾸진 못했잖아.
기사는 직설적으로 알려야하는게 아니야.그렇지않으면 아예
신문을만들지말던지.     
금준- 허긴그래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그런일이 어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니. 당시엔
시청에언론검열단이 있어서 기사한자한자를 보안사장교들이
검열을 한후에 지면에 담을수잇엇거든. 사실 그런 상태에서
간접적인 표현자체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구.
은정- 하지만 그 은유로 쓰여졌던 기사들을 어느 누가 얼마나
알아줬겠니. 혹 누군가 그 암호를 눈치챘을지언정 그것이 당시
고립된 광주항쟁을  알기에는 무리였을거야.
금준-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이라도 충분히
의미있었다고 생각해. 최소한 아무것도 쓰지않거나 아에
왜곡된기사만 쓰면서 남핑게대는 다른기자들에 비해선.  
하지만 간혹 그는 자신이 기자이면서도 단지 은유적인 말로 밖엔
표현할 수 없음이 스스로 죄책감을 안고 있었어.
그는 철필과 등사기를 갖고서도  진실을 알리려 노력햇던 당시
광주에서 지하언론작업을 한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자신들이 단
한 장의 진실한 신문도 못만들고 그 시기를 보낸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했어.
유신시대를 대학에서보낸 그가 꿈에 그렸던 언론에 들어와 막상
역사의 소용돌이안에 참용기를 모아야했을 때 이른바
최고지성인들이란 언론선배들과 동료들의 비굴함과 용기없음을
비관하면서말야.
결국 그날의 그들의 비굴함은 광주로 대변되는 참된민중항쟁의
용기들을 소외로 몰아갓고 그 죄악의 산물로 광주는 지금까지도  
소외안에 남은거지.
이 편지처럼 말야.
 
은정- 이 편지는 누구의 거니?
금준- 그가 광주의 짐을 안고 살 때,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이야.
당시 도청에서 함꼐 싸웠던 그는 현재 광주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래.
읽어 봐.
 
은정-편지를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74.교정부-교정지를 읽는다(7)
 
75.편집국
1980년 11월 20일 - 오후 3시경
  
친구와의 전화통화 - 곧 있을 언론통폐합에 관하여.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와 전화..
 
 ".. 그래.. 그래서 요즘 '아듀 80'이라는 제목으로 년말에나 있을
기사를  쓰고 잇다니까.. 그래.. 참. 내.. 우리가 얼마나 자기 대통령
만들려고 띄워줬냐? 그래.. 쓰는 사람들도 속이 뒤집혔었다구..
그래.. 이제와서 배신이야.. 배신이.. 완전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니까.. 멀쩡히 있는 신문사를 왜 없애는거야? 그래..
경향신문에 가도 별거 있겠니? 가봐야.
아니.. 거기에도 문화부기자가 있을거 아냐. 부장이 제일 불쌍하지..
응.. 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뭐.. 경제지로 많이들
가더라구.
처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있잖아.. 광주말야.. 그래.. 자기한테
반대한다구 사람들 그런식으로 죽여놓고.. 뭐? 도청하라지! 직장도
없어질 판국에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냐? 갑갑해.. 하여튼.. 우선
사표를 쓰고 경향신문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란다. 이게 뭐니?
하여튼.. 응?
어.. 있어.  대단한 사람이지. 끝까지 버틸 생각인가봐. 첫마디가
그거더라구.  '전 안씁니다. 일신상의 이유가 없는데 무슨
사푭니까?' 와.. 대단하더라구. 응? 그래.. 휴.. 답답하지.. 짤릴걸
알고서도 이렇게 기사를 쓰고  앉아있으니.. " (조명 서서히 아웃)
 
76.편집국(일상의 소리10)
빈편집국,
 
 
77.흐름의 사무실
금준 들어온다. 한손엔 편지봉투
금준-  누구지?(발신지를 유심히 본다. 이윽고 희색이 만면)
기사거리구나.
(봉투를 황급히 열어본다. 따로 접힌 편지한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연히.. 그분의 소식을 접해.... 너에게 전한다. 아울러
광주국제인권캠프  소식도.....(읽는소리 작아지며, out)
은정- 준비는 다 됐니?
금준- 뭐 준비랄 것 까지야...
은정- 그분 만나게 될지도 모를거라면서.....어떻게 살고 있을까?
금준- 작년에 참석했더라면 그때 뵈었을텐데...
은정- 인권캠프라... 5,18행사에 하나로 열린거니?
나도 잘 몰랐던 일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행사가 열렸는데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더구나.
금준- 나도 컴퓨터통신에 인권소식을 통해서 들은게 다야. 하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각국에서는 광주인권캠프를 더 잘알고
있어. 지난해 캠프 이후 시민연대에서 인터넷에 싸이트를 개설해서
이후 활발한 정보교환과 자료를나누고 있거든.
그분 얘기론 5월광주는 민주화를 열망하고 픽밥받는 셰계인들에겐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한데.
지난해 동티모르의 여학생이 인권캠프에 참가해서 동키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간후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각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동팀모르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신부님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예지.
은정-(고개를 끄덕인다)
금준- 이제 5월광주는 전세계에서 조건과 형태는 다르지만 인권과
평화가 침해되는 사람들에겐 구도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이제 광주는 한 도시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치는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되고있어.다만 우리에게만 정치적 혹은
다른여러 이유로 이재의님의 글에서 보듯 소외와 단절의 도구로
그대보다 더한 아픔으로 존재하는거지.   
은정- 우리가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니...
만회할 길이 있을까?
참. 기차시간에 늦겠다. 몇시차랬지? 나도 같이갔으면 좋겠는데
같이못가는게 아쉬워.
금준- 일부러 밤차로 비둘기호표를 끊었어. 남행열차 안의
사람들을 보다 가까이 접하면서 그곳으로 가려구.
 
 
78.남행열차
 
편집국 열차안으로 바뀌고 거기 금준 타고 있다.
금준-편지를 꺼내읽어본다.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잘보이지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안쓰기나 출근투쟁 등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궈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옆자리에 졸고있는 남자,술에 취해 금준의 어께에 부딪긴다.
앞자리엔 수아 그리고 그의 친구
둘은 조그많게 연주하며 노래한다.
 
79.영상-두사람의 인터뷰 그리고 영정들 계속된다..
 
80.제대-
여인 찾아온다.
제문을 읽고 소지한다.
그리고 흐느껴 통곡한다.
 
81.영정들 그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묻힌곳
그리고 사인들을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함께했던사람들 하나하나 제대 앞에가 분향한다.
 
막  
 
5월17일밤 34주년 전야제 오늘같은 밤이면 1차 공연대본..
2014년5월17일밤 80년도청앞 분수대 그리고 금남로에서 공연할.
 
1
아주 오래 전 17년만에야 용기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그 어리석음을 돌이켜서
그날 이 후 다시 17년간.
그래서 34년이 되어서 돌이켜보는 언덕 이편에서.산사람과 함께 못하는 죽음이후같은 회향길.
 
그 열입곱해 동안 이 나라는 그 아픈 희생의 선물을 안고 어느만큼 진화했는지?
오히려 앞의 열일곱해 아픔 속에서도 피눈물로 이루어낸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꺼뜨리고 사는 건 아닌지?
이기와 욕망에 편승해서 인간존재본연의 도리와 순리를 잃어 버린 채
자기합리화와 모르쇄로 제 시야 속 세상 안에 갇혀 의무를 조각해 나가는 것은 아닌지.
 
넋들이 보셨듯, 아니 너무도 서글픈 절망의 가슴으로 맞이하셔야 하셨듯
이 냉혹한 나라 우리의 어리석음은
34년이 지나도 또 이렇게 그 날보다 더한 국가의 학살을 재현합니다.
스스로 고쳐내지도 못하고
나태로 빼앗겨 버린 주권으로
눈물만 적십니다.
 
2
안녕하세요. 사무실입니다.
광주 캠프 참가 준비로 일찍 사무실을 비웁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 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3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태해지고
선은 점차 악이나 고루함으로 되어져 가는 것 같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에 대해 고민하거나 그것을 잡고 놓지 못하며 추구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소외되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인간적이란 말로 포장되며 세상을 점차 퇴화 시켜가고 있어.
지난 17년의 역사 안에서도 그게 보여.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서 자신이 그 옛날했던 말과 사고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퇴화를 인정하는 이는 없어.
이것이 역사와 인류의 슬픔인 것 같아.
반대로 변하지 않는 변질이 있지.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과 고뇌는 항상 이기적 신상 잡기에만 있었지.
늘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비굴화시키고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처신의 맥을 같이해.
즉 일관된 변절. 그리고 한번도 후회하거나 죄를 인정치 못하는 존재들.
언론 투이 얘기를 하다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언론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모두들 버티다 짤린 존재들.
그 버팀 안에는 항상 비굴한 현실주의적 타협이 들어있어.
곧아야 할 존재들이 휘어져 비굴하면서도 버티다가 짤리거나 뽑힌 거야.
남은 이들은 자신의 비굴함을 순간마다 작은 자리에선 간혹 인정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비굴함을 인정치는 않는 거야.
17년이 흘렀어.
남행열차를 올라타는 한 탈피기자의 얘기가 그 잊혀진 변절감들을 상기시켜 자각 시켜낼 수 있을까?
 
 
4.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반병섭  
 
그때, 그대들이
민주의 횃불 들고
외치고 항거할 때
캐나다 이곳에서 소파에 앉아 TV로만
그 일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그 횃불 군화에 짓밟힐 때
그대들 상했고
그대들 총칼에 죽어
그 횃불 꺼지고
 
아! 그 칠흑의 긴긴 밤에
아이고! 아이고!
痛哭 한번 못하고
그대들 위한
뜨거운 시 한 줄
쓰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해마다 그대들의 피
다시 붉게 되살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광주로! 광주로! 가는데
나는 아직 그곳 찾아
무릎 한번 꿇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누가 나의 자던 잠을 깨우고
고향을 물으면
내가 "광주""光州"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금수강산 삼천리 名山중에
어느 산이 제일이냐 누가 물을 때
내가 "無等"이라 하리니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세월 흐르고  
그 횃불 다시 밝혀지는
행렬(行列)에 뒤늦게
이렇게 따라가는데
그래도  
그대들 나를  
용서하겠는가.
 
5.
 
1980년. 그때  
사진하나 기사 한자한자  
시청언론검열단을 통과해야만 기사는 신문에 실릴 수 있었어.
단 한자도 그곳을 피해갈수 없었지.
 
세상은 뒤바뀌고 있다 했어.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뒤로 하고
잘 보이지 않는 폭력집단의 손길 안에서
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우린 편집국에서 그걸 다보고 있으면서 말하지 못했어.
그 날도 우린 엉뚱한 기사로 잘 짜여진 신문을 발행했고
뒤에서 쓰지 못한 얘기로 나라걱정만 조금했던 거야.
 
그게 고작 지성인이며 언론인이었어.
비굴한 인간들.
 
선배들은 굴절되면 너만 손해라고 얘기했지.
잘 견디고 살아남아서 나중에 증언하라는 식의 충고가 고작이었어
현실에 타협하다 기회를 보아
그들이 힘을 잃으면
튀어나와서
그들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나도 피해자였노라 얘기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인가?
 
광주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우린 고작 기사 안쓰기나 출근투쟁 등으로
양심적(?) 언론인의 체면을 유지하려 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쓰지 않아도 데스크는
열심히 통신지 잡지 오려서 신문을 만들어냈어.
 
정말 쓸데없는 기사들만이 모여서 지면을 채우고
정작 우리가 알려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신문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결하거나 분신하는 기자나 언론인은 없었어.
 
기사를 안쓴다는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해야 할 것은 언론검열단의 눈속임을 해서라도
무언가를 은유로라도 알려야 옳은 것이 아닌가?
 
암호놀이가 시작됐어.
자 이제 시청검열단에 출근하는 저 바보 보안사소위와 나의
암호놀이를 시작하자.
너의 철두철미한 독재수호적인 선입관을 이용하여
나는 지면에 세상을 알릴 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단어와 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진실을 뒤바꿔 전달해 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
데스크에 앉은 부장은
신아일보및 타사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기사를 안 쓰고
부장, 차장들이 모여 휴지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다시 하루 몇 건씩의 기사를 취재해서 써 갖고 오자
그냥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기사는 이제 은유로 쓰여져서
우선 검열단의 보안사장교를 속이고
다시 데스크의 무미건조한 두려움을 속이고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사 씀에 대한
항의 어린 불평마저 들으며
숨은 암호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향해
쓰여지기 시작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지만 아무 것도 막지도 바꾸지도 못했어.
고작 그게 전부였어.
그게 최선이었을까?
 
 
6
그는 지난해 시민연대의 광주국제인권캠프팀과 합류해서
광주 금남로에서의 5,18 16주기전야제와 이튿날 망월동에서의
추념식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그 날의 그곳을 찾았다고 해.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몸서릴 쳤다고 했어,
그건 17년전 자신과 언론이 만들었던 그것과 똑같은 소외와
단절과 차단의 도시로 5월광주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지.
 
그리고 이 편지.
컴퓨터통신을 통해 만난 이로부터 받은 메일 하나가 그의 가슴을 적셨지.
읽어 봐.
 
7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 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 될 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 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 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 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 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보았습니다.
 
 
8.
17년이 지나 정동길 아닌 장충동 여해 공간에 세워졌던 신문사 편집국
한편에 제대를 준비하면서
그 전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다가갔던 빛고을.
그 온기를 안고 이 서글픈 나라 ,그 날처럼 소외된 도시를 떠나서
그 외각,서울에서 준비한 1년간의 찾음.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17년전의 사람들이 되고
다시 17년 ,서른네 살의 금준이 인권과 민주를 향해 일하던 작은 사무실에서 한 발작 옮겨
17년전 고교시절 일하던 신문사편집국의 기자를 만나 인사하던 곳.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대하나가
그 편집국 책상에 걸터앉아서 풍선을 불던 날.
1997년 5월17일 밤.
피아노곡 월광과 혁명을 연주하고
아이들과 숙녀가 나와서 내일을 기다리며 멍하니 작은 불빛아래 정숙하게 노래하던 곳.
몸과 마음을 정숙히하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며 기다리던 밤.
16주기 망월묘역에서 치뤄지던 추념식,
고국을 그리며 이역만리에서 애태우던 한 시인이 16년만에 찾아와 낭송하던 추모시.
그리고 이 17주기추념식을 준비하면서 나우누리 21세기프론티어 동아리.
518번방 남도의 물결 게시판을 통해서 전해받은 시민군의 편지.
17년이 지나서야 적어본 어느 중앙지 문화부 기자의 독백이 가슴저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광대의 온유한 눈빛이 차마 아련하던...
 
2014년 5월 2일 금요일오후 10:36:04

51834,5.18 17주년 전야제-오늘같은 밤이면을 구성하면서
 
17년전 굳이 광주 아닌 곳에서 광주와 같은 시간 같은 날에 같은 이름으로 공연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저몄던 5.18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
그 첫날인 17일 밤의 전야제는 추념식을 준비하는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태어남을 바라보는
투명광대의 얘기를 바탕으로
피아노와 해금연주자가 연주하고 무용수가 춤을 추고
가수가 노래하며 전야제를 구성했습니다.
34주년을 맞으며 그리고 17년만의 복기를 위해서 그날 같이 했던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이 땅 어딘가에 모두 살아있을텐데
마치 잃어 버린 아련한 동화의 등장인물들처럼
어린 날 추억 속의 아련한 동무들처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만남의 제안과 기다림을 돌이켜 홀로 17년지난 이 거리에서 그 날의 전야제를 복기합니다.
신문사 편집국을 만들고 싶고 흐름의 사무실을 중앙에 그리고 한편에 젯상을 준비하는 공간까지.
그 날의 그들이 있다면 꿈처럼 볼 수 있을 그 모든 조각을
그토록 그리웠던 빛고을 금남로 80년도청 분수대
그 모든 것을 지켜봐주고 얘기 전해줬을 시계탑.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과 세대를 넘어서 이제는 아련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모르는 이들의 추억인 듯 살아가는 이 곳에서..
 
그때는 같이 하지 못했으나
몇 사람이 이 시간의 의무를 지키려는 작업에 동행해주기로해서 다가옵니다.
블러드마리님 김강곤님.그리고 그분들과 같이 올 두 분.
언제부턴가 금남로는 전야제가 축제처럼 끝나고 나면 이날 밤은 이내 쓸쓸해집니다.
아무도 30년넘은 그 시간으로 돌아가려하지 않고
술한잔 마시면서 꿈을 꾸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이 시간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않는 이즈음.
오늘의 우리가 부족하다면
17년전의 그 마음으로,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가슴으로 돌아가서
17년이란시간을핑계로 놓치고 말라버린 정결을 상기하려 합니다.
그래서 2014년의 사람들이 만드는 518 34주기 전야제가 끝난 그 거리에서
지워져 간 17년의 시간을 돌이켜서 518 17주년 전야제를 가집니다.
그 때 읽었던 편지와 글과 시와 노래로
순례자들에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진
마지막 5월 광장에서.
 
2014년 5월 2일 금요일오후 10:59:16.
 
 
이름없는공연 [51834 5.18 17주년전야제-오늘같은 밤이면]에 함께할 콘서트프로그램.
고니소리,탁영주의 남도 山사람들의 노래
 
 
 
고니소리 14.05.01. 10:34 new
고니소리와 탁영주(가수)도 5월 17일 노래와 연주로 30분 정도 하려 합니다. 광주역이든 금남로든 시간정해봐요
 
┗ 예기 14.05.01. 11:33 new
저희의 공연일정에 함꼐해주실수있다면 17일 밤 전야제가 끝난 11시에서 12시사이 금남로입니다.
하지만 1박2일 일정이 아니시라면 5시나 6시에 다른장소로 일정을잡겠습니다.
 
고니소리 14.05.01. 11:41 new
저는 11시가 좋은데... 동행자에게 일정 물어보고 결정하죠
 
김강곤 광주에서 뵙겠습니다
2014.5.1 오전 11:17 ·
 
예기 오실 날자와 시간이 정해지시면 다시한번 연락주십시요.제 희망으로는
저희가 공연할 17일 전야제끝난밤 금남로에서의 공연 518 17주년전야제에 함께해주셧으면 구성과 진행에 좋겠습니다만
다른시간이라도 미리 연락주시면 거기맞추서 일정잡겠습니다.
 
2014.5.1 오전 11:28 ·
김강곤 17일에서 18일 넘어가는 자시가 좋겠네요
2014.5.1 오전 11:32
예기 네 그럼 51817-1 오늘같은 밤이면에 연결공연으로 구성하겠습니다.
자세한 일정및 공연게획은 계속 업데이트되므로 링크타고 참고하시고 다움까페게시판통해서 글주시길 바랍니다
.이름없는공연 34주년5월 동행일정,확정된 공연입니다..(계속업데이트중)
 
김강곤
제목: 고니소리, 탁영주의 ‘남도 山사람들의 노래’
내용: 남도 山사람들의 노래를 오월광주에서 다시 부르다
 
1. 파리꼬뮨의 노래
2. 7백의 노래 
3. 혁명가의 아내 
 4. 아름다운 봄볕아래서
5. 빨찌산통신
6. 부용산
7. 산동애가
8. 카츄샤의 노래
9. 길떠나는 저녁에
10. 오월의 노래
형식: 아코디온, 기타, 우크렐레 연주로 이야기를 곁들인 콘서트
준비: 충전식소형앰프, 마이크2, 마이크스탠드2 (음향은 모두 공연자가 준비),
빔프로젝트(밤에 할 경우)
 
예기 고니소리님,준비하신 고니소리, 탁영주의 ‘남도 山사람들의 노래’
17일 몇시쯤 도착하셔서 당일 가시는지 몇일날 몇시까지 광주에 계실건지 알려주시면 그 시간에 맞춰서
공연시간과 장소를 준비해 확정짓겠습니다.
광주에선 아직 저희의 이번 34주년 5월공연기획에 아무도 장소를 제공해주기로 하신 분이없어서
모든 공연은 게릴라공연방식으로 기획되고 공연될 것같습니다만..
 
 
 
 이름없는공연 34주년5월 빛고을에서의 공연일정입니다.(계속업데이트중)
빛고을5월에 하루라도 오셔서 이름없는공연자가 되어 동행하실 분은
자신이 광주에서 함께할 시간과 희망작업내용 적으셔서 신청하시고 온오프라인으로 같이 준비해서 함께 하실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oncorea/TeLo/4
이름없는공연 34주년 5월공연
(정확한 공연시간과 장소는
관객의 접근을 막기위해서 비공개합니다)
이름없는공연 518 17주년 전야제-오늘같은 밤이면(5월17일 밤금남로,)
이름없는공연 518 17주년 추념식-남행열차(5월18일 낮 망월동)
이름없는공연 세가지사랑 -(5월 **일 저녁 국군병원,기무사)
이름없는공연 순애언니(5월**일 80년도청,금남로,망월동 등오월길 곳곳)
이름없는공연 후이넘의 기억-상무대 (5월**일.518자유공원)
이름없는공연 후이넘에서 돌아와2(
이름없는공연 잊지마세요3(5월**일 그마남로 충장로)
이름없는공연 헤어진 다음날(5월**일 광천동성당 ,전남대)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공연영상회(5월**일 푸른길,상무관)
이름없는공연 도청별관(5월27일 새벽 80년도청)
 
34주년 518 이름없는공연의 5월작업중
공연영상회를 진행할 영상작품목록입니다.

지난 17년간의 40편의 5월연작중
2006년 부터 2013년까지의 5월공연 작품중 들 의 영상들을 모아서
34주년 5월 빛고을에 투사합니다.
5월10일부터 28일사이에 여건이 마련되거나 장소가 스스로 제공되는 곳을 찾아서 연속상영회를 가집니다.
보고싶은 작품이 잇으시거나 상영을의뢰하실 곳이 있으시면
5월10일까지 신청해주시면 일정조정해서 상영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장소제공문의처
http://cafe.daum.net/oncorea/TeLo/11
2006.5.18 순애언니 15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16
2007.5.27헤어진다음날 1(옛전남도청앞새벽) 18
2007.8.11헤어진다음날2(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19
2007.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
2009.6.13도청별관01(광주 옛 전남도청) 29
2009.6.28눈되지못하고눈되지않고07-(광주 옛 전남도청) 30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31
30년지나5월(2010년5월광주5.17-27)금남로,옛도청 36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2012.5.17 12년전 그 금남로에서 39
2013.5.27겨울여행2-33년(광주80년도청앞)40
 
 
 
34주년5월.이름없는공연은
광주에서 17일간 3일간의 영상회와 12편의 공연으로.
 
34주년 5월,빛고을을 찾아 그곳에 머무르며 준비하고 공연하며 복기할 17년의 얘기.
80년의 얘기가 아니라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오월을 화두로 이어온 민주와 인권 그리고
평화의 얘기,되돌려 다시 그리기.
 
준비하였으나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하면서 작품을 재구성하고
오월의 화두 안에서 시간을 살아온 그들의 얘기를 같이 엮어낼 기회는
끝내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월의 이름으로 만나고 다가와 같이 나눈 사람들,
다시 만나 그리고 싶었으나 같은 하늘 아래 유명을 같이하고 살면서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다른 하늘아래 사람들처럼 옛 사진 속에서나마 다시 보며
그들이 만들어준 이야기를 들을 홀로 기억해 빛고을에 섭니다.
몇 년 전부터 복기를 시작한 작업들.제외하고
그 연속과 매듭으로
열두 편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확정합니다.
 
34주년 오월 빛고을 그곳에 머물러 살면서 시간구애없이 그려볼 17년간의 오월.
참 많은 사람들이 오월광주로의 순례 공연 동행 요청에 응답해서
같이 준비하고 같이 얙하면서 만들었던 대본과 음성녹음 그리고 몸짓.
결코 재현하거나 대체해서는 안되는
근접할 수 없는 이방인 혹은 찾아가는 순례자의 자세로 하나하나 만들었던 인물들.
그들의 추억과  다시 만나 손잡고 싶은 그 어린 영혼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정성으로 흠뻑 젖었던 51817에서부터 시작해서
함께 준비해준 사람이 있었던 마지막 작품 도청별관까지
열두 편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이제 그 기다림을 마치고
오월로 나섭니다.
 
