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개인은,민중은 국민은 이 좁은
우주 인간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립니다.
지구별 한편 우리에게 임무지어진 조그마한
원적지.
세 번째 갑오년 맞으며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던 노랫말 되새기며
단 한 사람의 주권도 찬탈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행동 그 두번째 연작으로.
만들며 오월의 얘기와 오버랩되는 2014년.
5월 그 하늘을 구속같은 핑계로 화두삼아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어리숙하게 그러나
절실한 마음으로
공간도 얻지 못하는 쓸쓸함으로 메아리도
없는 제안하고 기다린 반복.
그리움을 용기로 홀로 거리한편에 펼쳤던
오월의 제의..
산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해도
언제나 다정히 반겨주는 넋들과의 만남으로
기다리고 그렸던 얘기들이
17년간 40개의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17년만에야 용기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그 어리석음을 돌이켜서
그날 이 후 다시 17년간.
그래서 34년이 되어서 돌이켜보는 언덕
이편에서.산사람과 함께 못하는 죽음이후같은 회향길.
그 열입곱해 동안 이 나라는 그 아픈
희생의 선물을 안고 어느만큼 진화했는지?
오히려 앞의 열일곱해 아픔 속에서도
피눈물로 이루어낸 희망의 불씨를
스스로 꺼트리고 사는 건 아닌지?
이기와 욕망에 편승해서 인간존재본연의
도리와 순리를 잃어 버린 채
자기합리화와 모르쇄로 제 시야 속 세상
안에 갇혀 의무를 조각해 나가는 것은 아닌지.
감히 근접할 수 없어서
그 아픔과 사랑이 연극이 되고 유희가
될까 봐서
한번도 그 날의 얘기를 가상으로 재현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공연이란 핑계로
대입하거나 묘사하지 않은 채
그 날의 죄악처럼 그들 자신이 될 수
없는 제3자의 모습으로 다가섰습니다.
시간을 겹쳐서 이방의 존재로서 이해와
공존을 노력했습니다.
처절하게 소외시키고 단절시켰던 그 고을에
다가가서
죄인처럼 나그네처럼 경건한 가슴으로
만나고 싶어했던 시간.
그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얘길 듣고
그 얘기따라 죽은 이 들이 들려주는 얘기만으로
그들의 흔적을 찾아다닌 작고 보잘 것
없는 순례.
하지만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을
거슬러 다가가서 만나고
고개숙여 정진코져 노력했던 시간..
51817남행열차부터 겨울여행2-33년까지.
그 작업의 흔적을 돌이켜 작품 안에 담겼던
장면들을 고르고
그 장마다 그리며 담고 싶었던 그 날의
마음을 찾아서
34년째 2월 마침내 고향처럼 다가서서
여유로 6개월의 시한부 거처를 정하고
3월,그들이 정해준 오월길따라
마흔한번째 작품으로 마흔여 오월의 사적지를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례를 바탕으로
이제는 모든 것, 스스로 지워버린 이
도시에서
지난 17년에그렸던 얘기들과
그 작품 속에 살아 움직여주었던 정겨웠던
이방인들을 다시 만나려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4월한달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처럼,
지난 17년간의 작업에 한번이라도 동행했던
사람들도 찾아보았습니다.
아무도 죽은 이는 없는데 아무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부르는 제 소리가 너무 적어서
듣지 못하였거나
들을 수 없는 곳.우연이라도 스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며 다시 다가갈
동행
아니 이어갈 얘기 나누고자 꿈속의 꿈을
꾸며 그렇게 매년 오월이 옵니다.
그리고 이제 열일곱해가 됩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17년 한번지난 34주기.
사람이 하늘인 세상,국민이 국가를 이루는
민초가 주인인 민주세상 향해서
학살당하고 희생하며 갈망해온 시간이
더디게 혹은 역류시킨 인간의 죄악.인간세의
흐름.
지난 17년을 돌아보며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잃어 버린 아니 스스로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시간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덕이편 차안에서 돌이켜보는
피안보다 더 아름다운 곳 향한 갈망
그 실천의 홀씨를 심듯
34주년 5월연작을 시작합니다...
2014년 5월 1일
목요일오전 8:51:13
34주년 그날. 17년전
그 날의 전야제와 추념식으로
16주기였던 1996년 5월.국제인권캠프
주최의 오월 순례에 동행하면서 만날 수 있었던
그리고 그곳을 돌아오면서 80년그날처럼
철저히 소외된 그 날의 도시와 나라를 바라보면서 작업을 준비했던
5.18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
세월이 흘러서 이젠 망월동엔 5.18국립묘지가
만들어지고
5월18일 오전엔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국가 기념일 행사가 열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리해서 더더욱 그리워지는
민주주의가 가득찬 나라.
그들을 추모하는 노래마저 마음껏 부를
수 없고
전야제 끝난 밤 금남로와 충장로 한편에서
오손도손 모여 담소하면서 얘기하던 벗들과
동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
오월의 사적지는 모두 지워지고 그 날의
그 모습 그대로를 찾아 순례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두세 곳 밖에 남지 않은 곳.
34주년 5월.
이름없는공연은 그 5월연작의 첫 작업이었던
51817을 다시 준비합니다.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 그날 서울에서의
전야제와 추념식을 위해
광주를 오가며 함께 제례를 준비하고,
도서관을 찾아서 그 날의 신문자료들을
다시 찾고
80년 5월부터 11월25일까지의 중앙지
편집국의 모습을 찾아서 공유했던
그 날의 얘기들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날 이 후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들.17년
이어가면서 계속 그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날의 그 모습대로 멎어 버린 아름다운
모습들 기억하면서
그들의 음성과 흐려진 모습모아
34주년 같은 날에 34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이
아닌
17주년 전야제와 추념식을 빛고을 넋들
앞에 홀로 준비합니다.
남겨진 1.2부공연의 대본과
2부의 조각영상.
그 위에 그려보는 17년의 흐름과
변해 버린 오늘의 얘기 아직도 변함없이
오히려 더더욱 모질고 교활하게 재현되는
역사의 후퇴.
5월17일 34주년 5월전야제가 끝난 금남로
한편에서
34주년 5월 그 작업의 복기 첫
작업 ,
마흔