그 화두이어온 17년간의 얘기 이제 홀로 가슴과 뇌리에 환시처럼 안고
이름도 입어 버린 아름다웠던 사람들.
동지처럼 그리며 그들이 말하고 움직이고 쉬던 그 모습 홀로 투영해보면서
변해 버린 거리에서 지난 17년간의 오월을 겹쳐 그립니다.
 
준비한 작업중
51817 오늘같은 밤이면과 51817남행열차,
후이넘에서 돌아와-상무대, 잊지 마세요03, 헤어진 다음날,
도청별관 ,눈되지 못하고 눈되지 않고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 등 8작품은  
지금은 찾을 길 없는 잊음 당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작품들로
그들의 모습을 다시 그려서 되새겨 안고 34주년 5월에 펴놓으며 갈 작업입니다.
순애 언니와 세가지사랑 두 작품은
홀로 했던 작품으로 그 공연 당시와는 달리 원형사적지지하나 남아있지 않은 이곳 광주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시는 은인과 떠나가신 넋들을 찾아가는
여전한 기다림 그리고 잊지 않음을 되새길 작업이며
까페 언덕위의 바보는 지난 여러공연에 등장햇던 그 가페의 얘기를 정리한 신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5월공연영상회는
지난17년간 그때 그때 위로처럼 준비해 다가왔던 그 시간의 전달들을
올해도 또다시 이어 이 빛고을과 넋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작업할 작품입니다.
 
5월15일부터 31일까지 17일간 지난 17년의 고마운 삶을
여전히 미안한 가슴으로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절실하게.
그리고 형식적이고 단절된 방문이 아닌 머무름을 통해서
시간의 제약을 핑계댈 수 없게 줄이고 408시간의 묵상으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와주지 않을 공연영상회는
매주 한 요일 2시간씩 총 6시간의 영화제를 프로그래밍해서
관객보다는 그 사영이 그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을 택해서
별도로 준비합니다.
 
17년간의 오월순례를 담은 오월사진전을 준비했지만
스스로 장소를 내어주는 마음을 만날 수 없고
인화할 도구도 인화비도 마련하지 못해서 포기합니다..
 
2014년 5월 5일 월요일오전 10:48:05
 
최종확정한 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 공연작품 12편
 
(공연일정과 장소는 미리 정해서 준비하지만, 장소의 경비나 주인들의 공연불허조치에 따라
혹은 새로운 장소제공자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동참자 아닌 단순한 구경군으로서의 관객의 접근을 피하기위해서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홍보방식으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51817오늘같은밤이면(1997)5월17일 밤 금남로
51817남행열차(1997) 5월18일 망월동
후이넘에서돌아와2(1999)5월**일 금남로
후이넘의 기억-상무대 (2002)5월**일 상무지구,망월동.
잊지마세요03(2003)5월**일 금남로
세가지사랑(2004)5월**일 국군병원,기무사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005) 5월**일 518자유공원
순애언니(2006) 5월**일 망월동,광주역 오월길 일대
헤어진다음날(2007)5월**일 광천동
도청별관(2009)5월27일 80년도청 분수대
오월공연영상회(2010) 5월**일 80년도청 광주역 푸른길
까페 언덕위의 바보(2014) 5월**일 금남로
 
2014년 5월 5일 월요일오전 11:31:19
 
 
34주기에 갖는 518 17주기 전야제와 추념식 공연구성.
이름없는공연 34주기 오월공연작품중
518 17주년 전야제 그리고 518 17주년 추념식,
 
이름없는 공연이 5월연작을 처음시작한 것은 518 17주기였습니다.
마음만으로 짐 지어왔던 5월의 숙제를 스스로 풀기 위해서
공연은 그해 5월부터 언론통폐합까지 7개월간의 어느 중앙지 편집국을 배경으로
한편에 17년지나 그 곳으로 향하는 당시 신문사사환이었던 한 시민운동가의 사무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월의 제대가 광주아닌 도시 서울에 마련되었습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만 방영된 2시간짜리 5월다큐드라마 시민군윤상원이
전편 배경화면에 상영되었고 마지막부분 희생자들의 영정이 하나하나
그 사연과 함께 비춰졌습니다.
17년을 다시 지나 34주기.오월에 그 17주기 서울에서 가졌던 그 얘기를 복기해서
공연하고 싶었습니다.
준비하는 동안은 30년을 넘어 축제화 되어가는 오월광주를 보며
하나하나 지워가는 원형사적지를 보면서
그리고 그 거리를 메우고 남아있던 그 날의 사람들이 하나 둘 만날 수 없게 되어감을 인식하면서
17년전 그 날의 그 마음처럼 34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이 아닌
17주년의 전야제와 추념식으로 5월17일과 18일을 기리고 싶었습니다.
2014년,세월호 참사와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며 비탄에 빠져 버린 4월을 지나
오월을 맞으며 축제화되어가던 전야제는 어울리지 않는 듯 취소되었고
국가보훈처가 주도하는 추모식 또한  정권이 해석하고 키우려는 의미의 다름으로
오월단체들이 불참을 선언, 그 의미를 잃었습니다..
16주기 그리고 그 이전해 들처럼 .국가행사가 아닌 시민들의 넋을 기리는 진솔한 마음으로
금남로에 준비했던 전야제와
망월동 민주묘역에서 오손도손 가지던 그 추념식이 생각납니다.
넋들이 그렷던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 절실한 가슴으로 의무를 지고 그렸던 오월의 약속.
그리고 다짐.
이후 17년의 시간 매년 오월을 맞으며 참 많은 허탈감과 망각,
그리고 세대를 이어내지 못하는 민주의 염원.
 
33주기 오월을 헤어지며 준비한 34주년 오월은
그날 이후17년간의 우리들의 망각과 잃어버림에 대한 자각입니다.
17일간 3월한달간 순례하면서 머물렀던 오월길을 따라서 마디마디에서 공연할 열두 편의 작품마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의 오월이 있습니다.
그리고 5월17일 밤 금남로 그리고 18일 망월동에서 공연할
518 17주년 전야제-오늘같은 밤이면과 17주년 추념식 남행열차엔
그 첫해였던 1997년 오월의 이방인들이 가졌던 보통명사로서의 광주에 대한
존엄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습니다..
 
전야제는 추념식에서 읽을 한편의 시와 16주기 남도의 물결 동아리 소모임방 게시판을 통해서
한 시민군이 건네준 편지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노래가 있고 그 날의 금남로와 17년후 갑오년의 금남로에 놓여진
또다른 몇 사람의 낯설음이 있습니다..
 
추념식은 이튿날아침 18일 금남로에서 광주역을 거쳐
망월동에서 10시 국가주최의 기념식이전에 가집니다.
밤새 밥과 국 과일과 어포등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의 정성으로 제례음식을 준비해서
망월동으로 가는 첫 버스에 오릅니다.
그리고 망월묘역 한편에 넋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머물러
17주년 그 날의 공연처럼 시간을 돌이켜 오늘에 놓습니다.
17주기 추념식에 함께 준비했던 17년전 그 사람들이 다시 같이 모여서
작업하고 싶었으나 거짓말처럼  단 한 사람도 이승에서 만날 수 없어서
작품은 그들의 목소리와 발자국소리등 여해 공간에 살아 움직였던 소리만을 가지고
홀로 진행되게 구성을 마쳤습니다.
 
그날 편집국에 놓여서 읽히던 신문처럼,
추념식공간에는 현재의 신문들이 놓여지고
대안언론으로 추진되는 몇몇 방송들이 그 날의 대자보나 투사회보처럼
판박이되어 단절과 소외 속에서 주어집니다.
호남선 야간 통일호 남행열차를 타는 이의 목소리와 그가 읽던
기자의 글 은유로 쓴 기사가 밤열차 안에서 되새겨 읽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부분.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과
자신에게 사실을 말해 달라시던 분의 말씀으로
34주기에 시간을 거슬러 복기하는 17주년 추념식은 끝납니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오전 11:18:28.
 
 
 
이름없는공연 34주기 오월공연 작품중
세가지 사랑 (국군병원 기무사 상무지구공연)
5월15일공연예정.
 
2004년 24주기 오월은 레일아트와 오월민족극마당극제에 연결해서 공연하며
오월사적지표지석을 찾아 빛고을의 오월을 순례햇습니다.
금남로에서 상무지구까지 오랜 공사를 마친 광주지하철이 완성되고
지하철역사에서의 공연이 가능해져서 그 지하철따라 공연일정을 준비했고
518민주공원에서 가지는 5월행사에도 처음으로 동행해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통일연극 마임페스티벌도 같이 준비햇지만
오월기간동안 그린 것은 사랑에 대한 담론을 이어 그린 세가지사랑이
이 해 순례의 중심이었습니다.
.
 
이름없는공연 2004년 5월 빛고을 순례공연일정.
 
17월18:00 금남로4가역(레일아트) 세가지사랑
17월23:00 금남로-세가지사랑(자체공연)
18화08:00 망월묘역-세가지사랑(자체공연)
18화18:00 도청역(레일아트)세가지사랑
19수18:00 남광주역 (레일아트)마임페스티벌
20목18:00 중심사입구역(레일아트) 세가지사랑
21금18:30 전주 양사재(전주열린문화연구회)세가지사랑
21금19:00 전주 양사재(전주열린문화연구회)마임페스티벌
22토14:00 금남로4가역 (레일아트) 세가지사랑
22토19:30 5.18기념공원(518행사위) 세가지사랑
23일19:30 5.18기념공원(518행사위)마임페스티벌
24월18:00 상무역 (레일아트) 세가지사랑
24월22:30 5.18자유공원(518행사위) 세가지사랑
25화18:00 쌍촌역 (레일아트) 세가지사랑
26수19:30 5.18자유공원(518행사위) 마임페스티벌
27목04:00 전남도청앞-헤어진다음날(자체공연)
27목18:00 농성역 (레일아트) 마임페스티벌
 
세가지사랑 2014년오월 작품구성
 
세가지사랑은 사랑담론을 통해서 정리한 사랑에 대한 정의 안에
오월의 넋들 기린 작업으로
사랑을 세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첫 번째 사랑 연인의 사랑
두 번째 사랑 지인의 사랑
세 번째 사랑 모르는 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 구성은 첫 번째 사랑은 고멜의 노래
두 번째 사랑은 노래배우기 전화카드 한 장
세 번째 사랑은 새입니다.
 
2004년에는 김영철님의 가족의 얘기를 첫 번째 사랑으로
두 번째 얘기는 벗과 동지들
그리고 세 번째 얘기는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상기하는 모습으로
사랑의 방식과 그 실천을 그립니다.
 
10년이 흘러 세가지사랑은 이후 자연과 삼라만상의 사랑으로 다가가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이 하나이며 순차적이지 않으며
하나이므로 셋일 수 있고
셋이 아니므로 하나도 아닌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되었습니다.
 
1.고멜의 노래.
국군병원을 찾아가서 가져온 도시락을 떠먹이던 가족의 모습과
다시 찾아간 병원 ,치료 후 이첩되었다는 소식에 기무사로 찾아가지만
면회하지 못하고 기무사 담장아래서 기다리던 모습.
 
2.전화카드한 장
그 오월의 해방광주가 끝나고 이후 잃어 버린 벗들을 찾아서
상무대 법정,그가 앉아있었던 피의자 대기실을 헤메이는 사람.
사적지 표석과 조각조각의 흔적만으로 남은  그 날의 추억.
오월을 다시 걸어보며
지금은 변해 버린 도시 속에서 찾아보는 그리움을 그립니다.
 
3.새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역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가는데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그리고 그렇게 원리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운.
노란 리본에 적은 편지.17년을 다시 넘어서 2014년 오월
이 나라 어느 마을 광주의 한편에서.
 
2014년 5월 8일 목요일오후 4:40:37.
.
 
 
 
 
5월27일 혹은 28일 공연예정 헤어진 다음날(광천동,예술의 거리)
.
 
헤어진 다음날은 2007년에 구성하고 공연한 세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20주기이후 몇 년 전부터 세명의 남자가 공연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해서
이 작업을 공연화 시켜줄 세사람의 남자를 찾아 헤메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더 미룰 수 없어서 2007년 예플러 혼자의 작품으로
다시 구성해서 공연한 작품입니다.
준비하고 좌절되면서 이 작업을 같이해줄 그리고 오월 광주를 생각하면서
세사람의 넋을 위해서 공연을 만들어줄 남자 셋을 이 나라에서 끝내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서글픈 현실로 다가왔던
살아남은 이들이 꾸역꾸역 일상만을 이유로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죄스러움.
1980년 5월27일-1998년8월-1998년9월
공연은 세 사람이 각기 같이 걷던 길을 따라 제 삼자가 순례하는 방식으로 구성됐습니다.
그리고 7년지난 지금 다시 5월 헤어진 그 다음날에
이제는 그 흔적조차 지워 버린 80년도청앞이 아닌
광천동 그들이 가난한 아픔 속에서도 평화를 그리며 사랑 나누던
광천동 옛 모습대로의 골목길 그리고 시민아파트와
한쪽 벽과 입구만 남기고 해체해 버린 광천동 야학터에서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들이 준비하던 강학들의 노트와 수업준비물.
극은 3장으로 구성하고
세 번의 반복되는 노래따라
첫 번째는 상원 두 번째는 영철 그리고 세 번째는 효선의 행적을 따라서
1장은 상원을 떠나보낸 영철과 효선의 마음을
2장은 영철을 떠나보낸 효선의 마음을
3장은 세 번째 벗인 효선마져 떠나보낸 남은 이의 마음을
그 들이 걷고 생각하고 서글피 행동하던 시간의 모습을 투시하면서
머뭅니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오후 5:17:34
 
 
34주년 5월  이름없는공연5월연작영화제 
광주 예술의거리 민들레소극장5층
.5월16일,23일,30일 금요일 저녁 8시반부터11시까지
총 11편의 공연영상 연속상영회
 
상영작품 및 시간표
 
5월16일 첫날
8:30  분꽃(37)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9:10  518 34주년이름없는공연(10) 
9:20 순애언니(17)  2006.5.18 순애언니 15
9:40 오월길(80)  2014.3.오월길(광주사적지전역)41
 
5월23일 둘째날
8:30  518 30주년(5)
8:35  30년지난5월(22)  2010.5.17-2730년지나5월(금남로,옛도청) 36
9:00  겨울여행2-그리움(25)  2001.5 26-27 겨울여행2(망월동,전남도청)6
9:30  12년전 금남로에서(38)  2012.5.17 12년전 그 금남로에서 39
10:10 518 34주년 이름없는공연(10)
10:20 겨울여행2-33년(36)  2013.5.27겨울여행2-33년(광주80년도청앞)40
 
5월30일 마지막날
8:30 잊지마세요(43)  2003.5 잊지마세요032(금남로)
9:20 헤어진다음날2,3(20)  2007.(8.11성주성밖숲.청실홍실공연후무대) 19 .9.10-11헤어진다음날3(광주) 20
9:45 도청별관02(23)  2009.6.28-29도청별관02(광주 옛 전남도청) 31
10:10 518 34주년 이름없는공연(10)
10:20 잊혀질 때까지는(28)  2006.5.27 잊혀질 때까지는16
 
영상회는 누구에게나 개방되며
보고싶은 시간에 오셔서 보시다가
그만 보길 원하는 시간에 가시면 됩니다.
음료나 음식물을 가져오셔서 드셔도 되고
11시경 마지막상영을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싶으신 분은 남으셔서
얘길 나눠주셔도 됩니다.
 
 
 2014년 5월 9일 금요일오후 5:16:43
 

34주년 5월작업, 올해도 홀로  모든공연을 그리고 하룻밤 세분과의 만남으로

두달 전부터 광주에 거처를 정하고 5월광주에 머무르며
기획하고 준비한 이름없는공연의 5월작업12편의 공연과 3일간의 영상회는 
올해도 결국 함꼐 준비하고 같이 해주시기로 하신 분이 
마감까지 한 분도 안계셔서 
이  17일간의 광주에서의 일정은 홀로 공연과 영상회로 진행됩니다.
특히 그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공연을 만들고 같이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더라도
광주지역에서 지역 분들과 같이 만나서 작업을 준비하고 구성해보고 공연해보고 싶었던 작은 희망도
모두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내년 35주기에는 이 나라 어디에선가 살아 계실 분들 중 한두 분이라도
오월을 화두로 준비하는 이 제안에 응답해서 함께 해주시길 또 기대하며
같이 만들고 싶었던 모든 것 등장인물 2명이상이 나오는 작업의 대본을 모두 모노드라마로 바꾸고
그 34주년공연을 시작합니다. 
비록 작품을 같이 만들지는 못했지만 
17일 광주에 자신의 작은 작품을 준비해서 오시기로 하신 분
블러드님 고니소리님 탁영주님  3분이 계시고
영상회장소로 공간을 빌려주신 극단토박이분이 계셔서 
그들을 만나는 것으로 이번 34주년오월은 
산자들과의 만남 부분은 그 의미를 새깁니다..
늘 한두 분이라도 같이 하던 분이 계셨던 27일 새벽도 
올해는 아무도 오시겠다는 분이 안계셔서 더욱 쓸쓸할 것 같습니다. 
 
2014년 5월 12일 월요일오전 8:35:38
 
오월공연영상회
 
12편 공연중 [오월공연영상회]는 2010년 5월 광주에서 가 병? 공연영상회를
복기하는 공연입니다.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 로비에서 민족극한마당의 일원으로 상영회를 가졌던 작품이고
또한번의 오월 영상회는 옛 도청 별관에서 밤샘영화제로 진행되엇습니다..
 
이번 34주년 작업중
민들레소극장5층에서 3일간  매주 금요일 준비한 공연영상회는
지난 17년간의  총 40편의 공연기록을 모두 돌이켜보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어서
많은 아쉬움을 안고 총 6시간분량으로 작품을 선별했습니다.
특히 프로그래밍에서 제외된 광주가 아닌 지역에서 공연했던 오월공연의 영상들중 몇편은
34주년 오월복기공연을위해 옛 테이프들을 찾아서 어렵게 재편집해낸 영상들입니다.
같이보며 기억하고 돌이ㅕ 다시 공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지 못한점 아쉬워서 
12편 공연중 오월영상회 공연에담아서 공연을 가지려 준비합니다.
광주에서 오월기간동안 20분 30분되는 공연영상을  거리한편에 투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어딜지
찾고 있습니다.
3,4군데를 이어가며 거리영상회형식의 공연으로 준비합니다.
 
519평화 그그리움으로 520평화 그 그리움으로 521평화 그 그리움으로
2010.5.22 평화 그 그리움으로(30주년 5월광주 22일) 35
 
2014년 5월 12일 월요일오전 8: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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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사랑(2004)5월15일 국군병원,기무사
51817오늘같은밤이면(1997)5월17일 밤 금남로
51817남행열차(1997) 5월18일 망월동
도청별관(2009)5월27일 80년도청 분수대
헤어진다음날(2007)5월28일 광천동
 
후이넘에서돌아와2(1999)5월**일 금남로
후이넘의 기억-상무대 (2002)5월**일 상무지구,망월동.
잊지마세요03(2003)5월**일 금남로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2005) 5월**일 518자유공원
순애언니(2006) 5월**일 망월동,광주역 오월길 일대
 
오월공연영상회(2010) 5월**일 80년도청 광주역 푸른길
까페 언덕위의 바보(2014) 5월**일 금남로
 
마흔두 번째 오월연작 5월15일 국군광주병원,505보안부대앞공연 51834 세가지사랑 구성
 
34주년 5월,17일간의 공연,그 첫 공연은 5월15일 세가지사랑으로 시작합니다.
34년이 지난 현재까지 광주에서 유일하게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의 원형사적지로 남아있는 두 곳.
올해로 그 마져 마지막 모습이 될 그 곳에서
국군광주병원과 기무사 505보안부대,상무대로 찾아다니던 가족들의 얘기를 첫 번째 사랑의 소재로
505보안부대로 오르는 길과 철조망 담벽
그 날의 접근과 촬영 금지간판이 아직도 남아있는 국군육군병원 길을 따라
닫쳐진 정문에서 자식의 소식을  그리던 부모
그리고 그 여름과 가을을 지내며 찾아가던 그 막연했던 면회길을
따라가봅니다.
2004년 만들었던 세가지사랑은 연인가족의 사랑을 첫 번째사랑으로
ccm 고멜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해석해서 구성했습니다.
스스로 밥마저 편히 먹을 수 없게 변해 버린 그에게
싸간 도시락을 펴서 수저로 밥을 권하던 그 아내의 모습은
이후 1998년여름까지 이어졌습니다.
국군광주병원엔 그 핏빛무서움속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숨겨진 아름다운 미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505보안부대로 이첩되면
다시 시작되던 암흑의 세상,
 
상무대 영창으로 상무대 법정으로 이어진 서글픈 여정의 시작에서
멈춰진 시간을 살아가던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
이제는 그 원형을 지워갈 마지막 원형 사적지에서
열린 만큼의 공간을 따라 34주년의 공연을 시작합니다.
 
3장으로 구성된 세가지사랑 그 두 번째 사랑은
지인의 사랑 벗 동지의 얘기입니다.
2004년 초연에선 오월의 동지들의 얘기를 찾아 순례하는 이의 모습을 그렸지만
이번 복기 공연에선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지난17년간 빛고을을 찾아 함꼐햇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날같이 만나고 만들었던 얘기들을 회상하며
홀로 빛고을을 걷는 모습으로 구성합니다.
노래배우기 전화카드 한 장을 배경음악으로 구성하며
1999년 후이넘에서 돌아와2-그리움의 이선화,고재경 박미루 이창원,김진수님
2000년 잊지마세요의 김선재,신현이,유진규님
2001년 겨울여행2-그리움의 김종은 박수현 이창원님
2002년 후이넘의 기억-상무대의 이차원님.
2003년 잊지 마세요03의 원선영,김주영님
2005년 존재하는 평화를 향해의 별음자리표,한창호,김진수,김미경님
2006년 잊혀질 때까지는 의 김봉호님,나창진님 정찬일 님
2007년 헤어진 다음날의 최상돈님.
2010년 30년지나 5월의 박양희님
2013년 겨울여행2-33년의 김봉호 블러드님,등
그들과 같이 준비하고 다가가 공연했던 그 모습들을 오버랩하면서
나누던 이야기 주고받으며 움직입니다..
 
세가지사랑 3장의 마지막 장은 새를 배경음악으로 공연합니다.
인간이 다가와서 만들어내는 세상에 대한 서글픔
그래서 인간의 넋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얘기하던 그 날의 마음은
아직도 변함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역사의 후퇴와
넋들과 함꼐 어렵게 쌓아왔던 민주의 허망한 돌이켜 부서짐.
그리고 이제 세월호로 증명하는
국가없이 국민뿐인 세상에서
모든 걸 마치고 조용히 쉴 나무그늘아래 앉은 이의 바라봄.
2004년 초연에선 오월 사적지를 순례한 후
오월이 시작된 전남대교정 한편에서 이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은 지인도 동지도 없이 계속한 순례의 기억들을 담아서
2004년5월에 담았던 광주지하철과 4월마당극제 그리고 전주양사재에서의 세가지사랑,
2008년 평화 그 그리움으로
2009년 도청별관
2011년 분꽃
2012년 12년전 그 금남로에서 등의 작업으로
동지도 벗도 없이 이제는 아무도 다가와 같이 순례길에 올라주지 않는 오월에
홀로 준비하고 찾아와 순례가지던 모습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그날 교정에 새로이 세워진 오월조형물과 그곳에 앉아서 바라보이는 사람들.
신록의 오월을 10년이 흘러 노란 리본들로 덮힌 이 도시의 모습 바라보며
공연을 마칩니다.
2014년 5월 13일 화요일오전 10:25:34
.
 
이름없는공연 34주년오월사진전 준비합니다.
 
34주년 5월 광주에서 열리는 행사나 전시등의 일정을 따라 찾아보다가
서울부산 등 타지역과는 달리
광주에서는 오히려 마땅한 오월사진전이 기간 중 열리는 것을 만날 수 없어서
혹시라도 보고픈 사람이 있을까 하여
이름없는공연도 준비하다 포기했던 오얼사진전을 다시 준비합니다.
지난 17년간의 오월 빛고을의 모습을 담았던 4000여장의 이름없는공연의 공연사진집을 정리해서
100여장을 인화 준비했으나  인화비를 끝내 마련하지 못해서 포기햇던 사진전을
다시 준비합니다.
인화해서 보여드릴 수 없는 여건에서 방식은 슬라이드 사진전으로해서
실내나 저녁야외공간을 찾아서 준비합니다.
준비기간중 장소를 구해봤으나 광주에서 공간을 가지시거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벽면의 주인 분들 가운데서
장소제공을 해주신분이 한 분도 안계셔서
이 전시회 또한 주인없이 영사가 가능한 공간과 시간을 찾아서 이뤄지거나
게릴라 공연식으로 0시에서 4시사이 심야시간에 빛고을 어느 곳에서
게릴라 전시처럼 공연될 것입니다.
준비했던 12편의 공연 중 한 작품을 교체하거나
추가해서 13번째 작업으로  34주년 오월사진전을 공연됩니다.
2014년 5월 14일 수요일오전 10:06:52
이름없는공연 34주년 12편의 5월공연및 3일간의 영화제
그리고 사진전 (5.15-31)
17일간의 일정중 첫날 5월15일 목요일 공연일정
이름없는공연42번째 오월연작
[세가지사랑-51834]
505보안부대와 국군광주병원
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순례공연은
관객에게 보여드리거나 얘끼하려는공연이 아닌
같이 준비하고 함꼐 참여하는 사람만의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그저 공연시간과 장소를 물어보고 구경삼아 보러오는 관객이 생기지않게  정확한 공연시간과 장소를
참여하지않은 분들에게 공지하지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의 형태를 띄고 누구나 볼수있는곳에서
가림없이 공연되므로
무언가 그리워 그날 그 곳에 오시는 분이 있다면 ,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몸짓과 행동과 소리가
일상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들어오시는분이 계시다면
그곳에서 공연을 만나 실수도 있습니다.
2014년 5월 15일 목요일오전 08:55:01
34주년 복기작업 [518 17주년 전야제 그리로 추념식]
1.전야제-오늘같은밤이면
부제로 오늘같은 밤이면과 남행열차를 적었던 1997년
이름없는공연의 오월연작 첫 작품이 된 51817은
광주 아닌 곳에서 오월 전야제와 추념식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1년을 준비해서 이틀간 공연한 작업으로 이후
그날아닌 날에도 와 지워진 소외로 1997년안에 재구성해서 공연까지 가져본 작업입니다.
16주기5월 광주를 처음 찾아서 그 오월의 빛고을을 보고 돌아서서
80년당시의 참여하지 않고 소외시킨 외부사람들의 원죄를 바탕으로
전야제와 추념식의 형식을 무대한편에 두고
극중극과 한편의 영화상영을 동시진행하면서 무대한편에 다시 분향소를 만들어
분향과 조문을 기다리는 방식의 5시간연속공연.
이제 그 날의 시간만큼의 17년이 다시 지나서.
34주기에 복기해보는 전야제와 추념식.
518은 이후 국가기념일이 되고 광주시가 주최하고 다시 국가 보훈처가 주최하는
망월동에 새로이 조성된 국립묘지에서 국가 관리들이 참여하는 국가 기념식이 열리고
국가의 예산지원으로 경찰의 방어없는 전야제도 열리지만
그런만큼 오히려 형식화되고 진정한 뜻은 지워져가는 17일과 18일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국가와 보훈처 지원의 전야제가 열리는 금남로에 다른 한 편에서
또 하나의 시민전야제가 열려서 두 개의 전야제가 금남로에 대치 하기도 했고
호화롭고 뜻모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때 이른 축제의 전야제도 있었습니다.
망월묘역 역시 정권이 관리함으로서
오히려 가슴 저려도 포근했던 구묘역에서의 안치보다
정치인의 형식치레와 뜻모를 기념사를 들으면서
이상한 노래와 군악연주로 끝맺는 오월이
나라의 정권따라 가늠되고 평가되는 슬픈 묘역의 추념식이 되어갑니다.
 
17년전엔 그리고 그 이전엔 오히려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진정으로 추모할 사람들이 다가와 추모했고
금남로에 다시 나와 그 날을 새겼으며 넋을 그리고 만나고
다시 이튿날 망월동에서 헌화하며 분향하는 추념식을 가졌습니다.
34주년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며
그리고 채 못 이루고 나태함으로 빼앗겨 버린 민주와 인권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다시 추스림을 위해
34주년에 518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을 준비했습니다.
17년전 그때처럼 여러 사람과 같이 준비하고 광주를 찾고 싶었으나
1년간의 기다림과 제안도 허무하게 부서지고 결국
혼자서 이렇게 전야제와 추념식을 복기합니다.
 
전야제엔 광대와 무용수와 연주자와 가수들이 함께 했었습니다.
전야제에선 추념식에 읽을 석장의 편지 중  한두 장이 읽혀질 겁니다.
그리고 34년의 오월을 기리는 광주인들의 모습이 지나간 금남로를 배경으로
그날 불렀던 몇 곡의 노래가 지금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으로
17년만에 돌아와서 보고처럼 연주될 겁니다.
그 날의 사람들이 다시 부르지 못하면
새로운 이들이라도 다가와서 그 노래를 불러주면서 그날의 얘기를
이어 전해주었으면 했지만
그 마져도 호사스러운 꿈이었는지
결국 17년전 그 날의 공연기록 테잎을 몇 차례 복사와 전환을 통해서 살려낸 영상으로
그 날의 살아 있던 사람들의 전야제를 전합니다.
51817 오늘같은밤이면은 17일 저녁 12시가 되기 전에 금남로에서 공연을 마칠 수 있게
공연됩니다.
17년전 그 날의 모습조차 다 파괴되어 버린
도청과 분수대 광장 그리고 금남로에서
80년그모습을그리며 97년 그 날의 기억으로
서울에서 가졌던  미안함과 죄스러움 안고 그 날을 준비했던
그 순진했던 사람들의 모습 그들아무도 죽지 않았으나 이제 이승엔 없는 그 모습으로
전선에서 모든 전우를 잃고 홀로 돌아온 패잔병처럼
17년을준비한 전야제를 노래도 무용도 몸짓도 연주도 없이
그저 그날 우리가 읽던 몇 장의 편지를 갖고 준비합니다.
전야제가 끝나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그곳에 서성이던 아름다운 사람이 있던 오월 금남로의 그 날 밤을 그리면서.
2014년 5월 15일 목요일오전 9:29:14
.
 
34주년 복기작업 [518 17주년 전야제 그리로 추념식]
2.추념식-남행열차
 
1997년5월16일 밤 호남선 비둘기호를 타고 광주로 향하던 한 시민 언론 편집자가
야간열차 안.옆자리앉은 청년하나는 팩소주를 꺼내 마시고 잠이 취해서
그의 어깨에 자꾸 고개를 떨구었다가는 들고 떨구었다가는 다시 들며 잠을 자고 있었고
마주 앉은 사람 중 하나는 해금으로 조그맣게 귀에 익은 듯한 음률을 연주하다 틀리고 연주하다 틀리며
그의 옆에 앉은 친구인 듯한 여학생은 그 틀리는 연주에 맞춰서 혼잣말처럼 노래를 맞춰 부르고 있었습니다
오월광주 34주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게 준비되었던 세 편의 오월공연중 마지막 공연이었던
애꾸눈광대에선 이 노래가 아주 즐겁게 현란한 사이키 조명과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추는 연기자의
흥겨운 춤으로  들려집니다.
언론 통폐합때 신문사를 그만둔 80년 한 기자의 편지를 들고
광주로 찾아가는 그 시절 그 신문사 사환이었던 시민 언론 편집자의 그 날은
518 17주년 추념식 마지막부분 바로 앞에 남행열차라는 서툰 해금 연주 곡과 그에 애써 맞춰 부르곤 하는
노랫소리 가닥으로 공연되고
이어 아들을 잃어 버린 어머니의 말씀이 시간을 멈춰 버린 도청최후항쟁 시민군의 인터뷰가
이 추념식을 마무리짓습니다.
17년이 다시 지나 이루지도 따르지도 못한 넋들의 마음 앞에서
34주년 추념식이 아닌 17주년의 추념식을 준비합니다.
17주기추념식에 해보고 싶었던 전통제례식 추모의 제향은 다시 만들지 못했지만
29주기 도청에서 도청의 원형보존을 갈망하면서 희생자 유족 분들이 가 병?28년간의 망월동 묘역에서가 아닌
첫 도청에서의 추모제의 모습을 담아서
그 날의 순서대로 34주기 추념식을 구성하고 진행합니다.
신문사 편집국과 대비되어 놓여 있던 분향소의 기다림은
이후 어디에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홀로 앉아 기다리다 분향소를 치우는 방식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제는  5월금남로나 도청 앞 어디에라도 분향소를 설치하고
제대 앞에 상복 혹은 소복을 입고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뜽금없고 어색해 보인다는 생각에
34주년 추념식에선 밥과 국 그리고  즐겨 가난한 저희가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의 제상을 마련하고
18일 새벽에 넋들을 기다리는 것으로 준비를 마칩니다.
17주기 그 공연처럼 80년5월에서 11월25일자까지 신문들을 구해놓고
편집국을 그리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의 신문과 변함없는 신문을 구해서 무대한편에 두고 편집국의 얘기를 진행합니다.
놓이는 신문은 아이러니하게도 80년그때에 가장 왜곡의 선두에 섰던 경향신문이 아닌
그래도 투이의 여운을 간직했던 신문들입니다.
17일밤 금남로에서의 518 17주년 전야제에 이어
18일 새벽 금남로 그리고 아침 망월동에서
518 17주년 추념식은 공연합니다.
남행열차란 제목이지만 그 날처럼 연주하고 노래할 수 없는 형태여서
제레에 이어지는 마지막노래는 오늘같은 밤이면 이며
17주기추념식에서 불려졌던 그 음성입니다.
2014년 5월 15일 목요일오전 10:27:07
 
국군광주병원그리고 505보안대앞에서
마흔두 번째 오월연작 세가지사랑 51834를 마치고
 
원형보존된 마지막 5월사적지 두곳
국군광주병원과 505보안대 기무사.
80년오월당시의 아픔을 34년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폐허가 되어가는 그 건물들 사이로 다시 5월의 푸르름과
숲처럼 높고 짙은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씨끄러울 정도로 지저귀며 날아다닙니다.
두곳 다 모두 이전되어서 사용하지 않는 채로 몇 년 빈건물만 남아있지만
이곳도 이젠 광주시에서 매입해서 공원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세미나등을 바라보니 원형그대로의 5월을 얘기해줄 사적지로 남겨지진 못할 것 같아 보입니다.
어쩌면 광주인들 스스로가 5월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치않는 의견이 많은지
빛고을의 80년현장들은 지나 34년간 모두 그 원형을 잃어 버리고
단지 그곳이 이랬었다는 비석하나 세워두고 사진 한두 장 새겨놓는 것으로
이곳이 그곳이엇다고 지워 버린 사적지를 소개하면서 순례자들을 맞이합니다..
34년지나 이제 마지막 원형사적지인 이 두 곳에서
10년전 518자유공원에 세워진 상무대 영창과 법정 모조건물에서
얘기들으며 되새겨 만들었던 오월의 얘기한조각을 다시 만듭니다.
17주기 광주mbc화면으로 보았던 김영철님의 모습과 어느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리고 상무대를 거쳐갔던 여러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2004년 작업했던 세가지사랑의 첫 장은
오월 그 항쟁기간을 지나 시간의 흐름을 잃어 버린 채 멈춘 사람들의 얘기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가족 혹은 벗들의 모습입니다.
가족과 지인의 소식을 찾아 이곳 저 곳을 찾아헤멨을 사람들.
그리고 이곳 군병원과 보안부대까지 찾아와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매정한 폭력 앞에서 철조망 쳐진 담장 앞을
하염없이 배회했을 사람들.
세월이 흘러 죄도 없는  복역을 하고 돌아와 딴 사람이 되어 버린 가족을
또다른 병원이나 요양소에서 만나고 헤어지던 나날의 모습들.
도시락 하나 싸들고 그런 길을 오르는 모습과
제 손으로 밥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이에게
밥을 떠먹이고 입가에 흐른 음식을 딲아주는 사람.
505보안사 입구에선 만날 수 없는걸 알면서도
저 건물 어느 지하에서 고무받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애태우던 사람의 모습까지
소외시켰던 우리는 겪지 못한 그 아픈 이야기를 돌이켜봅니다..
제2장에서 이후 5월연작을 같이 준비하고 나누던 사람들을 그립니다.
그 얘기들의 조각조각 하나같이 나아진 누군가의 아픔에 동행해야 할 의무감으로
그들을 위해 나의 시간을 내어 안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일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과의
꿈이 되어 버린 시간들과의 재회입니다.
세가지사랑 마지막부분 3장은 홀로 남은 순례의 시간들에 대한 얘기로
34주년오월순례 한편에 남겨놓았습니다.
아마도 초연의 그곳 전남대 교정한편 그 자리를 다시 찾아서
그 시간처럼 앉아서 10년을 겹쳐 그리는 작업이 될 겁니다.
2014년 5월 16일 금요일오전 11:03:15
.
 
 
5월16일 상무대에서 공연할 [후이넘의기억-상무대]
 
2002년 작업한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예플러가 적은 그 첫 작업노트는 이렇게 인물을 설정하고
작업을시작햇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주 평범해 보이는 주부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었고
결혼을 해서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편의 직장
문제로 2년전 이곳 광주에 내려와 상무지구 새 아파트로 이사와 생활하고 있다.
결혼생활 10년차의 주부이다.
보통의 주부들 처럼 일상을 살고있다.
아침을 준비하고 남편을 깨워 아침을 들게하고
양말.손수건 셔츠를 챙겨서 출근시키고 나면
딸아이에 준비물을 채겨서 가방에 넣고 이제 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먹인다.
옆에 붙어 앉아 생선살을 발라 밥위에 얹어주고
머리를 빗겨 묶어주고 준비물이 빠진 것은 없나 한번
더 확인을 하고 초등학교3학년인 아이를 아파트
길건너까지 데려다 주곤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 집으로 돌아오며 17번 버스기사인 듯 보이는
아줌마기사님과 언듯 부딪쳤다. 건널목에서
그냥 눈인사만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 3살된 작은아이와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세탁기를 돌려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쓸고 닦고 집안을 청소하고
나면 한숨 돌릴 시간이다.
tv를 켜놓고 차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문득 아까 건널목에서 마주 쳤던 기사님이
생각났다. 여자기사여서 일까? 인상적이였다.
아이는 잠이 들었다 목욕을해서 피곤했나보다.
베란다에 나와 빨래를 넌다.
17층의 아파트에서 우리는 15층에 산다.
베란다 밖 하늘을 올려다본다.
자꾸 돌아다니는게 싫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장에 간다.
저녘 반찬거리를 사고 아이들 과자도 좀 샀다.
그리고 오는 길에 잠시 공원에 들려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도 내려 주었더니 아이는 어느 새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아이를 눈으로만 따라가며 본다.
공원엔 할머님 몇 분 만이 뒤로 걸으며 운동하고
아주 한가로워 보인다.
저만치 뒷쪽에 새로 만들어진 [상무대]가 눈에
들어 온다.
[상무대]바로 옆에 살아도 누구 하나도 관심은 없어 보인다.
주민들 거의가 그래 보인다.
반상회를 할 때 보면 알 수 있다.
[상무대]가 뭐하는 곳 이냐는 묻지만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듣지 않고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언제나 처럼 모르는 듯 스칠 뿐이다.
2002년3월28일 오후2시17분
 

이름없는공연 34주년 12편의 5월공연및 3일간의 영화제
그리고 사진전 (5.15-31)
17일간의 일정중 첫날 5월15일 목요일
공연일정
이름없는공연42번째 오월연작
[세가지사랑-51834]
...
505보안부대와 국군광주병원


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순례공연은
관객에게 보여드리거나 얘끼하려는공연이 아닌
같이 준비하고 함꼐 참여하는 사람만의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그저 공연시간과 장소를 물어보고 구경삼아 보러오는 관객이 생기지않게 정확한 공연시간과 장소를
참여하지않은 분들에게 공지하지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의 형태를 띄고 누구나 볼수있는곳에서
가림없이 공연되므로
무언가 그리워 그날 그 곳에 오시는 분이 있다면 ,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몸짓과 행동과 소리가
일상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들어오시는분이 계시다면
그곳에서 공연을 만나 실수도 있습니다.

 

이름없는공연 34주년 12편의 5월공연및 3일간의 영화제
그리고 사진전 (5.15-31)
17일간의 일정중 둘재날 5월16일 금요일
 
공연일정
이름없는공연43번째 오월연작
[후이넘의기억-상무대-51834] ...
518자유공원,상무대 금호아파트
 
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순례공연은
관객에게 보여드리거나 얘끼하려는공연이 아닌
같이 준비하고 함꼐 참여하는 사람만의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그저 공연시간과 장소를 물어보고 구경삼아 보러오는 관객이 생기지않게 정확한 공연시간과 장소를
참여하지않은 분들에게 공지하지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의 형태를 띄고 누구나 볼수있는곳에서
가림없이 공연되므로
무언가 그리워 그날 그 곳에 오시는 분이 있다면 ,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몸짓과 행동과 소리가
일상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들어오시는분이 계시다면
그곳에서 공연을 만나 실수도 있습니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공연영상회1일
예술의 거리 민들레소극장5층
5월16일 첫날 상영시간표
8:30  분꽃(37)   2011.5.27분꽃.31주년5.27새벽 도청에서 38
9:10  518 34주년이름없는공연(10) 
9:20 순애언니(17)  2006.5.18 순애언니 15
9:40 오월길(80)  2014.3.오월길(광주사적지전역)41
 
영상회는 누구에게나 개방되며
보고싶은 시간에 오셔서 보시다가
그만 보길 원하는 시간에 가시면 됩니다.
음료나 음식물을 가져오셔서 드셔도 되고
11시경 마지막상영을마치고
야기를 나누고싶으신 분은 남으셔서
얘길 나눠주셔도 됩니다.
 
 
 후이넘의 기억-상무대  2002년 518자유공원 초연의구성노트
 
제  목 : 연출노트.구성.옵니버스형식-3개의 에피소드
작성자 : 예기
시  간 : 2002-05-17 오전 11:10:45
후이넘의기억-상무대는
후이넘의기억 초연원본의 대사와 음향을
그대로 사용하되
10개의 장을 3개의 에피소드로 구분,
옵니버스스타일의 형식으로 구성했다.
에피소드1.
순례자와 2002년봄 상무지구의 주부.
순례자는 인도와 경복궁 티벳 광주 지리산 제주를
순례하며 타인을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혼의 얘기를 찾아거닌다.
2002년 상무지구 자유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상무4차지구의 한아파트에 사는주부.
그는 빨래를널며 베란다에서 노을아래의 상무대를
바라보고 양동시장을 다녀오는길에
언젠가와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날 117번 버스종점.배차시간을 기다리는
한 운전기사에게 음료수한잔을 권하며
앞쪽에 보이는 상무대를 보며
80년당시 택시기사였던 그 기사아저씨의
얘길 들으며 지금은 지워진 상무대의 모습을
기억해본다.
순례자는 상무대에 들려 법정  피의자대기실
한구석에 꽃한송이를 놓아두고 간다.
기사아저씨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자유공원과 기념관 그리고 헌병대영창 법정등을
돌아본다.
법정 피의자대기실엔
조금전 순례자가 놓고간 한송이 꽃이 놓여있다.  
순례자는 지리산으로 올라 산장을 지키는 한 할머니의
숙소를 보수해드리고 제주로 향한다.

에피소드2 어느 3일장
2002년 5월18일 새벽
상무4차 어느아파트에서 축구를 좋아하던 한 할아버지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3일장이 시작된다.
친구아버지의 상 소식을듣고 광주로내려온 한사람.
처음입은 검은정장양복과 넥타이가 몹시도 어색한 그는
상무지구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찾아오고
집에선 소복으로 갈아입은 주부.
시아버님의 임종소식을 친지들에게
전화로 알리고 음식등을 준비한다.
3개의 소에피소드로 나눠진 에피소드2는
첫날 18일과 둘째날 19일
그리고 셋째날 장지인 망월동공동묘지에서의
입관과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안에
5월광주를 기억하고 마음속에 20년간을 담아온
주부와 5.18이란 단어만 그저 기억하며
체감하지못해온 한사람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친구는 19일엔 잠시 충장로로 나가서
선배를 만나기도한다. 5.18 22주년행사가
진행되는 광주, 3일째 장지로 가는길엔
망월동신묘역과 구묘역에 담겨진
22년을 지난 싯점에서의 5월광주의 모습이
담겨있고 상복을 입고 망월묘역에 올수있게된
주부는 묘한 아이러니속에서 5월영령을 마주한다.
장지를다녀와 3일장을 마친 시간.
친구는 서울로 다시올라와 자신앞에 다가온
5월광주의 흔적을 바라보고
주부는 친구와의 전화대화속에서
이제 5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상복을 입고 젯상을 차리고
망월동으로 찾아갈수있게된 자신을 감사한다.
에피소드3 7년후인 2009년의 상무대.
에피소드1의 순례자는 그 순례이후
이젠 머무르고 실천하는 이로 변해서
그 순례작업을 좀더 깊이있게 존재하고있고
상무지구의 주부는 이제는 세월이 흘러
더욱 잊혀져버리고 박제화되어가는 5월광주의
한편에서 매주 화요일 친구를 찾아가듯
이제는 허름해져서 오히려 실제의 그곳처럼
정겨워진 상무대법정을 찾는 일상을 보여준다.
5월 그리고 여름 다시 겨울.
내년이면 이제 30주년이구나...
상무대법정 피의자 대기실엔
2002년5월 그날이후 이어지는 기억의과
그 기억이 이어주는 실천.
10년이 흘러 40주년이 되어도 우린
더 절실히 변함없으리라 여기면서..
 
 
34주년 5월작품중 17일밤과 18일 새벽에 공연할 51817의 소품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 몇몇 신문을 준비해야합니다.

근데 이런 신문 구하려면 어디서 구해야하는지 궁금.
책이랑 복권파는 가판대같은 곳에서 파는지?
가격은 한부에 얼마나 하는지?
80년11월25일까지 1-2년은
매일 일곱종의 신문을 1판부터 탐독할 떄도 있었지만
그 후론 낮1시나 저녁녘에 거리에서 세가지신문에 100원하는 걸
가끔 사서 보곤 한것이 신문과의 마지막 인연인듯....
2014년 5월 16일 금요일오후 2:10:40 
 
34주년 5월작업중 거리사진전과 거리영상회를 위해
오늘부터 밤거리 탐사합니다.

하얀벽면이 있는곳.
주인이나 경비하시는분이 안계신 임자따로없는 도시의 한 구석공간.
한시간정도 그곳에 앉아있어도 누가다가와서 거기서 뭐하는거냐고 묻지않는곳.
자기재산인 건물 셔터닫은 벽면이나 담벼락에
밤에 조그마한 영상으로 오월사적지 사진비춘다고
소식듣고 달려나와 저지할 사람 없는 곳..
혹 광주시내 그런 곳 아시면 추천바랍니다.
 
2014년 5월 16일 금요일오후 2:12:40   
 
 
 
518 34주년 이름없는공연 빛고을순례공연시작
세가지사랑 그리고 후이넘의기억상무대 순애언니..
 
5월15일 17일간의 연속작업으로 준비해온 518 34주년 이름없는공연 빛고을 순례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원형사적지인.국군광주병원과 505보안부대에서의 [세가지사랑]으로
17일간의 공연이 연작공연의 첫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날인 16일은 518자유공원에서
후이넘의 기억 -상무대를
상무대 영창 피의자 대기실을 매주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상무대 금호 아파트403동에 사는 주부의 얘기를 다시 그립니다.
그 초연의 마지막부분에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정 피의자대기실을 찾아온 어느 겨울날  넋에게 말하길
벌써 내년이면 30주기네 하면서 29주기의 겨울을 그렸는데
어느새 34주기입니다.
상무지구의 부대가 이전되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모습그대로 재현해놓은  518자유공원의
상무대 모습은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오히려 그 날의 그 곳처럼 되었습니다.
전시된 탁자와 의자 창문과 바닥 기둥과 사진들이 그렇게 나름의 역사를 만들었고
금호아파트의 주부는 이곳에 살게 된 2002년초부터의 세월 안에서
12년간의 정기적인 방문과 이제는 오랜 친구가 되어 버린 넋과의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29주기인 그 겨울
40주기에도 올 수 있을까요?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확신할 수 없는 마음을 얘기하면서 울먹입니다.
2002년 초연이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직접 상무지구 지금은 이름을 바꾼 금호아파트4단지에서
자유공원까지 현장에서 공연해본 상무대주부의 마실길 같은 일상의 순례길.
2002년 5월18일아침부터 3일간의 시아버님의 장례를 그렸던 그 얘기를 다시 되새기면서
변함없어야 할 기억과 그 기억을 통해 지켜나가며 노력해야 할 세상을 향한 자신의 자세를 다시 잡습니다.
이름없는공연 오월연작 마흔세 번째 작업,후이넘의 기억 -상무대의 망월동 시민묘지에서의 장례부분은
17일 아침 망월동 제2묘역에서 공연했습니다.
망월동 구묘역을 찾으면서도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
시민묘지부분입니다.
5월의 망월동 시민묘역은 오월의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살고 지던 시간이 기억되고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5월한편에서 1980년이후 빛고을의 아픔과 그 아픔을 통해 이뤄가는
인간의 사랑을 바라보고 있고  상무아파트의 주부는  시아버님의 12주기인 5월에 서서
다시 만장과 깃발,걸개그림전이 열리며 추모의 객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떠나는 오월의 묘역을 바라보고
자신의 숨은 목적이었던 그곳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그 구묘역에서
17일 시작되는 정임언니의 동생이 되어 오월연작 마흔다섯번째 작업 순애언니를 시작합니다.
매년 오월 언니의 유언따라 은인이었던 순애언니를 찾아서 빛고을의 오월을 거니는 사람의 얘기.
정임 언니가 마지막 만났던 그곳이 광주였다는 것과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는데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그저 따뜻한 눈인사만 주셨다던 순애언니
그 작은 스침을 근거로 언니의 유언따라 불암산아래 살았던 남매에게 은혜를 배풀었던 그 은인을 찾기 위해서
금남로를 망월동을 그리고 빛고을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니는 오월길.
순애언니는 그의 시선 안에 담기는 오월길 그리고 오월 빛고을 순례로서
17일간의 작업 안에서  광주역과 터미널을 시작과 끝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이어갑니다.
17일 광주역에서 금남로로 518 34주기 전야제가 아닌 시민궐기대회가 열리는 2014년의 빛고을에서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아픔으로 이어지는 광장에서 순애언니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공연처럼 시작했습니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오전 8:35:17
이름없는공연 518 34주년 빛고을순례공연(5.15-5.18)
5.15 세가지사랑-51834.(국군광주병원,505보안부대)42
5.16 후이넘의 기억-상무대51834(518자유공원)43
5.16/23/30 이름없는공연오월연작 3일간의 공연영상회(민들레소극장5층)44
5.17-31순애언니51834(망월동,광주역,금남로)45
5.17 518 17주년전야제-51834(예술의거리)46
5.18 518 17주년추념식-51834(예술의거리)47
 
 
 
34주년 금남로에서 가져본  518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
누구와라도 조금이라도 함꼐하고 싶었던 욕심에 오히려 분주했던  홀로작업
 
17년만에 다시 그간 오월에 대한 제사와 마음과 행동을 추스리는 마음으로
17년간의 작업을 돌이켜 복기하기로하고 그 첫 공연이었던 51817을 다시 준비한 34주년 5월.
16주기 금남로에서의 전야제와 망월묘역에서의 추념식을 경험하고
그 이듬해 그날까지도 여전히 단절의 도시인 광주를 생각하며
광주 아닌 곳에서 같은 일시에  518전야제와 추념식을 준비했던 1997년5월17일과 18일 이틀간의 공연.
그 때 같이 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서 재현하고 싶었던 기획은
결국 아무도 음답해주는 이 없고
준비 또한 같이 해준 사람없어서 홀로 공연으로 준비를 마치고 광주에 다가왔습니다.
온라인으로 세사람이 노래와 연주를 하고 싶다는 의견만 주셔서
그들이라도 합류해서 같이 할 수 있다면 전야제에서 노래하고
추념식에 같이 제례를 치룰 수 있어 외롭지 않을거라 안도하면서
공연부분은 예플러의 1인극으로 작품구성을 마쳣습니다.
17일 낮 망월동에서 준비되는 행사가 있어서 전야제 기념식도 없어진 올해에
그래도 광주에서 오월의 그 날을 기리며 동행할 수 있는 기회인 듯 싶어
5시 광주역에서의 고니소리 블러드님과의 미팅을 기다리며 망월동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망월동 구묘역에서 박양희님을 만나서 재단에 쌓여진 우리의 준비와는 차원이 다른 풍족한 제례음식과
옆에 쌓여있는 박스들을 보면서 이방인이고 가난한 저희들이 준비한 초라한 지레상보다는
혹여 여유있는 것이 있다면 광주 분들이 준비하신 졔레 음식을
18일시작의 금남로 추념식 제대에 바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에 제안 겸 문의드렸고
그에 기꺼이 응답해주셔서 저녁 무대에서 제례 음식을 인게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다섯시 광주역에서 기다렸으나 블러드님이 오시지 않았고 고니소리님은 오셔서
금남로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금남로가는길 대인시장을 들려 준비하려던 졔레음식장만도  저녁 금남로에서 전해받기로 한 약속을
담보로 장보기를 하지 않고 곧장 금남로에서의 전야제를 준비하기 위해 금남로로 향했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의 51817 전야제는 광주 분들이 주최하는 금남로에서의 17일 저녁 행사가 끝난 후
금남로에서 진행되게 준비되었습니다.
블러드마리님과 고니소리님의 노래와 연주도 그 전야제에 동행해서 이뤄질 것으로  구성을 마쳣는데
믈러드님은 오시지 않았고
고니소리님은 같이 오신 사람들과 가족들을 이유로 일직 공연을 끝내고 가고 싶다고 하셔서
저희 전야제에 동행을 포기하시고
본인이 하시고 싶으신 시간과 장소에서 연주회를 가지시고 가셨습니다.
박양희님이 얘기하셨던 제례음식은 몇 가지 이유로 과일 몇 개만 와서
전체 젯상을 광주 분들의 정성깃든 제례음식을 바치고자 했던 의도는 무관하게
과일 몇개 제 돈으로 사기 싫어서 몇 개 얻어가려는 사람들같은 취급을 받으며
제례의 동참과 연결을 같고 싶었던 의도는 처참히 무시되었습니다.
 
결국 전야제에 같이 노래하고 연주해주고자 광주에서 합류라도 해주기로 했던 분은
저희의 공연 전야제에 아무도 같이하지 않으셨고
제례 형식으로 준비한 추념식 또한 같이 제대 앞에 앉아줄 사람없이
제례음식준비에도 차질이 생겨서 밤 늦게 문 닫은 시장을 찾아서
어렵게 나물 떡 과일 전야 원래 광주역에서 금남로 오는 길에
광주역에서 합류한 사람들과 함꼐 걸으며 준비하려 했던 제례 음식 장보기도
급박하게 되준비 되었습니다.
같이 공연을 준비하기로 하시진 않았지만
전야제부분 소품제안에 준비해서 광주로 오시기로한 박연숙님이
조선동아일보 한웅큼을 갖고 오셔서 민들레 소극장 앞에서 만나 전해주셔서
그 소품으로 80년중앙지편집국얘기를  
오늘의 신문으로 부호화 시켜 읽으며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극단토박이가 소품을 사용할 수 있게 작업실 열쇠를 전해주고 가셔서
 
책상과 걸상 그리고 제대로 사용할 사각박스까지
소도구를 사용해서 분수대와 도청이 보이는 쪽으로 예술의 거리 한편에
신문사 편집국과 제대를 세팅하고 준비한 전야제와 추념식 두 편의 공연을
17일의 긑과 18일의 시작에 공연했습니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오전 10:25:47
 
 
34주년 5월작품중 17일밤과 18일 새벽에 공연할 51817의 소품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 몇몇 신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근데 이런 신문 구하려면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궁금.
책이랑 복권파는 가판대같은 곳에서 파는지?
가격은 한부에 얼마나 하는지?
80년11월25일까지 1-2년은
매일 일곱 종의 신문을 1판부터 탐독할 떄도 있었지만
그 후론 낮1시나 저녁녘에 거리에서 세가지 신문에 100원하는 걸
가끔 사서 보곤 한 것이 신문과의 마지막 인연인 듯....
박연숙 선생님 저 내일 광주가요..
제가 여기서 구해볼께요..
금남로에서 볼 수 있겠죠..조선일보, 동아일보면 날짜는 상관 없나요?5월 16일 오후 2:13
박연숙 양은 얼마나 필요하세요?5월 16일 오후 2:16
예기 당일 것이나 요즘 것이면 좋겠지만 그냥 금년도 것이어도 괜찮습니다..양은 한 20부정도면 됩니다.
내일 저희는 5시에 광주역에서 고니소리랑 블러드님 만나서 금남로까지 행진하고
사이에 대인시장 들려서 18일제사용품 장보고 7시경 금남로에 합류합니다.5월 16일 오후 2:22
박연숙 네 알겠습니다.5월 16일 오후 2:24
 
이름없는공연 34주년 12편의 5월공연및 3일간의 영화제
그리고 사진전 (5.15-31)
17일간의 일정 중 셋째날 5월17일 토요일-18일일요일새벽


공연일정
이름없는공연43번째 오월연작
[후이넘의 기억-상무대-51834] ...
망월묘역 부분 공연
...

이름없는공연 45번째 오월연작

[순애언니-51834]
망월동 금남로


이름없는공연 46번째 오월연작
[518 17주년 전야제-51834]
금남로

18일 0시이후 공연
이름없는공연 47번째 오월연작
[518 17주년 추념식-51834]
도청 앞

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순례공연은
관객에게 보여드리거나 얘기하려는 공연이 아닌
같이 준비하고 함께 참여하는 사람만의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그저 공연시간과 장소를 물어보고 구경삼아 보러 오는 관객이 생기지 않게
정확한 공연시간과 장소를   참여하지 않은 분들에게 공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의 형태를 띄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서
가림 없이 공연되므로
무언가 그리워 그날 그 곳에 오시는 분이 있다면 ,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몸짓과 행동과 소리가
일상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들어오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곳에서 공연을 만나 실수도 있습니다.
 
블러드 고니님 광주역 간판 아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20분까지 기다리고 출발 금남로로 이동합니다
 
고니소리님 광주역에서 뵙고 브러드님은 뵙지 못했습니다
다음미팅장소는 8시반. 도청정문 앞입니다 
 
다음미팅장소로 약속했던 도청 앞 8시반은
금남로에서 공연하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신
고니소리님 공연일정에 따라 취소되고   예정대로 저희는
전야제를 금남로 행사가 끝난 후에
홀로 진행합니다
 
  박연숙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5월 17일 오후 6:56
민들레 소극장 앞에서 대기중입니다
소품 조선,동아일보
이 곳에서 전달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망월묘역에서 만난 분 들의 제례음식중 조금을
금남로에서 인수받아서 추념식을 가질까 했던
박양희님과의 약속이 이뤄지지 않아서
원래 예정대로
저희가 제례음식을 준비해서 추념식을 가집니다.
마침 기꺼이 동의하셔서
저희가 준비하려는 것 보다는 광주 분들이 마련한 좋은 제례음식으로
젯상 준비해보려 했는데
광주 분들의 의미있을 제대를 차릴 기회
갖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밥과 국만 준비한 채 제례음식을 기다렸던 것 포기하고
다시 대인시장으로 예플러 장 보러 갔습니다
원래대로 홀로 제대준비하고
전야제와 추념식 공연합니다
박양희 과일 상자 무대에 두었어요.5월 17일 오후 8:57 ·
박양희 망월묘역 마무리는 맡겨둔 채로 금남로에 나와야 해서 이제야 두루 상황을 들었네요.
하루 종일 진솔한 젯상...한번 올린 음식 다시 쓸수없다며 그리 되었답니다.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따로 준비해드렸을텐데 하시더니다. 함께 한 고마운 걸음에 나마스떼_()_
 
예기 박양희님,망월묘역에서 준비하시고 음식물 준비해오신 것 보면서 즉흥적으로 들었던 생각으로 제안드린 것이었고
기꺼이 승락하셔서 그렇게 제례상 차림 부분을 더 좋은 안이라 생각하고 바꿔본 것입니다.
그 제안때 한번 올린 음식 다시 쓸 수 없다던 지 그 시간으로서는 이미 불가능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시고 알려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문의드린 것에 대해서 가능하다고 말씀해서 그렇게 준비를 바꿨습니다. .
하여튼 더 의미있고 광주 분들의 마음도 참여하는 제례와 추념식 이루려던 기대가 너무 컸나 봅니다.
17년간 늘 광주에 오면 아무도 넋들의 마음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흥적으로라도 저희와 함꼐하려 해주셨던 마음만이라도 잠시 감사했습니다.
 
5월17일 금남로엔 세월호 어린 학생들의 영정이 고히 모여 세워지고
오월은 이렇게 사월의 아픔으로 그 제대를 내어줍니다.
오월영령들을 향한 추념식에 사용할 향을 사러 들린 원각사에서
문을 닫아 사지 못하고 돌아서려는데
사무실 한 분이 향 한 통을 선뜻 내어주시네요.
이제 대인시장에서 소박한 제례 음식과 과일 사오면
오월 전야제와 추념식준비는 다 마칩니다
 
김강곤 ㅋ인사도 못드리고 떠납니다 광주에서의 작업에 함께 못해 아쉽네요 담에또 기회함 잡죠^^어제 오전 12:16
예기 고니소리님,네 저희도 아쉬움.같이하진못했지만 언젠가 같이 연습미팅도 가지며
작업을 준비해볼 날도 있겠지요.저희는 늘 기다립니다.
 
  민들레극장 토박이분들이 협조해주셔서
51817 전야제와 추념식의 소도구로
책걸상을 빌려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9시경 민들레 소극장5층 에서 갖고 나와
금남로 공연에 사용하고
새벽에 공연마친 후 반납합니다
 
518 17주년 추념식 제례준비 마치고 이제 곧 공연합니다
한은주 선배님들께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예기 비록 같이 준비하고 작업하진 못했지만,그 자리에 오셔서 그렇게 머물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들 그저 지나쳐 가는데..
 
 
518민중항쟁34주년기념 민주대성회 끝난후 가져본 17주년전야제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46번째 작업.
34주년5월을 기다려 다시 금남로에 섭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안에서도 넋들의 모습을 찾습니다.
17년전 첫 작업이었던 오늘같은 밤이면 이란 부제의 518 17주년 전야제를 17년지나 다시 준비하고
518민중항쟁 전야제가 아닌 민주대성회가 열리는 이 날.
그 인파들 속에서 예전의 5월과는 사뭇 다른,어떻게 연결은 시키지만
오월의 넋들에 대한그리움과 의무는 물러나있는 빛고을의 오월의 모습곁에서
예술의 거리 한편에 17주년 전야제를 이끌 신문사 편집국을 만듭니다.
마지막까지 같이 해줄 수도 있었던 노래하고 연주해줄 사람들이 없이
어두운 골목길엔 그때 서울 여해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며 같이 울었던
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목소리만으로 준비되어있고
편집국 책상에 놓여있던 80년 5월부터 11월의 신문은
그 시기 언론 통폐합을 넘어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계엄사 언론 검열단의 검열 없이도 스스로 즐겨 정권의 편에 서서 발행되는
이 나라 어리석은 언론으로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대체되어 놓였습니다.
편집국을 오가며 그 검열단의 한자한자 빨간색연필로 도려내던 기사검열속에서도
무언가 은유로라도 바로 전달하고 싶어서 노력하던 사람도 있었던
그 날의 기자와 그가 살았던 편집국.
또다른 기자들의 모습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구성.
금남로 한편 예술의 거리에 놓인 책상에 놓인 신문을 교정보는 교정기자의 모습과 교차되어
34년지나 오월 금남로에 다시 읽혀지는 그 날의 기사면면들.
아직도 하위권인 이 나라 언론자유지수와 자유의 의미를 편협되게 해석하고 운영되는
21세기 이 나라 언론의 현실 그리고 고쳐내지 못한 허무함.이뤄내지 못한 제4의 의로운 힘.
투명한 여백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그들의 목소리 따라서
1980년 그 해의 5월이 6월이 그리고 11월까지 세월이 흘러가며
같이 한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노래하나 불러주는 사람 없는 쓸쓸한 전야제가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 그대로 가감없이 시간을 채웠습니다.
 
추념식에 쓰일 제대를 준비하면서
조국이 저를 부릅니다 하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집을 나갔던 아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어머님의 목소리와 시간이 멈춘 그대로 그 시간이 멈추던 날 하몎있던 벗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어렵게 기억해내면서 보고 싶다고 말하던 분의 목소리가 이 전야제를 마감합니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과 영혼과 심신으로 구축되고 분리되는 우리의 본질을 얘기해주던
그분의 목소리로.

2014년 5월 19일 월요일오후 12:08:42.

 

17년전 그날의 전야제를 마치고 34년5월 빛고을에 소박한 젯상을 차립니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47번째 작업.518 17주년추념식
 
자정이 오기전에 조금 일찍 전야제에 이어서 잠시 정진한후
준비해온 젯상을 차립니다.
한번도 누구의 젯상을 차려보지 않은 우리는 일생에 단 두 번
17년전 옹오월에 이어 17년뒤 다시 똑 같은 날.
그토록 그리웟던 이곳 빛고을 금남로한편 예술의거리 골목에서
자정을 기다려서 차례처럼 젯상을 차립니다.
평소 우리가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과일도 사고 포와 떡과 전야와 나물도 조금씩 마련했습니다.
한 공기 밥을 해서 담아왔고 국한사발도 따로 끓여왔습니다.
형식은 중요치않으나  정성으로 준비하고 그앞에 낯설은 졔례절차에 따라서
추념의 제를 드립니다..
한두사람이 자신의 일을맡아서 좌우에 서고 찾아온 객들의 분향에 술잔을 따라주고
혼들의 식사를 거들어드려야하는데 이 모든 것을 마치 보이지 않ㄴ느사람들 한무리안에
한사람만이 보이는 듯 한사람의 행동으로 제례가 이어집니다.
추념의 시도 읽고싶어 준비했는데 읽을 사람이 없어서 그저 책상에 놓여진채 누군가의 손에 들리지 않고
자정의 골목길을걸어가는사람들과 골목길에 주차했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짓들만이 오월영령들을 향한 이방인의 작은 제대 주변에
헤트라이트를 교차한곤 떠나갈 뿐 17년전처럼 아니 10년 그날의 거리에서 마주치던사람들처럼
다가와 머물러 분향하지 않습니다.
넋들과의 잛은만남 그리고 인사와 포근한 감싸안음으로 정말 제대로 하고싶엇던
첫 제례는  너무도 조그많고 조용히 끝났습니다.
두분중 누군가에게 허밍처럼 혹은 아주 느린 연주로
남행열차를 아련히 연주하거나 허밍하며 끝내고 싶엇는데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어서 다시 그날 여해에서 그리고 이후 어느해 오월 금남로에서 불럿던
오늘같은밤이면과 잊혀질떄까지는 사랑할꼐 두곡이 제례상을치우는 사람들의 모습곁에
사람없이 노래지어졌습니다.
구미거나 만든 것잉아니라 그저 그렇게 희망하고 그 희망에 답하는 사실로 인해서
살아있는사람들의 마음과 정성만큼 기억만큼 망각만큼 그대로 이뤄지는 이름없는공연의 방식대로
희망이 곧 욕심이 되는 일이 없게 다시 마음을토닥이며
17년을기다려 준비한  추념식은 그도한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을 생성하면서
훗날 이곳을 떠나도 기억될 이승에서의 귀한 시간의 기억을 새기고 끝났습니다.
이름없는공연 오월연작 두 번째 작품이엇으며
마흔일곱 번째 작업이었습니다.
비록 미리 만나서 이날을 같이준비하고 자신의 몫을 하나하나 정해서 하몎한 사람은 없지만
참여자도 없이 그저 구경이나하려는 관객이 있을까 두려워서
시간도 장소도 공지되지 않은 채 이뤄진이 공연에 찾아와 곁에서서
수줍게 멈춰주엇던 두 분 마지막 정리나마 같이 도우며
그 마음 동행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오후 12:34:35

.광주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소박한 젯상을 차렸네요.
넉두리 처럼 몇자 적어 남기며...
Heayoung Yepler 
 
 망월동 구묘역에서 미리 말해주었다면 과일 마저도
욕심내지 않았을텐데.. 전 오히려 광주분들이 준비한
젯상의 음식들이 더 의미가 있고 모처럼 광주분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 더 앞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묘역에서 풍부하게 음식들을 싸오셔서 담소하시며
음식을 드시다가 저희를 보시곤 반갑게 손잡으시며
음식을 권하시기에 전 그자리에서 제가 먹는것 보단
혹시 비닐봉지에라도 나물 몇가지와 켜켜이 쌓여진
과일들을 보며 비싼과일들 한개씩 세가지만이라도
주신다면 좋을것 같아서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걱정말라시며 지금 음식 담을그릇을 가져오라고 지인분께 전화하겠으니
이따 저녁에 금남로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져..
서울에서 내려올 일행을 만나기위해 5.18버스를 타고 광주역에 와서
고니소리님을 만나고 블러드마리님은 오지 않고 20분정도 더 기다리다 걸어서 금남로까지 걸으며
그때까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오월이였네요.
광주에서 이런일도있구나하며..했지만 역시 올해도 다르지 않았네요
민들레소극장앞에서 다시 만났을 때 행사 리허설 때문에 미리 오셔서 과일을 자신이 못가지고 나왔다며
다른분께 부탁하고 나왔으니 이따 무대뒤에서
만나자고 하며 참 , 나물이며 다른 음식들은 그릇이
없어서 과일만 받아 주신다고.. 영령들도 거리에서 제사를 드릴 때는
과일만 놓고 드려도 다 용서해주신다고도 하시며..
전 그릇에 담아 달라고 한게 아니였구요 비닐에라도 주시면 한거였구요.바쁘신분이셨으니
그깟 저희에게 정성스런 마음까지를 바란 저희의 잘못임을 인정합니다.
같이 장보기를 바랐던 일행도 광주엘 오지도 않았고
그 저녁에 가난한 장보기를 마치며 종종거리며 뛰어다녔더니
잠자리에서 발바닥이 아파 한참을 고생했네요.
과일 몇개를 받자고 한것이 아니였구요 마음과 정성을 받고자 했으며
한번쓴 음식은 쓰면 안된다고 해서 못주시고
과일만 주신다니 그 과일도 쓴과일인데 과일은 예외이군요.
저흰 그런 마음이면 과일 몇개라도 그지같이 받을 수 없어서 사양했습니다.
전 대인시장에서 삼천원에 참외를 사서 과일을 그리고
가난한 젯상을 준비하고 무슨 동서남북 자리 따지지않으며
일행이 전해준 김밥도 올리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숭늉을 밥과 채소국을 드렸어요
광주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소박한 젯상을 차렸네요.
넉두리 처럼 몇자 적어 남기며...
Heayoung Yepler 

후이넘의기억-상무대 그리고 세가지사랑 그 연작의 복기작업을 마치고

사랑에 대한담론에서 시작해서 사랑담론으로 이어지면서 그 사이에 그렸던  세가지사랑은
518 자유공원에 옮겨 세워진 상무대를 만나면서 후이넘의 기억-상무대로 또 하나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상무대 법정과 영창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던 그 해에
비엔날레 시민행사로 열린 야외영화상영을 마치고
518행사준비위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공연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알면서
무시하고 모든 불을 끄고 퇴근해 버린 후에 약속된 시간을 지켜 진행된 공연.
보안장치를 켜서 들어갈 수 없는 상무대 담장 너머 에서 가느다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넋들과의  만남 인양 첫공연이 이뤄 봄윱求?
후이넘의 기억-상무대 두 명의 연기자가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려온 5월광주에서의 공연은
그렇게 허망하게 적막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같은 몸짓과 등불 그리고 촛불아래 작은 몸짓들로
이승의 사람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곳이 비록 광주라 할지라도
하잘것없이 그렇게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은 이후 오히려 그 무대가 된 광주 518자유공원 상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국제 연극제 혹은 페스티벌 등에 참가작으로 결정되면서 광주사람들만 모르게 공연되었고
안면도 바람아래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 인물들의 얘기를 다른 작품으로 인계했습니다.
이후 상무대 곁 금호 아파트의 주부는 평화와 인권을 그리는 작품의 마디마디에
상무대 법정 피의자 대기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인물로 수십 년의 이야기를 시기별로
이어갔고 망월동과 518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상가집 남자의 친구는 지리산 제주 라사 등으로 이어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이름 없는 공연 안에서 그리고 이름 없는 공연 밖에서 간혹 마주치며
살아갔습니다.
17년을 복기하는  34주년 5월에 상무대와 망월묘역을 오가며 공연의 배경을 만들었던 공연을
정말 다시 그곳 518자유공원 상무대  그리고 법정 피의자 대기실에서 첫공연을 만들고
이어 이튿날 망월동 시민묘역에서 공연의 빈부분을 채워 마쳤습니다.
모든 것을 채워서 여한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 간결하게 여백지음으로서 여한을 더는 방식으로
34주년 복기 작업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제례를 꾸미고 싶었던 욕심뿐이었던 제례와 다시 모인 사람들과의 넋과의 만남 꿈꾸던
518 17주년 추념식이나 그에 앞서 이제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17일 금남로의 밤거리에서
오손도손 노래 부르고 싶었던 가수들과의 전야제도
정말 허무하게 아무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담아내야했던 그 공연들이
마치는 순간 오히려 여한을 더는
더 이상은 바랄 것없는 공연이 되어 앓던 가슴응어리를 산화 시켜줍니다.
 
3장으로 구성된 세가지사랑도  그랬습니다.
첫 번째 사랑을 표현해주던 사람.
두 번째 벗과 동지와의 사랑을 얘기해주던 사람도
그리고 세 번째,모르는 이까지를 포함한 사랑을 얘기해주던 사람도
다시 만나서 그들의 삶을 오버랩 시켜보고 싶었던 욕심은
15일 첫날 제1장과 2장을 군군 광주 병원과 505보안대에서 홀로 공연하면서
아름다운 먼지가 됐고
19일 전남대 교정 한 편에서 2004년 초연의 그 장소를 찾아서 다시 앉아 머물면서
모르는 사람들의 존재하는 평화 그리고 나름의 자구적 행동으로 그려가는
이기적이지만 아름다운 ,능력만큼의 사랑을 용납하면서
10년만의 복기작업 그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했습니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오후 10:52:54
 
 
순애언니 이름없는공연오월연작15 그리고 45
은인을 찾아 다시 오월 빛고을 배회합니다..
 
오월연작 열다섯 번째 작품
2006년 초연한 순애언니는  후이넘연작의 첫 작업이엇던 후이넘이야기에 등장하는
은인을 찾는 사람의 포맷을 이어온 작업으로
김선재가 정임역을맡아서 초연했고 그가 이 작업을 계속하지 않는동안
정임언니의 또다른 동생이 그 언니의 유언을 따라 다시 오월광주를 순례하며
순애언니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구성이 이어졌습니다...
후이넘이야기의 김선재님이 오월광주 금남로에서 공연한 잊지마세요에서
다시 그 은인을 찾는 모습을 연기해준후
2006년 독립공연으로 예플러가 그 또다른 동생역으로 이 이야기를이어받아서
오월빛고을을 찾습니다.
 
 
(여자,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애언니를 찾아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방송카메라앞에서의 여자의 인터뷰)
여자-
김순애 씨를 찾고있어요.
헤어진건 아마 76년도 였던 것 같고 ..그때 순애언니가 열여덟
전 열네살이였어요.
노동하시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희 칠남매만 남아
정임언니랑 오도가도 못하고 방을 구하러 다닐 때 저희를
보살펴준 언니예요.
정임언니랑 저희 동생들을 보고 아무도 방을 내주지않고
문전박대할 때 순애언니가 우연히 저흴보고 자기집에라도 가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상계동으로 가게되엇어요.
불암산밑에 재현국민학교쪽 작은문방구가 있었고 그뒷쪽에
판잣집이었은데 단칸방에서 구로동 공장엘 출퇴근하는
언니였어요.
마침 주인이 없이 세들어사는 방이어서 주인눈치를 볼필요는
없었지만 그 조그마한 방에 혼자살기도 불편한데 싫은
표정하나도 안보이고 우리남매 일곱을 모두 한방에 데려가 그
겨울을 났어요.
막내가 네 살이었어요.
맏인 정임언니는 순애언니 소개로 공장엘나갔지만 그래고
여덟식구의 생활이란게 늘 부족한데 순애언니는 자기먹을 것은
챙기지도 않고 우리동생들만 주고 ..
동생들이 춥다고 이불싸움하다 저나 정임언니한테 야단이라도
맞아 울면 순애언니가 나서서 먼저 덮어주고 아랫목에 뉘우며
언니랑 저를 야단쳤어요.
네..넷째동생이 집앞 가게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잡혀서 집에까지 온적이 있었어요. 정임언니는 없었고 저는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숨어버렷는데, 마침 아파서 공장엘
못가고 쉬고있던 순애언니가 달려나가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비는 거예요.
그리구 들어와서는 내가 울고있는걸보고 같이 막 울쟎아요.
넷째 동생에겐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구..
그저 너희같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겟다고만
말하면서...

정임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어요. 25년동안 상계동에서의 그
겨울을 잊지못하고 늘 순애언니얘길 했어요.
꼭 찾아서 은혜를 갚아야한다구.. 아님 다른사람에게라도 꼭
언니의 은헤는 보답해야된다구..
20년전엔가 우연히 광주에서 부딪겼는데 그저 눈인사만 하고서
가시더래요. 정임언니이름은 기억하실거예요. 키가 적었고 좀
통통한 편이였어요.
(여자-방송촬영을 마친다)
 
이 공연은 작가와 공연자에게는 비밀스런 사실이 주어져있지만 극에서는
그저 상계동의 추억만 얘기할뿐 오월의 이야기는 단 한마디
20년전엔가 우연히 광주에서 부딪겻는데 그저 눈인사만 하고 가시더란 말만 노출됩니다
그래서 오월광주와의 관련성을 찾아가려는 많은 의문과 추리를 지나야 순애언니의
상징성을 찾을수잇습니다, .
정임언니가 후이넘이야기에서 방송을 통해서 찾고 2006년 다시 그의 동생이 광주에서
방송국을찾아서 찾던 그 시기에서 20년전이면 순애언니를마지막 거리에서 스치듯 만난 것은
1986년경입니다.
1986년의 광주에서 그렇게 그리던 언니를만났으나 순애언니는 그저 눈인사만 하고
스칩니다.
언니는 정임을알아보지 못햇거나 그저 안면이 있는사람정도로 인식한 듯싶고
구로공단을 다니던 순애언니는 80년 5월에 고향 광주에 있었습니다
 
 
이름없는공연이 순애언니를 찾아 배회하는 작업은 광주 오월길의 순례와 겹칩니다
어쩌면 이방인에겐 단절시켰던이도시의 오월과의 관게를 일말이라도 연결시켜서 인연화시키려는
애처러운 그리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34년이 지나 이제 2006년 그래도 희망을 가졌던 20년만의 만남이
30년을 다가갑니다.
살아계실수 있는곳 .넛이 되어 묻혀있을수 있는곳 그리고 그가 다녀갓을 수 있는곳들을 모두 찾아
조그마한 이야기의 조각이라도 만나려 떠난 여행이 어느새 오월순레가 되엇고
아무곳에도 없어도 반드시 그의 얘기인 듯 순애언니의 모습은 오월길 어디엔가
또다른 순애언니들의 모습곁에서 살아숨쉽니다.
 
34주기 오월,어쩌면 그날 그 모습처럼 시간을 멈춘채 아름다운 그 마음 그대로
환갑넘은 남도 아낙의 모습으로 순애언니와의 재회를 그리며
다시 빛고을의 오월을 걷습니다.그래도 오월이면 반드시 이 도시 어느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2000년 [잊지마세요]에서의 은인을찾는이작업 속 순애언니 
 
 
제  목 : 작업일지-일곱
작성자 : 김선재
시  간 : 2000-05-10 오전 12:44:00

내  용 : 1. 방에서 촬영장비를 마지막 점검하고 일정표등을 확인한다.
2. 떠나는 날 아침 남편과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3. 기차역. 광주행 표를 사들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로의 동행을 마지막으로 권유하고 불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4. 광주 도착. 버스 정류장에서 첫 번째 목표지로 가기위한 버스편을 찾는다. 옆의 사람에게 물어 확인한다.
5. 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촬영한다.
또 다른 행사장으로 계속 이동하며 촬영을 한다.
6. 거리에서 아주 특이한 차림으로 제례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보고 그에게 다가간다.
촬영을 허락받고 그와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면 기념으로
그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 짧은 인삿말을 적은 뒤 선사한다.
7. 광주의 다른 행사장을 찍는다. 지친 모습으로 잠시 쉰다. 전화를 걸어 다른 행사장의 일정을 확인하고 이동로를 재조정 하기도 한다.
8.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광주에서는 생각보다 얻어 갈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푸념섞인 내용이다.
온김에 순애언니를 찾아보아야 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9. 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애언니를 찾아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10. 다시 광주촬영은 계속된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르면 문득 언니로 부터 들은 카페가 생각이 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카페를 묻기 시작한다.
어느 사람이 가르쳐준 곳으로 찾아가면 거기에 그 카페가 있다. 들어가 카페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 곳에서도 주인과 헤어지며 인삿말을 적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감사의 마음으로 주며 헤어진다.
11. 누군가 준비해 놓은 제대 앞으로 가 향을 피우고 광주를 떠날 채비를 한다.
12. 광주역.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나야... 잘 지냈어? 지금 올라가려구 표 끊었어. 음 좀 피곤하네.
촬영? 그냥 뭐... 내가 찍으려고 계획했던 부분에서는 실망이 큰데 다른 부분에서 수확이 컸어.
음... 올라가서 얘기할께... 후후후... 그렇게 궁금해?
지금 올라가면 이 번 작업 방향 자체를 바꿀려구해. 그냥 뭐랄까...
작아보이지만 정말 아름답게 그리구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보구 싶어졌어.
그런 사람들이야말루 내 필름에 담아야 할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지 뭐.
만나서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 얘길 해줄께. 분명히 내 주변 어딘가에두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여기와서 보이기 시작한거 보면 광주의 미덕이 그런데 있는거 아닌가 싶네.
후유... 피곤하니까 횡설수설 하는것 같아. 그럼 서울에서 만나. 안녕."
 
34주년 복기공연의 하나로 다시 구성하고 공연하는 순애언니는
5월15일부터 31일까지 17일간의 공연기간중 파트파트로 오월 빛고을의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이어갑니다.
17일 광주역,금남로에서 시작 19일 중흥동 그리고 20일은 광주교도소에서 공연합니다.
2014년 5월 20일 화요일오전 8:34:14
 
 
34주년 5월 이제 광주의 미덕을 알려주셧던 [잊지마세요]를 복기공연합니다.
우리가 2000년 5월 금남로공연을 위해 완성했던 초연의 구성대본
제  목 : [잊지마세요-광주]녹음용대본
시  간 : 2000-05-11 오전 11:17:00
내  용 : 예기플라타너스2000년5월광주순례공연
[잊지마세요]
신영철 구성 연출
2000년 5,18 광주-금남로와 망월동
 
무대-거리.탁자와 의자두개
(빈공간)
(한사람 나와서 촛불
music-in 현경과 영애-아름다운사람
(여자의 집.떠나는 날 아침 아이와 남편과 인사하며 촬영여행을 준비한다)

사람들.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이렇게 여러 개의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간다.
아름다운 진화를 위해 시차를 두고 고향을 떠나오던 그날,
그날 그곳에서의 우리들의 모습과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채말야..
사실 우린 얼마나 자기영혼의 실체를 기억하고 있을까?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가져보는 이 시간 동안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 다른모습으로 태어나
너와 나 혹은 우리와 남으로 다시 만나는 이 순간 안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존재의 의미도 잊어버린 우리들,
회귀의 그날전에 미리 기억하고 잊지않으므로서
더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는 없을까?

(여자. 기차역. 광주행 표를 사들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로의 동행을 마지막으로 권유하고 불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인식하거나 기억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행동과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앞에 [잊지마세요]란 말을 건넨다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일지도 몰라.
작업을 준비하면서 세상을 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사람들의 삶을 보고있노라면
처참하리만치 외로운 이의 독백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 작업은 처음부터 아무도 공감하지못하는 실패작이 될거란걸 알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준비하고 실천할 수 밖에 없는 말 한마디는
잊지마세요 하는 그 말 한 마디야 .
하긴 그들이 비록 들을수없는 목소리로 들리지않게 얘기할 뿐이지만.

(순례자-아침에 방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아주 오래전 아니 어제였을까?
어느 조그마한 마을
우린 그곳을 돈암동 혹은 [51817]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서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을까? 안타까워서 기억하세요 하고 말해보려하지만
그말을 들어줄 여유도 없이 슬픈 모습으로 자아에 빠져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비참한 욕구에 침몰된 기억잃은 영혼들.
그래서 다시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잊지마세요 하고 속삭여라도 보고싶어.

(여자. 광주 도착. 버스 정류장에서 첫 번째 목표지로 가기위한 버스편을 찾는다.
옆의 사람에게 물어 확인한다.)

사람들은 늘 자신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것 안에서
사랑이나 선을 찾곤하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사랑하고픈 것만 사랑하며
행동하고픈 것만 행동해.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의 전제안에서 사랑하고 봉사하지.
하지만 선이나 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지는 못한다해도
그 조그마한 이기적사랑의 불씨가 영혼을 기억하는 시작은 될거야.

(여자,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촬영한다.
또 다른 행사장으로 계속 이동하며 촬영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경복궁에 도착 입장권을 사서 궁내로
들어가 명성황후 조난지에서 분향한다.)

(여자.광주의 다른 행사장을 찍는다. 지친 모습으로 잠시 쉰다.
전화를 걸어 다른 행사장의 일정을 확인하고 이동로를 재조정 하기도 한다.)
(순례자-길을 걷다가 어느 조그만한 간이역에 도착
팻말을 발견 헌화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꿈처럼 현실을,
현실을 꿈처럼 인식하는 존재들이야.
하지만 자신을 구성하고있는 본질적 원소가 영혼임을 알지못하고 심신의
조각들을 본질로 착각하며 살고있는거야.
그래서 모든 영혼들의 귀한 본질을 기억하지못하고
3차원적 공간안에서 보고 듣는것에 급급해 이기적인 행복만을 추구하지.

(여자,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광주에서는 생각보다 얻어 갈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푸념섞인 내용이다.
온김에 순애언니를 찾아보아야 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처럼 이 작업은
우리가 뿌연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불순함과 어리석음을
문을열어 바로 바라보는 훈련이며
시각의 전환이 되었으면해.
눈으로 보던 것을 눈을 감고 보고
귀로 듣던 것을 귀를 막고 들으며
정신이라는 뇌세포로 인지하던 것을
영혼으로 인지하는 작업의 징점다리 작업이었으면 하고말야..
(여자,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애언니를 찾아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순례자-지리산 피아골에 도착한다. 담배 한개피..)
(방송카메라앞에서의 여자의 인터뷰)
여자-
김순애 씨를 찾고있어요.
헤어진건 아마 76년도 였던 것 같고 ..그때 순애언니가 열여덟
전 열네살이였어요.
노동하시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희 칠남매만 남아
정임언니랑 오도가도 못하고 방을 구하러 다닐 때 저희를
보살펴준 언니예요.
정임언니랑 저희 동생들을 보고 아무도 방을 내주지않고
문전박대할 때 순애언니가 우연히 저흴보고 자기집에라도 가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상계동으로 가게되엇어요.
불암산밑에 재현국민학교쪽 작은문방구가 있었고 그뒷쪽에
판잣집이었은데 단칸방에서 구로동 공장엘 출퇴근하는
언니였어요.
마침 주인이 없이 세들어사는 방이어서 주인눈치를 볼필요는
없었지만 그 조그마한 방에 혼자살기도 불편한데 싫은
표정하나도 안보이고 우리남매 일곱을 모두 한방에 데려가 그
겨울을 났어요.
막내가 네 살이었어요.
맏인 정임언니는 순애언니 소개로 공장엘나갔지만 그래고
여덟식구의 생활이란게 늘 부족한데 순애언니는 자기먹을 것은
챙기지도 않고 우리동생들만 주고 ..
동생들이 춥다고 이불싸움하다 저나 정임언니한테 야단이라도
맞아 울면 순애언니가 나서서 먼저 덮어주고 아랫목에 뉘우며
언니랑 저를 야단쳤어요.
네..넷째동생이 집앞 가게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잡혀서 집에까지 온적이 있었어요. 정임언니는 없었고 저는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숨어버렷는데, 마침 아파서 공장엘
못가고 쉬고있던 순애언니가 달려나가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비는 거예요.
그리구 들어와서는 내가 울고있는걸보고 같이 막 울쟎아요.
넷째 동생에겐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구..
그저 너희같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겟다고만
말하면서...

정임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어요. 25년동안 상계동에서의 그
겨울을 잊지못하고 늘 순애언니얘길 했어요.
꼭 찾아서 은혜를 갚아야한다구.. 아님 다른사람에게라도 꼭
언니의 은헤는 보답해야된다구..
20년전엔가 우연히 광주에서 부딪겼는데 그저 눈인사만 하고서
가시더래요. 정임언니이름은 기억하실거예요. 키가 적었고 좀
통통한 편이였어요.
(여자-방송촬영을 마친다)

(언덕위의 바보 라는 이름의 까페.
까페주인-오늘 하루 사용할 물건과 물품들을 준비하고 챙긴 쇼핑백을 두손에 들고 까페에 들어선다.
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우주에 공존하며 별을 가꾸고 있던 모든 영혼들이
이 지구에서 서로 자신을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영혼의 시선이 교차되길 노력해.
그러면 우리가 보고듣고 생각하던 3차원적 갈등과 선입견
고통과 욕심 그리고 편애와 미움이 모두
한갖 부질없는 찰나임을 발견케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것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외모나 선입견으로 미워하거나 아니면 동정하거나
사랑하던 단순한 미물로서의 가슴들이 열릴거구.
우리가 왜 사랑하여야하며
왜 이 짧은순간의 여행에서 자신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하는가하는 의미를 알게될 거야.

(여자,다시 광주촬영은 계속된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르면 문득 언니로 부터 들은 카페가 생각이 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카페를 묻기 시작한다.)
(순례자-공주 우금치에 다다른다. 편지를 쓰고 소지한다)
(까페주인-준비해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한다.
테이블위에 작은 인형 몇개와 엽서 약간..
다른 한켠엔 안개꽃 한다발을 병에다 꽂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기에 익숙해서 모두를 사랑하지는 못해.
내가 만든 우리 안에 또래나 동아리를 만들고
가족의 개념마져도 벽의 개념으로 사용해.
우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들때마다
하나 하나의 단절의 벽을 쌓고있는 것같아.
나의 가족이란 말은 곧 남의 가족이란 말을 만들고
우리라는 말 역시 우리 아닌 남들이란 말을 만들어 .

(여자,금남로까페에서 얘기들은 망월동입구 까페 언덕위의 바보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까페의 주인과 순애언니에 대한 얘길 나눈다.)
그러다 테이블곁에 놓여있던 한사람의 편지를 꺼내주고 여자 그것을 읽는다.)

광주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고맙네요.
모두들 말로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든, 혹은 잘못됐다는 비판에서든..
어쨌든 광주는 외롭습니다.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
그러나 그 책임의 일부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방관자들에게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골수로만 가는 광주를 비판만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자세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문제는 애정이죠. 애정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를 포위하고 있는 이 철벽같은 장벽을 허물어
뜨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벽은 마치 늪에 빠진 물체가 허우적 거릴수록 더욱 빠져들듯
두터워짐을...
마침내 구경꾼은 늪에 빠진 생명체를 구하기를 포기하면서...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도 그랬죠? 아마?
정말이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란 ....
무슨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깊습니다.
때로는 광주에서도 [에이 언제 우리가 남한테 기대고 살았냐...
우리끼리 올바르면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를 형성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5월항쟁기간에 느꼈던 고립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에서
여전히 헤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16년전 오늘 광주는 작은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어찌될망정 우린 계엄군의 퇴각을 환호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들어가서 붙잡혀온 공수부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냥 그 자리에서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우린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제물로 삼기를 원했지만 만류했고,
투쟁의 대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장한
채였죠.
해방기간 동안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린 고립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서 고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포의 실체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책속에서 만나는 공포가 아닌 우리 앞에 가로놓인 공포감은
대단히 실질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파멸될 수도 있고, 모든게 한꺼번에 끝나버릴수도
있는...
16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보면 참, 역사란 무심한 거구나 싶습니다.
진실은 왜곡되고...심지어는 희화화되고....
광주의 진실은 빛이 바래고 이제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
그런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원합니다.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원하고, 뚜렷한 논리적인
상징을 원하고...그런 식으로 투쟁의 진실은 형해와되고....
이제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십수년간을 그 문제에 매달려왔습니다. 고립은
공포다....
어떻게든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점에서 저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내부건 외부건 결과적으로 고립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제게 정의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고립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그 자체로서 외롭고 고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라도 변절? 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군요.
예기 님의 끊임없는 진지함에 이끌려 새삼 이런 상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music in - 김민기 아름다운사람

(둘의 얘기가 계속되고 여자는 까페주인을 카메라에 담는다.인터뷰)

나는 소외가 투쟁적 또래의식을 만들어온
사회적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어려움을 느끼곤해 .
하나라는 개념이 확대되어 정말 하나라는 안에 모든것을 넣지못하면
그건 둘 혹은 그이상의 개념과 상통하고 결국은 적개나 경쟁 혹은 소외를 만들거든.
가족공동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봤어.
그것은 우리 가족 너희 가족이란 개념이 아닌
생명체 모두가 하나의 가족개념을 갖는걸 말하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가족이란 것이 편애나 그로인한 슬픔을 자제하게되고
그것이 간혹은 냉정으로 오해받을 수 도 있을 것 같아.
마치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면 그 여우와 다른 여우를 구분하게되어
모든 여우를 사랑할 수 없게되는 모순 안에서
미처만나지않은 모든 여우마져 가족공동체로 사랑하려할때
길들여진 여우가 오히려 사랑의 소외를 느끼는 그런거지.

(뒷편으로 제주로 향하는 순례자
(그리고 제주에서 4.3의 넋과 만나 준비한 마음을 풀어놓는 순례자의 모습)

우리가 이제 살면서 기억해야할 것은
서로를 마주할 때 욕정의 재물인 심신의 오감으로 보지않고
본연의 영혼을 만나는 훈련이야.
일상의 사람들은 마치 씬레드라인에 나오는 전장속 군인들의 모습과도 같아.
고향을 그리면서도 늘 고향과 멀어져가는거야.
그들의 영혼은 과연 기억잃은 자신의 육신을 어떻게 다시 만날까?
하지만 가끔씩은 외쳐봤으면 좋겠어
[잘 지내고 계신가요?] 마치 와타나베히로꼬처럼.

(여자,누군가 준비해 놓은 제대 앞으로 가 향을 피우고 광주를 떠날 채비를 한다.)

원래는 하나였던 우리의 그 큰 영혼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게 반문하고 내 마음과는 너무도 다른 또다른 나를 인간안에서 바라보는거야.
어쩌면 같은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억속에서
상대를 죽이는 씬레드라인의 우리들의 모습처럼
시간의 공존속에서 단지 역사라고 오판하는 우리의 망각을 보면서
기억하고 계신가요 기억하세요 이렇게 말하는거야
그리곤 마지막으로
잊지마세요 우리가 떠나온 하늘에 대하여 하고 말야.
 
(까페언덕위의바보에 노래하는 이 나와 노래한다)
music3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행복했어,
고마웠어, 나 지금 너에게 미안해 하고있어
그토록
아름다웠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
멀리 있어도 지금 빛나는
저 별처럼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아주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바보처럼
날 사랑해줬던 널 보고 싶어라
너의 환한 미소
어쩌다 내가 아프면
나보더 더 아파했었던
내 친구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2014년 5월 21일 수요일오후 1:33:21 

2000년5월 광주 금남로 그리고 망월동에서의  [잊지마세요]공연후기--.
작성자 : 예기
2000-05-21 오후 4:30:00

공연을 준비하면서 20주년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진않았지만
20이란 그 시간과 그 인연으로 맺어 병?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되돌려보면서 기억하는건 어쩔수없었다.
광주 낯설고 전혀 연고도 없는 곳,
허지만 언제부턴가 죄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고향보다 더 깊은 정겨움으로 남아버린곳.
후이넘에서 돌아와 사막속에서 물을 찾아가다가
그 수맥을 찾은 듯 늘 그리워지는 곳.
아크로폴리스계단에서 처럼 2500년을 주기로 다시
인간의 존재의미를 찾아갈 즈음
그 화두가 가장 쉽게 포용되는 지점.
광주는 광주가 아니기에 그렇게 부담마져 져버리고
얼싸안기고싶은 시공을 삶속에서 제안해준다.
이등병의 편지를 공연하며
절망안에서 고향을 그리다가
마을버스 사랑담론을 거쳐 인간안에 모든 것을
잃고 넋을 찾아 헤메이면서
마지막 보류처럼 기다려온 5월.
하지만 작업을 준비하면서 기다림은 모두 헛되고
결국 기다림은 오지않는다는것마져 이겨내는 기다림의 철학으로 패,경,옥의 이름을 부르듯 그렇게
그들이 같이 떠나거나 그곳에서 만나는 그림을 그리며
허상을 만들면서
[잊지마세요]는 만들어져갔다.
51817부터 지난 3년간의 연작의 작업노트와 기록들을 보면서
그안에 함꼐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홀로 그리워하며 문득 전화라도 오지않을까 망상하며 기다렸다.
다시 5월이네요.그때 그 작업하던 그순간이 그리워요.
이제라도 다시 갈 수 있을까요?
하는 그런 전화 혹은 e-mail을 기다리며
그들이 노래하고 분향하고 대사하며 편지를읽고
피아노를 치고 극장공간에서 혹은 거리에서
그렇게 눈믈흘리거나 아름다워하던 만남들을
이어가고파 기억하며 다시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으로부터 [잊지마세요]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날수없었고
다가온다하여도 그 기다림의 반가움보다는 낯설음으로 예의지켜지는 조심스러움.
아크로게단에서 만나서
기억하며 덥썩손을 잡아보는 그런 행복감은
이승에선 결코 없을까?
이미 오래전 아주 외로웠던 날 이등병의 편지처럼 써놓은 대본은 사람들을만나 작업을 마무리할때까지도
끝내 한자도 고쳐지지못한 채
홀로 떠나지않는 기쁨으로 행복해하면서 단식을 시작하며 광주로 향했다.
5월16일.아마죤의 폭포를 기어올라 낯선
곳으로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처럼 5월광주에 내렸다.               
이곳에 오면 고향언덕이 보일까?
5,18기념재단에 들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도움으로 문화행사를 총괄한다는 광주민예총분을 만나러 망월동으로 향했다.
망월동에서 만난 분은 재단의 소개전화를 미리 받고
기다리고있었다.묘욕 관리소장 계장..그런분들과 다시 만나 18일 묘역에서의 공연을 승인받고 ..
지난해 공연을 기억해주시는 묘역관리자분들이 계셔서 감사했다.
밤이 깊어가는 망월동묘역엔 촛불처럼 가로등이 켜지고
인간으로 다가와 그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기억해내고
그리하여 행하엿던 이들의 고운 모습들이 하나둘 꽃처럼 피어나고
낮보다 더화사한 밤으로 귀향만을 기다리는 한 장정을 따스히 맞이한다.
노래패사람들의 노래소리.그리고 마당극이 조그많게 열리고 죽어도 죽지않은 이들의 귀한 숨결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초라하게 해주는데..
아 어떻게 사랑하여야할까?
지난 몇년간 작업하면서 그 많은 공연에 담았던 사람들과 같이오지못한 죄는
그것이 유희였나봐요 라고 말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의 이 초라한 단식이 그 죄값을 치르고
이제 올해부터라도 다시 새롭게 영혼 앞에 사람이 장난치지 않는
그런 만남을 가져봤으면 하면서
밤이 깊어가는 시간에 망월동묘역에서 공연할수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망상도 하면서
묘역을 뒤로하고 세트구입등을 위해 시내로 향했다.        
      
......
16일 금남로의 밤은 내일있을 전야제의 무대를 설치하고 한쪽에선 리허설을 하고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가며 구경한다.
20년전 이거리에선 횃불시위가 평화롭게 이뤄지고있었고어쩌면 이밤이 서울의 봄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시작이리라 여기며
사람들은 횃불시위를 마치고 기쁜마음으로 삼삼오오 이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 포근한 꿈에 잠겼을거야.   
금남로는 시공을 넘어 그날을 보여주다간 다시
며칠후의 참혹한 모습과 다시 해방광주의 아름다운 거리 그리고 27일새벽의 진입
그리고 그후의 넋을 보여주고 다시 지난해 [후이넘2-광주]의 예플공연을 그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재현한다.  
지난해 망월동에서 비개인 오후 공연막바지에 카메라에 공연을담고있던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어주던 그 영혼과의 만남 이후
나는 슬퍼하지않는다.
넋의 표정은 한없이 포근하고 온유하며 미소로왔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정말 어떻게 살아야하며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를 찾아 노력하는것이
우리의 본질인 영혼을 안스럽고 슬프게하지않는 것이라는걸.
금남로 보도브럭이나 인도가 웬지 우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청앞에서 3가까지 몇번을 거닐어도 마땅한 공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쩔수없이 그중 가장 깨끗해보이는 곳을 찾아 공연장소로 정하고 제2.제3의 장소를
더 잡은후 그곳에 홀로 앉아서 극을 진행해 본다.
얘기하고파왔지만 응석에 머무르고
무대에 움직이는사람들의 모습은 또 얼만큼 진실해줄까?
연기가되지않게 진실만을 표현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정말 욕되지않게 존재해줄 것을 부탁햇지만 그것이 정말 전달이나 되었을까?
어쩌면 이번에도 이 순례는 중간에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끝내 시작과 끝에는
홀로있는 외톨이의 순례에불과한 것이 되지는않을까?
내가 알고있는 역사는 아주 적다.
누군가 아무런 조건없이 남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역사이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렇다는 것과
그 의연하고 아름다운 죽음들이
동학의 우금치,경복궁에서의 명성황후시해사건,춘성문에서의 을미왜란평정창의.
3,1만세운동, 지리산, 4,3제주, 4,19 ,5월광주 동티모르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 정도.
금남로는 그 모든 얘길 솟구쳐 들려주며 그들의 넋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혹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기억의 촉매가 되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밤이 깊었을 때
이 짧은 인간존재의 시간속에 5월광주와 그아름다운 영혼들이 없었다면
존재의 허망함을 이겨낼 의지나
감정의 존재인 인간속에서 수없이 맞부딪쳐오는 파멸의 굴레들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의지받을수있을까 하는
어린아이같은 마음이 되었다.
내일은 공연안에서 그 아름다운 영혼들에게
어린아이처럼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려봐야지..[잊지마세요]그 대본그대로..   
..............
리허설은 한다는것이 굳이 내키지않는것은 이번공연에서도 여전하다.
모두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던간에 그것을 기술적인 모습으로 준비하고 가다듬는
다는것이 행여라도 연기연습이나 형식적 준비가 될수있고
그것으로 인해 조심스레 준비해온 진실에의 접근이 가려지고 단지
일반 연극처럼 어떤 극의 형태로 변모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17일 첫공연을 앞둔 광주에서의 둘째날, 의자와 탁자등 소품을 구입하고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2진 3진 그리고 4진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모두들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내려오고 또 공연에 임한다.
나름대로 올해에도 사람들은 진실하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각기의 세계안에서 한구석씩
제각기의 의미를 5월광주에 부여하면서 그안에 자신을 담거나 취하려한다.
처음엔 아주 많은 것을 기다렸지만 늘 그렇듯 아주 적은 사람이
여러감정의 모순을 격고 이렇게 모아져서 간혹은 하고픈 말도 행여 다 못하고
그냥 그렇게 다가와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여
동지보다는 인솔의 개념으로 늘 이렇게 예플작업은 이뤄진다.
한 때는 동지를 기다리거나 없다고 슬퍼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인간세상에서 그 누구도 동지는 될수없는 것이 이 길이란 것을 알기에
그저 잠시잠간 스쳐지나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언제부턴가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되어버린 모순.
광주역에서 일행을 만난다.
사람을 만나기가 조금은 두렵다.
이 작업의 그 화두를 어디까지 얘기해야할까 그리고 어디까지만 개개인에게 흡족할까?
단식은 이틀이 넘어서면서 몸과 정신에 익숙해졌다.
역시 이번팀도 지난해와 다를바없이 각기 다른 가슴으로 다가와 여기에 합류하고있다.
리허설은 형식처럼 한번 맞춰본다.
가능하다면 리허설이 그들에게 덕스러운 환경을 제공하지않기를 바라면서
그들 스스로 원하는만큼 절실함을 갖추고 가슴을추스리는 시간이 되어주엇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더이상의 추구는 배제하고 순서와 연결고리만 이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리허설보다는 같은 시간 금남로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과 의무를 다져가는 사
람들이 생기길 고대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그것처럼 참여자들도 저들의 모습에 미움보
다는 안타가움으로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지말고 시차를 공유하여 1년
전 2년전 5년전.. 20년전 같은 거리에 공존하는 사람들을 함꼐 만나며 그들중 가장 아
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의 눈과 같은 시선으로 함꼐 바라보며
잠시후 우리가 작업할 또하나의 시간을 위한 자기정화에 성숙해주었으면 하고...

우리가 살면서 타인을위해 사랑할수잇는 기회는 그리많지않다.
준비도 없이 다가오기도하지만
예기플라타너스작업은 스스로 준비하는 가로수와 같아서
그 준비는 만남을 향한 너무도 고귀한 찰라를 향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역사라는 것이 시간안에 존재하는것으로서 새겨가는 것이라면
예플의 공연은 그 역사의 낙점이다.
너는 살면서 그때 무엇을 하였는가? 하면
그날 그 거리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것을 실천키위해 준비하고 실행하였습니다.
비록 부족하엿으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며 제가 비록 다알지못하오나
기억할수 있는 것만큼은 부끄럽지않게 행하기 위해 그길에 존재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할수
있게.
518연작은 특별하게도 영혼과의 만남을 향한 갈망이다.
늘 준비하던 제대에 향과 위패를 생략하였다.
이젠 그들이 향을 피워 부르지않아도 늘 곁에 있음을 안다.
그리고 위패의 자신의 이름을 쓰지않아도
산자들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면 그들은 먼저알고 미소짓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단지 제대엔 두개의 촛불만 밝히고
마음을 가득 던져서 기다린다.
내가 영혼을 위하고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혼으로부터 위로받고 잊지않고 살기위한 의지를 되새겨받기위해서..

금남로는 지난해보다 더 서럽게도 양쪽에 따로 무대가 설치되고
서로 다른 노래와 서로다른 구호를 외치며
영령들을 추모하고있었다.
그리고 엿장수 꽃장수 등불장수등등이 그들사이에서 자신들의 이승에서의 생존을 위해
개미처럼 열심히 살고있었다.

오색색종이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뿌려졌고 밤은 깊어가도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의 의미를 추구하며 5월금남로에서 움직이고있었다.

앰프를 대여하고 지하상가에서 전원을 얻어 우리의 첫 순례공연을 준비했다.
좀처럼 전야제의 뒷풀이는 잦아들지않고 엿장수의 빠른노래테잎에 맞춘 가위소리도
그지칠않으며 전야제의 밤은 깊어갔다.
그안에서 한구석 사람들이 스쳐가버린 곳에 세트를 세우고
우리의 극을 시작했다.
뒤늦게 금남로에서 합류한 한사람에게 2부를 맡기고
그가 준비한 공연잉 혹시라도 이곳의 가슴아픈 사람들을 슬프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도 그에게 전하지않은채 사람들의 마음 그대로 현실안에서 우리가
사랑할수있는만큼 사랑하며 이거리에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버려두고
준비한 테잎을 틀었다.
어쩔수없이 실패작이 되리란걸 안다는 그 대사 그대로를 고치지못하고 떠나온
[잊지마세요]의 그 대본을..
..................
[잊지마세요]공연후기- 아!금남로공연

행동하는 시간의 시작은 가장 어렵다.
시간안에 서서히 다가가서 움직여지는 자발적인것이 아니라
어느시점을 시작으로해서 문득 시작되는 형태를 취할수 밖에 없는것이
공연의 형태이기 때문인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보이지않는 연극을 만들고싶었다.
거리한구석에서 그냥 사람들이 움직이고있고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움직이는 몇몇 사람
들의 모습이 있고 여러개의 소리속에 또하나의 소리가 있어서
그안에서 무언가 움직여지고있으면서
자세히 보면 그것이 공연이고 스쳐보면 그저 일상인듯 보이지않는 그런 모습.
연기자들에겐 아직 그것이 이해되지못하지만
실존은 그렇게 시작없이 시간속에 연결되고
끝도 그랫으면 좋겟다고 여겼다.

어쨋건 금남로의 밤 지지않는 열기의 산발적여운속에
인도가 아닌 거리에서 우린 의자와 탁자를 놓고 그곳에서 아무런 시작도없이
준비한 자신의 얘기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엿장수가 자기표현을 하듯 우리도 각기 자신이준비한 모습 그대로 자기가 하고픈 어떤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잊지마세요]는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예플작업에서 특히 518연작은 항상 또하나의 제안이 있고 그것은 비워둠이다.
그 비워둠이 어느 곳에선 연극적 형식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여져서
한심한 극으로 비평받기도하고
기다리고있는 이들이 연기를 못하는 사람들로 보여지기도한다.
아마 이렇게 예기공연을 접한 연극적 관객들은 내내 아주 추한 한편의 연극관극경험으
로 예기플라타너스공연을 기억할것이다.
하지만 그 비워둠은 예플이 공연이 아닌 인간과의 만남을 그리는 작업이며
그 그리움을 나누기위해 다가가는 가장큰 존재의미며 화두이므로
그 그리움에 답하는 사람을 만나지못하는 작업시공안에서
예플은 소외의 벽안에 스스로 갇쳐가는 외로운 작업이 되고만다.
작가와 연기자의 만남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
그 만남의 방법이 인간성의 교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또하나 각기다른 우주와의 만
남을 향하고 그래서 작업은 느낌의 환경만을 전달할뿐
나머지는 모두 그 만남의 주체에 맡기고 그들과의 만남의 깊이로
공연은 완성된다.
즉 보이는 자만 볼것이며 들을수있는자만이 들을것이라는 대사처럼
공연은 일반적 보여주기와 제안하기의 형태를 벗어나
인간각기의 제안과 만남 그리고 살아가는 실존이 어우러지면서
선한 이들의 모습 혹은 부족한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
그들이 지향하고 다가가려는 세상을 표현하고 모자이크하는 것이다.
[잊지마세요]는 그렇게 그리운 마음으로 전야제가 스쳐간 그 밤의 금남로에
존재하엿다.
사람들은 스쳐가고 그러나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머물러
연기도 액션도 없는 몇사람의 움직임에 시선을 멈추고 있었다.
금남로에 놓여지는 제대는 아름답다.
구호도 환호도 조명도 없는 그냥그대로의 거리에 하얀 소목을 입고 다가와
촛불을 켜고 놓여지는 위패도 향도 없는 작은 제대는
가슴안에 사랑을 담은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커다란 추억의 시간으로의 입구이다.
제대가 놓이고 우리의 작업이 도입부를 넘어선후
한 여인이 문득 제대에 다가와 절하고 묵념한다.
그리고 이어 공연내내 촛불이 꺼질때마다 서로 다가와서 그 불을 다시 피워주고
다시 꺼질세라 감사안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2부를 거쳐 3부로 가면서
그 주제곡처럼 아름다운 사람들
못만날줄알았던 그래서 이 역시 잊어버린 사람들속에서 실패작이 되리라던 나의 섯부른
결론은 보기좋게 지워지며
금남로는 기억하고있나요 하고 묻는 우리에게 네 기억하고있어요
그누구보다 더 크게 언제까지나 또렷하게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20년전 그날 아니 100년전의 우금치 경복궁 춘성문 ..으로 돌아간다.
공연곁에 가득한 사람들은 모든것이 끝난 금남로를 치우는 청소차도 비껴가게 하고
조용히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 거기에 함꼐하며
마치 아크로폴리스계단에서처럼
사랑과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여 그 모습으로 차려입고 떠나올때의 마음그대로의 기억만으로
내내 함꼐 존재한다.
이 작업을 준비한 일행들 모두 그들의 손길안에서 한없는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연출하면서 마음을 만들면 표정과 몸짓으로 다 보일거라고 얘기하던 그 예측대로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연기로선 결코 만들어낼수없는 아름다움을 담고
시간안에 담긴다.
못내 가슴아픈 사람 하나가 5월금남로에 조용히 마련된 이 제대에 소주와 삶은 달걀을
사들고 다가와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그의 벗과 한잔의 술을 나눈다.
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고있는  자정을넘은시간 금남로의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들은
조금씩 변화하며 움직이고
그 불빛은 어젯밤 망월동묘역에서 마주하던 촛불같은 그 불빛들이다.
슬프도록 행복한 사람들은 잊지마세요의 여섯가지 인물들 모두의 모습안에
제각기 담겨있다.
모르는사람도 기억하려는사람도 그리고 잊지않는 사람도 모두 거기에 그렇게
서로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으로되어가고
어두운 비 내리면 처마밑에서 눈물흘리고 서있는아이처럼
금남로에서 우린 그렇게 움직이고 바라보고 제대에 다가가며
하나가되어
민주 혹은 인권을 넘어선 가장 큰 사랑 그리고 인간의 생성이유와 존재의미를 기억하
고 그대로 행하는 귀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공연을 마친다.
언제나 공연이 끝나면 다시 추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금남로의 공연에서 만큼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거라는 감사한 결말을 얻는다.
아.금남로공연.
이곳이 아마도 차원이 이동되는 그곳,
그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입구가 있는 이동공간이 아닐까?
금남로그 차원이동공간에서 함꼐듣던
아름다운사람 너의노래는 까페에서..와
그 시선안엥 담기던 순애언니를 찾아가는 영화작가의 초행과 순례자의 아름다운 발걸
음,그리고 까페 언덕위의 바보의 그 고운 숨결.상여나가는 소리맞춰 영령을 배웅하는
마임이스트,그리고 제대를 준비하는사람과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
촛불을 지키는사람들, 아름다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표정들,
언제 다시 또 이런 만남을 가질수있를까?
기억할수있을까? 잊지않을 수 있을까?

이승에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이들이 있는 곳.
우리들 심신속 내면에 담긴 그 커다란 아름다운 영혼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어
감사했던 시간.
사람들이 매일 이시간처럼 그렇게 절대 잊지말고
자신을 버리고
존재의 이유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
[잊지마세요]공연후기.금남로,그 거리에서
작성자 : 임혜영

시  간 : 2000-05-26 오후 4:00:00

내  용 : 작년과는 또 다르게 금남로 분수대앞엔 전야제행사가 예년과 같게 치뤄지고 있었고
금남로의 끝에서는 서로 다르게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조금은 혼란스러움으로 느껴지고...
분수대앞 행사는 먼저 끝나고 또다른쪽에선 한창이었고
우리 일행 보다 하루 먼저 광주에 온 예기님이 공연할 장소를 다 물색해놓은 상태여서
우리는 그곳으로 안내되여서 테이블을 배치하고 음향을 설치해놓고
색종이가 온통 바닥에 어지럽게 뿌려진 바닥을 비로 쓸고 물걸레를 빌려와 닦고 또 닦으면서
모든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광주를 느끼고들 있었다. 아무말없이 ....
아무래도 행사는 끝날것 같지않았고 우리는 자리를 한블럭정도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우리가 옮긴 장소는 인도가 아니라 금남로차도 바로 그 거리에서다.
바로 앞에 도청이 보이고 가로등이 조명으로 비쳐주면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소복으로 갈아 입고 제대를 차리고 초에 불을 켜고 절을 하는데 정말 뭉클한 것이
감회가 서려 오는데 참 뭐라 말을 할수가 없네요.
그리군 속으로 영령들께 인사를 나누었어요
저 다시 왔어요 잘지내셨지요?
저도 잘지냈어요. 하면서..
올해는 위패도 향도 피우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위패를 보고 향냄새를 맡고 찾아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슬픔을 초월하여 매년 오월이되면 제대를 차리는이는 슬퍼서 울기 보다는
영령들께 위안을 받고 그 슬픔을 환하게 받아 편안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추념하기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이의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언덕위의 바보 까페는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차려진 곳이라 편한함으로 엽서도 쓰면서
찾아오는사람들에게 따스한 차한잔을 내놓으며 그들에 이야기를 들어주며
슬퍼하는이가 있으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들과 우리도 곧 만나게될테니까요.
다시 소복으로 갈아 입고 그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실은 그때가 더 가슴이 저려왔다.
제대에 찾아와 웃옷을 벗으며 깊게 절을하는 어떤분을 보면서 속으로 속으로 울었다.
그분은 나중에 또 오셔서는 소주 한잔을 제대에 놓으시고
삶은 계란을 밑에 서너개를 까서 정성으로 꾸며지는 제대를 바라보며 정말 잊지말고 아름답게 살아야함을
또한번 일깨우면서 도청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있었어요
시작이며 끝이 어디인지를 모를 공연이 꿈처럼 끝나고 정말 행복했어요 금남로가 포근히 우리들을 감싸주며 ..
내일이면 이 금남로는 꿈에서본 거리가 되겠지 일년에 딱하루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에 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2014년 5월 21일 수요일오후 1:50:57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48 오월사적지 오월길 거리사진전
이름없는공연 34주년 5월연작 그 7일째 날인 21일은
오월사적지,오월길 거리사진전을 가집니다.
실내공간이 없다면 혹 담벼락하나라도 장소 가지신분 계셔서
이곳에 와서 비추라고 하실까 공지도 올려봤지만
아무도 없어서 마감하고
게릴라 형식의 슬라이드 사진전으로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그 48번째 작업으로 거리 슬라이드 사진전 형식의 공연준비를 마칩니다.
2014년 오월길 순례하면서 사적지로 지정된 20여곳과 오월 순례길로 광주 분들이 정하신 곳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2014년의 현장으로 사진 찍었던 사진들과
이름없는 공연의 오월 순례 공연 사진 속에 담겨져 있는 지금은 변하거나 지워져 버린
오월사적지들의 모습을 모아서 총745장의 사진을 정리해서 오월사적지 거리전으로 준비합니다.

2014년 5월 21일 수요일오후 3:23:51

 

오월연작 49 잊지마세요 22일밤 남광주에서의 공연을 준비합니다.
 
2000년5월의 그 감동 다시 그리워서 매년 전야제가 끝난 금남로에 다시 서보고 기다려도 보았지만
2000년 그 날을 마지막으로 광주는 다시 그런 아름다움을 나눠주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해 부턴 가는 그 사실을 용납하며 기다림과 허망함의 반복은 지우고
그 초연의 독백처럼 실패작이 되기 위해서 오월연작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하늘에 대해서로 시작해서 잊지마세요로 이어간 긴 나레이션은
이후 부분부분 생략되며 잊지마세요03으로 3년뒤 광주순례를 위해서 다시 준비되었고
비슷한 형식의 기다림으로 다시 마련한 금남로 전야제 후 제대 앞엔 아무도 분향하지 않은 채
공연을 보는 형태의 구경꾼만 가득했습니다.
그 잊지마세요를 다시 14년만에 주비합니다.
탁자하나에 꽃병하나 올리고 촛불을 켭니다.
그리고 한족에 작은 카페 언덕 위의 바보를 만듭니다.
그날 같이 순례자가 되어주었던 김선재님과 이창원님의 독백과 전화목소리등이
들리고 김선재와 예플러 두 사람이 읽어 내려가는 나레이션이 배경음이 되어
거리한편을 흐릅니다.
아름다운 사람 너의 노래 잊혀질 때가지는 널 사랑할께 노래 들리고
빛고을 어느 곳 오월의 추억이 감도는 곳에서  시간이 다시 정지됩니다.
2014년 5월 21일 수요일오후 3:27:39
 
푸른길 파빌리온에서의 오월사적지 오월길 거리사진전
이름없는공연 오월연작 마흔여덟번째 공연 
 
오월공연영상회와 함께 34주년 5월 빛고을에서 오월사진전을 갖고 싶었습니다.
지난 몇 년동안 오월 빛고을을 찾아서 공연했던 공연사진보다는
그 공연사진 안에 담겨진 빛고을의 모습을 다시 이곳에 기억처럼 새겨보고 싶고
조그마한 갤러리나 어느 건물 계단 아래 한면이라도 누군가 빌려주신다고하면
그곳에서 인화한 몇십장 사진을 모아 곱게 전시하면서
외면상으로 오월을 지워가는 빛고을의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얘기나누고도 싶었습니다.
2004년에 오월사적비를 찾아 순례햿듯
10년지나 3월.광주분들이 정한 오월길을 따라 그분들이 안내하는 사적지를 하나하나 찾아 걸으면서
2014년 34년 지나 남겨지고 새겨진 오월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사적비들도 그 지정번호따라 모두 찾아서 손으로 만져보고 오월사진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두세 달 간 누군가 응답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광주에 공간을 가진 분이나
공공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길 기다렸으나 결국 아무도 응답없어서
장소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인화하려 구분하고 분류해서 정해놓았던 사진들도 끝내 인화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결국 오월사적지 사진전은 슬라이드거리사진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인화를 하지 않으므로서 오히려 더큰 크기로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고
전시사진 숫자도 여유가 생겨서
총 745장의 사진을 전시사진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인 없는 곳.아니면 공공기관이나 관리자가 있어도
그곳에서 휴식하는 사람에게 뭐라 하지 않듯
마주 앉아서 담소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하지 않는 곳을 찾아서
거리사진전의 장소를 모색했습니다.
몇 번의 답사를 통해서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고 관리하는분도 안계시며
오월사적지사진을 담기에 아름다운 곳.찾아.
계림동에서 광주역에서 푸른길이 시작되는 부근.조금 걸어서
전시공간으로 형태를 갖춰놓은 곳. 파빌리온에서 사진전을 가졌습니다.
인기척에 마을 담너머 강아지가 몇 번 짓어주었을 뿐
오월 순례자가 아프게 그리며 적어둔 오월 사적지들의 지워져가는 모습 적은
사진들이 투사되는 파빌리온 곁으론 어둠 속에서도 걷기 운동하시는 분들의 모습만 스치고
어느 한 분 멈춰서서 보시는 분 없었습니다.
근데 이고 구청이나 푸른길사무국에 시전 신고안했다고 후에라도 문제가 된다면 어쩌나하는 두려움도 약간가지고
만약 그런일이 생긱 경우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면
다시 설명하기위해서 오히려 한번 더 사진전을가질수도 있겠다 그렇게라도 관심가져주면 좋겠다 희망도 하면서.
결국 이 공연도 산자들이 아닌 넋들과의 대화
그리고 광주를 피고지는 꽃풀들과 나무 그리고 사람아닌 생명들만이 관심주는
공연으로 끝났습니다.
이날 전시한 오월길 사진들은 전시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리워 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보 실 수 있게  웹에 다시 앉았습니다.
34주년 오월작업.그 17일간의 순례 중 7일째.
준비했던 여덟편의공연이 끝났고
이제 남광주 공원,광주공원,광천동,그리고 도청과 상무관등에서의
복기 공연과 신작 언덕 위의 바보,평화그림 등을 공연할 10일간의 순례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아서 홀로 가지는
이름없는공연 34주년 5월행사일정이 남았습니다.
2014년 5월 22일 목요일오전 9:16:41
 후이넘에서돌아와2-그리움 15년전 금남로와 망월동에서의 그 공연을 홀로 다시 준비하며
 
34주년 5월연작 그리고 복기공연.
34주년 27일 새벽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주제를 복합시킨 오월광주를 살면서
시민군들에게 드리는 작업으로 50번째 오월연작을 준비합니다.
광주공원을 공연장소로 정하고 겨울여행2-그리움과 후이넘에서 돌아와2 그리고 다시 겨울여행2-33년으로
이어진 주제와 화두를 정리해서 34주년 또 한 편의 복기공연을 구성합니다.
1999년 초연한 후이넘에서 돌아와 2-광주는
1998년 갈등 정화 나눔으로 이어진 후이넘 연작 세 번째 작업으로
1999년 광주순례를 준비하면서 그리움이란 부제로 5월17일과 18일 금남로와 망월동에서 공연했습니다.
이선화 박미루 고재경 이창원 김진수님과 예플러가 함께 준비했고 광주에서 공연했으며
이선화 이창원님이 각기의 자전적 에피소드를 구성대본으로 같이 만들고
박미루 고재경 김진수님이 연주와 구음 마임과 몸짓으로 동행했습니다.
15년지나 그때 같이했던 분들 아무도 함께 다시 오지 못하고
예플러 혼자 다시 그들의 음성과 기억을 가지고 빛고을을 찾아와서
15년전 그 날의 고운 마음들 상기하면서 복기공연을 준비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고재경,이선화님 외엔
페이스북 친구로 연결고리는 갖고 있어서
같이 못하는 마음,달래며 광주공원에서의 공연구성과 준비를 마칩니다.
2014년 5월 25일 일요일오전 10:48:11
.
 
 
후이넘에서돌아와2-그리움
1999년 금남로 초연의 대본

[후이넘에서 돌아와2 -광주]
-----------------------------------
신영철 구성 연출(대본공동구성-이창원,이선화)
---------------------------------------------
1999년 5,18 광주공연 대본-금남로와 망월동 공연
여자
마임이스트
그
메신저
음악가

(빈공간)
1.
소리-
조나단 스위프트는 인간을 분노케하고자 후이넘나라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 역시 소외를 피해 거닐다가 그곳에 표류하게 되었었다.
그리곤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도 잊어버린 채 넋을 놓고 표류하며 인간을 질시했다.
하지만 돌아와 인간 세상에 뿌려진 지금의 가슴은
다시 한없는 그리움으로 고집처럼 희망한다.
그리곤 간혹 바라본다. 사람들 그 귀한 영혼들의 기억 잃은 모습들.
(music1 b.g in-night slip by william ackerman)

2.
(여자.아침방으로 들어서며 전화한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거리로 나간다
버스를 타고, 교정,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

 지하철에서 말야..난 좌석에 앉아서 노트에 뭔가 메모를 하고
있었거든..근데 내앞에 서있던 어떤 아저씨한분이 ''거 필적이 참좋습니다''
하는거야. 난 그냥 쳐다보구 웃어줬어.
근데 그사람이 계속 말을 시키더라구
어쩜 이렇게 글씨를잘써요?.. 성공하겠네.. 난 삼성에 다녔어요..
내가 국가유공자예요..  ..
순간적으로 국가유공자라는 말을 들으니깐 그후유증으로 정신장애를
겪고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어.
그에게서 술냄새가 심하게났거든..발음도 이상하고..옷차림도 남루하고...
내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어.
장애인을 편견없이 대하자고 하지만..그런 상황에서는 두렵고 무서웠거든
난 아무 대꾸도 하지않고 쓰던글도 멈추고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쓰는 내 글씨가 예쁘기나 했겠어..?
그는 내앞에서서 가만히 있다가..나에게 한마디씩 말을 걸기도 하다가..
그러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수십장을 꺼내더니
그중 한장을 나한테 쥐어주는거야.. 자기가 너무 고마워서 그런다고..
내가 글씨를 예쁘게 써서말이야..
난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거든.. 아니예요 제가 이돈을 왜
받아요 하며 손을 뿌리쳤는데 ''나돈많아요'' 하면서 기어코 쥐어주고는
다른데로 가버리는거야.. 순간 얼마나 당황했던지..
난 한손에 만원짜리를 들고는 순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어. 사람들이
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사람은 저만치서 문옆에 서있는데..
내가 다시 돈을 돌려주려해도 분명 안받을텐데..
실랑이를 벌일생각을 하면 너무 챙피했거든..
난 멍해져서 가만있다가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서 이돈 가져가시라고
돌려주려했어. 그사람이 말야..내 손목을 세게 잡으면서 기어코
됐다고 하는거야.. 그러면서 하는말이
좋은책 사서 보고 공부하는데 쓰라고..   이미 두려움이 사려져버린 나는
전쟁에 참여하셨었어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어..
그는 월남전에 참여했었던 국가유공자라고 하며 ''사는데는지장없어''
라고 했어.. 그러면서 나한테  입을 벌려 보여주며..
내가 그때 미군들이 쓴 약때문에 이렇게 이빨이 하나도 없어..하는데
정말 윗이빨이 하나도 없더라..
나한테 좋은책많이 보고 ..우리같은 사람들..글많이 써서 세상에 좀
알리라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지하철에서 내렸어.. 난 그냥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볼수
밖에 없었어. 손에는 만원짜리 한장을 그렇게 들고서 말이야..
그는 누구하고라도 얘기를 하고싶었겠지..? 그사람의 얘길 들어주지
못하고 피하려고했던 내모습이 부끄럽고 슬펐어..
그가 이야길 하려해도 세상은 늘 그렇게 냉정히 외면했었겠지..?
몰랐었어..전쟁이 한사람의 인생을 저렇게까지 만들수도 있구나..
난 TV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지..한번도 공감해보지 못했거든..
물질적인 보상만이 과연 전부일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답답했으면 처음보는 나에게 돈까지 쥐어주며 그랬을까 생각해..
사람들은 점점 잊어가니까 말이야..
자꾸 그가 주장하려하면,, 그만할때가 되지않았느냐고
보상 좀 받은 걸로 되지않았느냐고 하겠지
한번도 진정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준 적이 없으면서 말이야..
주머니속에 그 만원짜리를 집어넣었는데 말이야..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이게 날카로운 가시처럼 자꾸 내 손바닥을 찌르는것만 같애..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온다..
나 망월동에 가고싶어..
그곳엔 그 때 만난 그 사람처럼 내가 소외시켜온
수많은 영혼들이 있겠지?
가서 그곳에서 분향하며 영혼들을 만나고 싶어..
왜 알지못했을까..
내가 그렇게 삶을 즐기면서.. 나를 위해 살아온 순간순간..
보이지않는 곳에서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혼들이 있었다는걸..
삶을 즐길 여유조차 갖지못하고
힘들게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걸...
(그 티켓을 산다 기차를 타고 떠난다.)
     
3
(music1 up in out)
(그가 얘기하는 동안 마임이스트 등장 작업한다.
그리고 돌아온 세상에서 후이넘에서의 귀향을 기억하며
세상에 나누기 위해 무대를 만들어간다)

소리-
그는 후이넘에서 돌아와 이 세상에서 말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보인다.
아니면 말이 유통시키는 오해가 두려워
말을 멈추고 얘기하려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노력한다.
세상이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고 ..
스쳐 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주시하며
그들의 얘기 안에 희망을 담아내는
무언극배우로서 살고파한다.
말하지 않으며 침묵하지 아니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워주고파 하는 걸까?
사람들 속에 그가 있지만 그는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music1 in-out 마임이스트의 작업)

4.
(그,술자리에 함께하여 누군가와 술을 마신다)
(술을 따라주고 술잔을 들어 술을 받는다)

그-
시위를 했어.
1989년 2월 명동이었을거야 아마.
사람들이 전두환 구속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모였다가 흩어지고 모였다가 흩어지고
최루탄가스는 거리에 자욱하고..
전경들을 피해 도망치다보니 골목이 나오데.
골목으로 들어서 숨을 곳을 찾고있는데.......
앞에서 한 사람이 서너명의 전경들에게 얻어 맞고 있는거야.
내 친구였어..
친구를 구해야겠는데, 갑자기 머리는 텅비고 두다리는후들거리고 ..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앞으로 뛰어갔어.  친구를 때리고 있는 전경
중 한명을 잡고는 머리를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지.  
헬멧을 쓰고 있는데 아프기나 했겠어.
무언가 내 입을 때리더군.  전경의 방패에 입을 찍힌 거였어.
내 앞니 하나가 죽은 것 알지..  그때 방패에 찍힌 흔적이야..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 친구를 다시 만났지.
그때 이야기를 하며 "역시 넌 내 친구, 내 동지야"  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나는 웃을 수도 그 친구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어.
친구를 구하려는 순간에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는게 너무도
미안했거든.
오래 전 일이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글쎄..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술을 마시다보니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해야할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날은 바람이 불면 좋겠어. 바람이 불면 마음이 너무나 시원해지거든..
 
music2 in b.g 한여름밤
(그,친구의 나가자는 말에 고개들 끄덕인다)
 
(한사람 나와서 위패를모시고 분향하며 제례를 준비한다.)
(아침,그 일어나 집을 나선다)
music1 b.g in
소리-
매년 5월이 되면 그 사람은 소외마저 지워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모르는 이를 위한 제대를 준비하고 분향한다.
그리곤 자신을 포함한 모르는 이를 위해 죽어간 귀한 영혼들을 그린다.
인간의 진화 그리고 문명의 세계를 그리며
이곳에서의 존재의 의미를 기억하고 확인시켜간 영혼들..
후이넘도 모르는 이을 위해 생명을 바칠 만큼 선할 수 있을까?

(분향하는 이 제대앞에 무릎끓고앉아 기다린다)
music1 up in-out
music3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행복했어,
고마웠어, 나 지금 너에게 미안해 하고있어
그토록
아름다웠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
멀리 있어도 지금 빛나는
저 별처럼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아주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바보처럼
날 사랑해줬던 널 보고 싶어라
너의 환한 미소
어쩌다 내가 아프면
나보더 더 아파했었던
내 친구
Chorus)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e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 걸  
너를 위해
사랑했던
너의 그 두눈을
영원히 (Forever)
I Will Give You Everything Your Heart Wishes For
To The Day We All Go,
I Just Want You To Know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인걸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제대를 지키는 이)
(여자 다가와서 분향한다)
music3 잊혀질 때 까지는 널 사랑할께... -out
 
6.
music1 in b.g in-

(메신저 책상에 다가와 엽서를 정리하고 적는다)
소리-
그는 오늘도 종이를 모아서 그 여백에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누고픈
사랑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었다.
그리고 숲길을 나서서 세상에 조그마한 여백에 그것을 두고 온다..
글귀와 시를 적어 아무런 욕심없이 누군가에게  
삶의 용기와 가치가 되어주기위한 고운 숨결을 전해줄수있길 바라며
엽서를 적어가던 그는
후이넘에서 돌아온 그가 숲길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만난
또하나의 선인의 모습이었다.
5월 광주의 망월동.
우리는 사랑한다고하지만 단지 형식적으로 묵념할뿐이고
모르는 이의 가슴아픈 공동체사랑으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지못한채 행사처럼 다가간다.
하지만 그곳엔 언제나 내아내 내 아들에게 적어준 편지가아닌
모르는이가 적어준 사랑의 편지와 종이학,꽃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찾아오고파하는사람들의 마음이
이 메신저의 수고를 통해 이곳에 놓여진다.
그는 서로 만나고자하는 그리운 사람들의  
이기심없는 순수한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얘기들을   
전하기위해 먼길을 걸어
우체부처럼 그 글들을 모으고
그것을 전하고 다시 사라진다.
music1 b.g out
music4 너에게날 in
(메신저 길위에 엽서를 한장한장 놓아가며 퇴장)
music4 out
--------------
tape pause
--------------
(음악하는 이 연주를 준비한다)

 7.
music5 in out(live)
(음악하는 이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하는 이 연주마치고 악기를 정리해서 들어갈즈음)

소리-
주머니속에 그 만원짜리를 집어넣었는데 말이야..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이게 날카로운 가시처럼 자꾸 내 손바닥을 찌르는것만 같아..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온다..
나 망월동에 가고싶어..
그곳엔 그 때 만난 그 사람처럼 내가 소외시켜온
수많은 영혼들이 있을테지.. 가서 그곳에서 분향하며
영혼들을 만나고 싶어..
왜 알지못했을까..
내가 그렇게 삶을 즐기면서.. 나를 위해 살아온 순간순간..
보이지않는 곳에서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혼들이 있었다는걸..
삶을 즐길 여유조차 갖지못하고
힘들게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걸...
 
8.
music1 b.g in
(등산배낭을 맨 사람 산장으로 들어온다)
소리-
그 사람은 오늘도 즐거이 힘든 여정에 나선다
짊어진 배낭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에게 베풀기 위한 음식과 옷가지,
비상약과 모포 등이 준비 되있다
험준한 산 속에서 뜻하지 않은 위험을 만나 조난 당한 이들을 위해
이 물건들을 준비한 것이다
단순한 동정이 아닌 준비된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또다시 위험하고 힘겨운 산행을 자처한다
이미 이 일은 자신에게 하나의 의무가 되어 소중한 약속처럼 지켜나간다
사내는 짐을 산장에 부리며 꼭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용된 물건들을 보며 그들의 마음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비워진 배낭을 메고 돌아오는 길은
그가 선택한 가난만큼이나 홀가분하고 편하다
music1 b.g out
(산장으로 들어온 그 배낭을 플어 물건을 정리한다)
music6 (잊혀질때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9.
(등장했던 사람들 하나둘 나와 제각기 자기의 모습 안에 서 있다.)
커튼콜
다시 music4 (너에게 날) 혹은
music6 (잊혀질때까지는 널 사랑할께) in out again

 

34주년 12편의 복기공연과 3일간의 영화제 남은 일정
 
준비한 12편의 복기공연 가운데
5.15/19 세가지사랑-51834.(국군광주병원,505보안부,전남대)42
5.16 후이넘의 기억-상무대51834(518자유공원)43
5.16/23/30 이름없는공연오월연작 3일간의 공연영상회(민들레소극장5층)44
5.17-31순애언니51834(망월동,광주역,금남로,전남대)45
5.17 518 17주년전야제-51834(예술의 거리)46
5.18 518 17주년추념식-51834(예술의 거리)47
5.21 5월사적지오월길 거리 사진전 푸른길파빌리온)48
5.22 잊지 마세요-51834(남광주 공원)49
5.25 후이넘에서 돌아와2-51834(광주공원)50
 여덟작품을 공연했고 이제
26일 도청에서의 공연 도청별관51834-51과
27일 도청 앞 공연 평화그림 52
28일 광천동 공연 헤어진 다음날-51834 53
그리고 29-31일사이에 마지막 공연
카페 언덕 위의 바보로 12편의 복기 공연을  마칩니다.
30일 민들레소극장5층에서 마지막 영상회가 있고
넋들에게 의무처럼 약속드린 대로
지난 17년간 빛고을에서 그렸던 시간의 기억
12편의 복기 공연과 3일간의 영상회를 마무리짓습니다.
이번에 빛고을 오월 길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은
그날아닌 날에도 언제든 다시 누군가가 다가와 같이하고 싶다거나
보고 싶어하시면 달려가 공연하며
못다 한 긴 얘기 같이 나누며 넋들 앞에 들려드리고 싶었던 얘기
만나면 안겨서 나눌 얘기로  살아남은 시간들을  메울 것입니다.
언제고 이승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
 
비록 17년간 오가며 한번이라도 같이 왔던 사람들
그 중 아무도 다시 만나 같이 오지 못하고
아무도 이 모든 작업에 동행해주지 않아서 홀로 넋들 앞에 서야했고
살아 있는 이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에서
준비한 대화나눌 사람조차 하나 없어 쓸쓸한 듯 보이셨겠지만
오월광주에 살면서 넋들과 시간구애없이 만나고 얘기 나누는 일.
먼저 약속하고 그곳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약속드린 모든 것을 행동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2014년 5월 25일 일요일오후 12:11:31
5월,그곳에 하늘이 열리고나면
그 희망으로 다시
그 긴기다림은 시작되고..
51834
이름없는공연 34주년5월 빛고을 순례작업.
이름없는공연5월연작42-번째작품
51834 작업노트
이름없는공연5월연작
   
 
27일 새벽 5년만에 다시 도청별관 그 복기공연을 준비하면서  
 
오월 그리고 다시 27일 34주년 복기공연과 영상회를 가지는 이름없는공연도
그 날 밤과 새벽을 기다려 80년도청으로 갑니다.
아시아 문화전당공사로 이미 허리를 잘린 사적지 도청건물은
그 마당마져 쓸려서 분수대 상무관 그리고 바라보이던 금남로까지
살아남은자들의 목적에 의해서 그 원형을 잃었고
이제 그 공사도 마무리되어서 그 원형을 헤아려볼 수 있는 마지막오월입니다.
파괴와 지워버림의 공사현장이 되어서
오월 민주성지로 다가온 순례자들의 접근조차 가로막은 금지선과 금지장막사이로
다가갈 수 있는만큼 그리워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찾아서
5년전 그래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넋들과 함께 있던 곳.
그곳에 가서 도청별관 5년전 이곳,하나둘 떠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마지막 남아 같이 종이꽃 만들어 주던 그 아름답던 사람들의 얘기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4시.언제나 처럼 도청앞으로 나와달라고  청했던 만남 그리면서
평화 그림 그 마흔여덟 번째 작업으로
제안드린 인간띠를 만듭니다.
올해는 넋들에게 죄스럽지 않은 우리들이었으면 하는 또한번의 꿈을 꾸면서.
2014년 5월 26일 월요일오후 3:29:32..

.
34주년 5월27일 도청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34주년 5월 빛고을순례.
그  일정 중  하루에 두 편의 공연을 준비했던 17-18일밤에 이어
세편의 공연일정을 준비했던 27일.
늘 다가가 넋들과 함께 밤을 지새던. 80년도청은 이제 아시아문화전당의 한 부분건물로 파괴되고
어느 해부턴가 다가가 닫친 눈앞에서 바라만 보아야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언제나 공사하시는 분들의 깜박 실수로 문이 잠겨지지 않은 시간에 갈 수 있어서
열려진 문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그곳에 다가가서 준비한 공연을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마침내 본관과 별관사이 참혹히 부셔 버린 도청.원형을 잃어 버린 사적지에서
그 새벽 넋들을 그립니다.
 
4시가되기전에 누군가와 같이 준비하고 싶었던 27일새벽공연 [도청별관]
이제는 넋들이 마지막으로 지키시다 떠나신 곳
그 오월의 마지막 원형사적지인 별관을 지키시던 동지들과 유족 분들의 얘기를 담아서
이제는 마침내 부셔 버린 그 곳이 보이는 길가에 서서
그 의로운 마음,약속버리지 않고 살아있다는 핑계로 편의롭게 망각할 수 없어서
넋들을 그리며 지켜주고 싶어했던 빛고을에서 만났던 마지막 아름다움 그립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또 한 사람 벗이 되어 기렸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넋들에게 부드럽지 않게 지키고 이루고 싶었던 세상,
공연이란 핑계로 미안함과 수줍음 딛고 행합니다.
그리고 4시 장소를 옮겨 다시 80년 도청 앞.
 
광주의 놀이패 신명분들이 다섯 분이나 이 새벽의 만남에 응답해서 나와주셨고
서울에서 김봉호님이 다시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셔서
27일 새벽 80년 도청,님들의 넋이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시간엔
여덟사람이 촛불을 밝히고 5년전 그 날처럼 종이꽃을 심었습니다.
아무런 구성이나 대본없이 그저 마음으로 다듬어 스스로 행동하면 그것이 곧  
평화가 되고 그림이 되는
평화그림을 마흔여덟번째 작업에서야 처음으로 홀로가 아닌 여러 사람의 마음과 몸으로
시간을 기다려 행하여야 할 곳을 찾아서 스스로 택한 그리움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으로 시간을 담아본 공연.
그들이 도청닫친 공사장 담벽 사이로 도청을 바라보며
그 막힌 벽 앞에 다가앉아서 촛불을 켜고
3시반 이 공연에 앞서 별관 쪽에서 가진 또한 편의 공연 [도청별관]의 배경영상으로 사용된
영상을 같이보고
5년전 도청별관에 가득 심었던 그 종이꽃을
이제는 그럴 수 없어서 막힌 벽에 다시 헌화처럼 붙이고
수줍게 손을 잡고 인간띠도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 아침이 밝아
한 무리의 또다른 사람들이 다가와 공사장 문을 열고 도청입구에 젯상을 차려
부활제를 가지고 이들의 제를 바라보면서
34주년 오월연작 [헤어진 다음날]그 첫 장을 시작합니다.
27일 아침 이 마당에 꽃잎처럼 쓰러져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주검곁에 엎드려 묶여 있던 이들이 참으로 오래만에 이 마당에서 아침 제를 지냅니다.
헤어진 다음날 세친구의 이야기 중 그 첫째날 1980년5월27일.
별이 되어 헤어진 벗과 그를 보내고 남은 벗의 모습.
34년흘러 오늘도 다같이 모이진 못했지만,
한 팀이 아침에 이렇게 벗들을 위한 제를 올리고
유세차 갑오년..으로 시작하는 제문을 읽습니다.
 
[도청별관][평화그림048]그리고 [헤어진 다음날 제1장]까지
그렇게 27일 0시에서 새벽 그리고 아침까지
34주년 5월.순례길 17년을 지나 다시 머무른 공간에서
쓰라림 속에서도 망망대해를 떠가는 몇개 촛불실은 종이배처럼
서글피 남아있는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저녁 다시 80년도청앞
이번엔 아침과 달리 도청 오월비 쪽에 공사장 장벽이 열리고
그곳에 젯상이 올려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를 지내고 헌화합니다.
아침의 그분들과 같이 이 날의 넋들과 함꼐햇던 동지들이
또다른 부활제를 가집니다.
세월호의 슬픔으로 오월의 얘기마저 내놓아야 했던 이 5월 빛고을에서
그래도 이렇게 넋들을 향해 가져보는 마지막 만남.
그 어느 해보다 아름답게 마련된 이 부활제가 있어서
그래도 아직은 가장 아름다운 빛고을
그리고 오월,다시 만나는 그날.
순애언니를 찾아가는 오월길에 다시 만나는
서른 네해 지나도 이루지 못한 약속,의무로 쓸쓸한 오월이십칠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더욱 절실히 부르며 지켜내고 싶은
님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전야제가 끝나고 금남로 충창로 곳곳에 모여 앉아서
떠나간 이 지켜야 할 얘기 나누며 담소하던 사람들이 사라 병? 이곳에
이렇게 부활제를 끝나고 도청 앞 상무관 앞 공사장으로 변한 이 광장한편에 다시 앉아
담소하며 음식 나누는
아직은 오월이 축제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시 그림처럼 담아진 밤.
 
34주년 5월 그리고 그날 27일은 그렇게
다시 가장 그립고 아름다운 .오월빛고을의 모습.
순애 언니의 모습도 그곳어딘가에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 어느 한 곳에 살아났을 ..
2014년 5월 29일 목요일오전 09:32:50

.헤어진 다음날 복기공연 제2장 광천동 들불 야학에서

 
세 친구 이야기 헤어진 다음날의 34주년 오월 빛고을에서의 복기 공연.
그 첫 장은 첫 번째 친구인 상원과 헤어진 날.
5월27일 아침 도청 앞 마당에서 그 아름다운 밤과 새벽을 지내고
상원이 별이 되어 떠난 후 영철은 그 마당에서 효선은 빛고을 어느 곳에서
벗과 헤어진 그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27일 아침 도청에서 그 날의 벗들이 지내는 제례를 바라보면서
그날 아침보다 더 폐허같은  쓸쓸한 34년후의 그 마당에 서있습니다.
그나마 이제 내년이 되면 그 허무함조차 사라져 버릴 망각의 마당에서.
그리고  8년지난 8월 영철이 떠난 그 이튿날.
제2장을 광천동에서 공연합니다.
영철이 친구들과 같이 살며 강학으로 활동하던 곳.
광천동성당 교리관 ,광천동 공단노동자들과 함꼐 야학에서 공부하면서
그들이 그리던 아름다운 세상향한  꿈.
29일은 저녁녘 야학에서 만나 그들의 수업을 같이 들어봅니다..
그리고 제3장 영철마져 떠난 효선의 나날 그 한달 간의 그리움을
예술의 거리 민들레소극장에서 30일 제3장으로 이어 마칩니다..

 

51834 July 518 34주년 7월 빛고을
 
2048년 4월,사람들은 얼마나 기억하고있을까?그리고 그날을 기려
자신들이 해야할 일과 해 온일 그리고 잊지 않겟다던 자신의 약속에 응답하고 있을까?
34년이 흘러도 세월호참사에 담았던 우리들의 의지를 기억하고 행하는
오늘의 우리들 되길 바라며
2014년 5월연작은 [518 34주년 7월 빛고을]의 제목으로 55번째 오월연작을
공연합니다.
5월아닌날에 그저 벗처럼 같이 걷고픈 사람이 계시다면 그들과 같이 걸으며
찾아가 지난 34년의 이야기
혹은 올 5월을 준비하고 지내며 그렷던 이야기 나누고져 일상처럼 그리며 준비했던 작업.
 
하지만 언제나 처럼 아무도 응답없어 다시 홀로 7월의 빛고을을 후기처럼 걷고
안타까운것은  2014년의 빛고을은 순례자에게 마지막 원형순례의 모습으로 다가와 선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부수고 세우며 변형되어가는 인간의 도시안에서
기억해야한다는 것과 그 기억을통해서 연결되는많은 삶의 가치와 방식에 대해서
오늘의 시선을 중첩시켜가며 바라보는 어린마음을 놓치지않기위해 애씁니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달라 봐嗤?34년의 흐름안에 스친 시간과 공간의 얘기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해가 될지 모르는 그 원년,2014년에
이름없는공연은 7월9월 11월 세편의 오월길순레를 준비하고
그 동행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어도 개의치못하고 그 하려던 순례를 마칩으로서
51834 지난17년간의 복기공연으로 시작한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9월순례엔 많은분들이 동참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방인에게 많은 얘기도 들려주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도 얘기해주시며
34년의 기억이
금남로에서의 5월전야제를 대신해 치뤄진
또하나의 기억의 화두 세월호처럼 하나로 이어져서
멸종의 시간앞에서도 진화와 문명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되게.
2014년 7월 29일 화요일12:49:07 PM
 
이름없는공연이 광주에서 그리는 518 34주년 기획공연,
5월7월에 이어 [518 34주년 9월 빛고을] .
8월말까지 공연장소를 제공해주실 분이나 허락해줄 곳을 찾았으나
장소를 제공해주실 의사를 표시해주시거나
허락해주신분이 한분도 없어서
이공연은 광주시내에서 경비나 관리자가 없는 곳을 찾아서,
공연해도 문제가 없는 시간을 찾아서
게릴라공연방식으로 작업일정을 정해서 공지없이 진행하며
제한이 들어오는 경우 바로 중단하고 철수하는 방식으로
공연하기로 결정합니다.
2014년 9월 2일 화요일오전 8:14:02
..
9월4일,이름없는공연의 34주년 5월순례연작 [518 34주년 9월빛고을]
그 첫공연을 시작합니다.
광주분들과 같이 오월길 얘기전해들으면서  순례하고싶었지만
7월에 이어 9월역시 아무도 없이 그 순례를 시작합니다.
34년전 잊지않겟다고 말한 것처럼 이 9월 빛고을에 오월광주는 살아 숨쉬는가?
그리고그 넋과 뜻은 이어지고있는가? 
그 아림찾아 헤메기.9월4일 오후 광주공원에서 시작합니다 
2014년 9월 3일 수요일오후 8:28:37
 
 
34주년 빛고을 광주의 9월은 7월보다 더 서글픕니다.
스스로 하나하나 마지막 남은 의미마져 지워나가는 이곳.
자부심과 의지의 가슴으로 아름답게 시작했던 20년전 어느 의지도
그 귀한 부러움 다 버리고 초라한 변절의 모습으로
9월의 빛고을 한편을 채워
부끄러움의 면적을 확대시킵니다.
그리고그 허망의 채움만큼 이방인의 순례공간을 지워가는
이제는 더 이상 서글프지도않아진 익숙함앞에서
34주년 빛고을연작 그 세 번째 달
9월의 얘기를 시작합니다.
 
놀라운 것은 한 초대작가의 의지가 그렇게 처절히 멸시받아도
그에 동행하지않고 전시를 거두지않는 작가들.
그리고 그 만행의 행사를 축하하면서
영혼없이 그저 주어진 경비받아서 행사처럼 공연하고  제 행위만 기획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메꿔지는 빛고을 오월길의 축제들.
 
전야제도 없었던 오월의 얘기는 이미 그들에게 익숙하고
마지막 원형사적지마져 아시아문화전당이란 관변정부홍보예술공간에 스스로 내어주고
그에 기대어 발전하고싶어서 버린  살아남은자들의 욕구따라 처절히 파괴되는
도청,분수대 그리고 금남로.
오월정신의 지움이 기억보다 훨씬 많은 곳.
그래서 당연히 지켜내어 이루지못하고 다시 역사의 후퇴를 즐겨 받아들이는 이 나라.
그 의무를 다하지못하는 민주의 성지..
 
단호히 보이코트되지못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양 전시하고 공연하는 사람들의 협조로
무너진 정의조차 용납되는 서글픈 땅에서
끝내 배신당해 홀로 외톨이가 되어버린 그의 그림속 이야기처럼
허수아비앞에 목발을 내두르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살아남은자들의 나라.
죽은자들하고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성지.
34년이 지나서 그런가요?
5월이 아니어서 그런가요?
9월에는 그립지않은가요?
부끄럽지않은가요? 미안하고 죄스럽지 않은가요?
그들처럼 아름답게 죽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이리 사나요?
2014년 9월 4일 목요일오전 8:45:49
 
1995년 우울한 현실속에서도 한가닥 빛과 용기
그리고 자부심으로 시작되었던 비엔날레는
20년을 맞으며 그 모든것을 스스로 놓아버리고,스스로 탈취된 축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면 [달콤한 이슬-1980 그 후 프로젝트]만이라도
당당히 멈추는 광주였음했습니다만..
[34주년9월빛고을]은 그렇게 또하나의 정의를 버리고 모르는듯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예술가들마져 되는것 까지만큼만의 자유에 만족하면서..
작품을 거두신 분 그리고 자신이 만들고 키워온 이 축제를 그만 손놓아야하신 귀한 몇분.
그리고 산업화사회에 침탈되는 직조공들의 아픔을 그려내던 그 마음처럼 작가의작품을 거둬준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살아남은자들의 터전 빚고을(빛고을 아닌)은 철없는 순례자에게 존경을 유지합니다.
2014년 9월 5일 금요일오전 10:58:05
.
34주년 빛고을순례 세 번째 달 9월엔...
[34주년9월 빛고을]
9월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간
34년지나 오늘의 빛고을순례 그 세 번째 달
5월7월에 이어 9월을 걷습니다.
통일도 민주도 다 놓쳐 버린 이 어리석은 역사의 후퇴속에서
그저 민생이나 경제개발이란 명분앞에 머리조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땅이되어 버린 이 곳.
갖은 불순과 불의도 용납,이해해주고
용서와 상생 소통이란 말로 얼버무려 후퇴하면서
편의를 위해서 옳음을 버리기 익숙해져 버린 지구 한편 쓸쓸한 나라..
어쩌면 자신들의 욕심과 망각과 만용과 잘못이
이 지구별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뭇생명들과 인류의 공존을 어긋나게하는 촉매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를 위험마져도
무심하거나 포기해 버린 시간들.
바름의 기준이 애매해지고 옳음의 기준이 비꼬여 버려서
애매한 변절이 오히려 정의를 비웃고
다수의 우매로 인해서 어린마음이 버림지어지는 세상에서
34년을 돌이켜 이 땅 한편에서 피어나고 지켜졌던 제안과 실천을 찾아서
돌이켜 그려보며 다짐해보는 순례의 작업.
살아남은 사람들의 나약함이 그들의 변절과 쓰러짐에 답이되어야하는
그리고 용납을 강요하는 잔존의 세상에서
넋들에게 드리는 미안함과 그 용서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찾아걷는 17년의 무지와
다시 17년의 부족한 행동 엮어 담은 34년의 고백.
 
그리워하며 같이할 수 없었던 모든 것
이제는 나눌 수 있게 기다리면서
중천을 떠돌 듯 회향길에 찾아 앉아보는 넋들의 품새..
짙은 슬픔의 빛깔 외톨이의 비명같은 조화 한 웅큼 가슴에 들고서
오월길 사적비를 찾아 걷는 여정으로
34주년 9월 빛고을순례를 준비합니다.
 
님들만이 읽으실수있는 .산 사람들에게는 기대도 희망도 보여주고싶지 않은  편지 적어드리고
같이가는 이 없다고 탓할 일없이
그저 열심히 이유바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튕겨져나온 다른차원의 시간여행자가 되어
빛고을 공간을 다시 걸어보고싶은 죽은 이의 마음으로.
동지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고
벗을 찾았지만 너무들 바빠서
그저 홀로 낙오자가되어 바쁨도 없이 일상도 없이
34년의 기억으로 지난 17년간의 이승의 삶을 생각하면서
돌이켜 걸어보며
이름없이 살아온 삶이라도 더할수잇는 것 채못한 것에대해 용서를 빌고
이제 남은 몇시간에 정절을 약조하며
바램없는 기원으로 제 맹세가 곧 기원이 되는 마지막 기도로
인간세상,남은 삶의 도리를 되새김져 찾고져 묵상합니다.
2014년 9월 19일 금요일오후 1:40:56
 
 
9월하순 빛고을 5월사적지를 순레하는것이
뜽금없어보이기도 하겠지만.
물총축제에이어서 충장축제 비엔날레등으로 축제분위기인
금남로에 도청앞 분수대에...
스스로 지우고 치워가는 이곳
문화전당이란 이름의 놀이와 정부행사공간으로 변화시켜
무너져가는 순교지를 바라보면서
이 가을이 지니면 다시는 만나지못할
민주화의 성지 그리고 순교의 원형사적지 마지막 모습을
마음에 담으며 자신만이라도 기억해새기려는 다짐이라고
이해하시길..

2014년 9월 20일 토요일오후 2:19:38.
 
 
언제부턴가 오월사적비는
언제부턴가 오월사적비는 다 사라져 버리거나 부셔 버린 성지에
그 얘기가 있엇던 곳이라는 흔적만을 알리는  비석같이 놓여있었습니다..
곳에 따라서는 생활하는데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처럼 처분당해서
이리저리 떠밀려 옮겨다니고
아무도 읽을 수 없게 가게 짐더미에 가려 버린 곳도 있습니다.
어쩌다 놀랍게도 그 사적비앞에 꽃과 화분들이 놓여진 것을 만나서
마음갚이 감사드렷는데,
옆에 작은 꽃가게가 판매를위해서 내어놓앗다 들여놓는 꽃과 화분이엇습니다
그렇게 가게가 문을닫으니 다시 덩그러니
그저 한조각 돌맹이 처럼 남는  사적비..
 
이제 대부분의 빛고을 5월사적비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앞에서
아주오래전 이곳에 이런 건물이있었고 이런 거리가 있엇다는 한귀절 글귀만
찾아읽을 수 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원형이 남아서 그 사적비를 찾아서 아 이곳이 이 건물이
그런 이야기를 안고 있구나 하며 명상할 수 있는곳도
하나하나 구청과 시청 혹은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그 원형의 파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은 그 몇몇의 마지막 원형사적지를 기억에 담을수잇는 시간입니다.
 
스스로 지우고 파괴한후에  개발의 명분으로 시민공원화의 명분으로
역사의 현장은 순교지는 처참히 사라져갑니다.
그 원흉인 군부독재가 그렇게 지우고싶어햇던 30년전 처럼 ,
이제는 빛고을사는사람들 스스로 합의하고 공론을 만들고 모아서
100년도 안된 그 이야기들을 잊고 지워갑니다.
 
민주와 인권을 향한 순례자들의 성지.
잊고싶어서 즐거움을 위해서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
이 나라 마지막 남은 순교성지마져 34년을 못견디고 이가을 흉물인양 지우고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어세웁니다.
 
곳곳마다 남은 흔적따라
30년 전 그리고 20년전 찾아왔을 때
그대로 남아서 아프고 포근하게 반겨주던 감사한 그 곳들을
이제 위도 경도를 새겨야만 찾을수 있어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을 곳에 서서 사방을 돌아봅니다.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다시 찾아오면 이젠 아무것도 없이 이정표나 팻말하나 가져다 놓고
이곳에 이런 길이 있엇고 이런 건물이있었다고
귀챦은 듯 적혀있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위해서
그리고 그 기억을통해 하루라도 바르게 살기위해서
이 가을 님들이 계시던곳 거닐던곳
쓰러져가신곳 그  경위도를 가슴속에 점지합니다.
2014년 9월 20일 토요일오후 2:42:41
 
11월21일부터 34주년 5월순례연작 5,7,9,월에 이어 마지막편
51834 nov 공연합니다. 5월7월9월 광주에 머물러 살면서
광주분들 한분이라도 같이 만나  빛고을같이 걸으면서
오월얘기 나누고 싶었지만...
다가와 같이해주신 분 없었지만
34주년 마지막 이 공연엔 한분이라도 스스로 다가오셔서
5월얘기 같이 나누면서 거닐어주실 빛고을분 나타나주시길 희망하면서
작업준비중입니다.
20일까지 연락 기다립니다.같이 걷고픈 날짜와
같이가보고싶은 5월사적지 정해주시길.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오후 5:38:07
 
마지막34주년순례
34주년11월 빛고을 그 홀로순례를 시작합니다.
 
34주년 5월,,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해 바로 살려 잇기 위해서
빛고을에 머물며 그 변화를 바라봅니다.
두 달마다 한번씩 돌이켜 다시 가면서
518 34주년 작업은 이제 11월의 순례로 끝납니다.
이름없는공연 5월연작 그 57번째 작업 [34주년 11월 빛고을]
5.7.9월을 이어 십여 년의 순례마다 맞이해주던 그 정겨움 모습이
이 몇 개월을 거치며 변해 버린 80년도청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삶을 위해 덮어가는 정의를 향한 용기의 패퇴와 무심을 바라보면서.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말할 수 없어서 그저 그들의 결정을 따라 변화되어가는
그곳을 거닌 34주년 빛고을.
늦가을 금남로와 도청 앞,어리석음의 결단 아시아 문화의 중심구역으로 파내고 덮어 버린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이제는 그만 잊고 싶다 하시는 민주의 성소.
순례자들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보드 연습장이 되어 버린 광장.
뜻모를 축제들이 오월을 미명삼아
아직은 지울 수 없는  그 무거움을 밀어 내 버린 이곳에서
그래도 간혹 기적처럼 스쳐 만나는 이슬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서
11월,그 34주년 마지막 순례의 주간을 시작합니다.
19회째 맞이하는 광주인권영화제
마지막 가을 주말 전남대 용봉관에서 다시 열리는 통일을 기리는 토크콘서트
그리고 놀이패 신명이 이어주는
다시 마당극 한편.
준비하면서 꼭 한번은 같이 거닐고 싶었던
빛고을 오월의 얘기를 같이 나눌 사람을 찾았지만
그 것은 일년 내내 이뤄지지 않았고
11월 이 마지막 34주년 연작에도 같이해주는 사람 만나지 못해서
이방인은 그저 사람아닌 거리와 광장 지워져가는 건물에 물어보면서
사람은 들려주지 못하는 얘기,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말하지 않아도 당연 잊지 않고 지켜보며 살아온 사물들.
나무 흙 그리고 무등을 찾아서 그들이 만났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듣기로
마지막 11월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빛고을 34년지나 스스로의 방식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승을
3차원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 다른 3차원의 빛고을에서.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오후 3:32:21
 
  34주년빛고을 3부작 7월,9월11월.그 영상본 편집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순례자가 아닌 이방인 주거자로서의 35주기 5월행동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미뤄왔던 지난해 공연 34주년빛고을 7,9,11월]3부연작 공연영상집을
편집 마쳤습니다.
총 90일간의 순례공연기록을 수차에 걸쳐 정리하고 편집해서 3편의 공연영상집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묶는 작업.
34주년 5월은 그 어느 해보다 슬폈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얘기에 묻혀서 오히려 잊혀져 간 5월과
그 지움의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그래도 정신의 혼미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시공간과의 조우를 다룬 공연기록.
다가와 함꼐하고 보니 이제서야 보이는 또다른 좌절감과
지움의 이유.용납할  수는 없으나 이해할 수 있는 나약함.
그리고 그 나약함과 피로함의 다수가 살기 위해 이뤄가는 지움의 미학.
34주년 빛고을 7,9,11월편엔
일상의 생활환경 안에 무심의 공간이 되어 버린 5월사적지 순례를 배경으로
그래도 광주이기에 맞이하는 민주와 인권 그리고 평화에 대한 아름다운 미련의 잔재.
그리고 그 부러지지 않는 내재한 희망들과의 작은 스침과 만남.
광주인권영화제에서 마주하는 세월호유족의 목소리와
북에 다녀온 아줌마들의 통일이야기와
신은미님이 피아노연주와 함꼐불러주던 심장에 남는 사람..
광주공원과 전남대 교정에서 놀이패 신명이 이어주던 5월마당극.
오지 못한 작가없이 홀로 고국을 찾아 시립미술관 상록관에 전시된
너라도 가거라 라는 제목의 전시회.
김남주추모제에서 읽는 송경동시인의 피눈물같은 시낭송도 다시듣습니다..
아시아 문화전당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침내 스스로 지워 버린 80년도청과 놀이터가 되어 버리는 순교지.
그곳에 푸른색 핏빛먹은 꽃송이를 들고 바라보던
마지막 원형사적지의 17년 순례자의 모습이 역사가 되어
아무도 기억못할 흔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농성광장에 유배당했던 시계탑은 5월민주광장 바다를 덮은 간척지에
20세기 그 모습지워 대리석 새옷 입은 모형물로 치장하고 다시 섰습니다.
이제 광주는 이렇게 하나둘 원형을 지운 모조물로 대체하면서
마치 4대강사업처럼 민주의 흐름을 박제처럼 편리하게 가둬둘 모양입니다.
 
오월 분수대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점등되고
도청 앞 광장은 유희 뿐인 축제의 장이 서고
어리석은 아티스트 들의 재능을 사서
미디어아트라는 명분으로 그 쓰라린 도청벽에 비추며
시공을 버린 밤을 유희하기도 합니다.
 
35주년 새 연작은 빚고을의 이야기입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이 고을의 주인인 그들의 삶의 태도를 납득없이 이해합니다.
이방인은 더 이상 간섭없이 그저 존중하고 따라야 할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들에겐 빛이지만 이방인에겐 빚입니다.
그래서 빚고을에 이주한 이방인의 마지막 순례기를 준비합니다.
34주년 지난한해의 공연기록들을
광주 분들과 같이 보면서 얘기 나누고 싶어
공연영상집들을 완성했습니다.
누구라도 한 사람 언제 어디로 와서
같이 보며 차한잔 나누자고 해주면
그곳이 34주기 빛고을 얘기고
35주기 이어갈 사랑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순례자에겐 첫 표류지였던 대구보다도 더 외로운 이곳.
막막한 그리움으로 아무도 벗 만들지 못한 이곳에서
단절된 소외 앞에서 그날 님들이 겪었던 소외를 어렴풋 공감하면서
마지막 5월을 준비합니다.
빚고을에서.
 
51834july 518 34주년7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5월연작55)
http://yegie.com/51834july/page_01.htm
51834Sep.34주년9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6)
http://yegie.com/51834sep/page_01.htm
51834Sep.34주년11월 빛고을(이름없는공연 5월연작58)
http://yegie.com/51834nov/page_01.htm
2015년 1월 28일 수요일오전 1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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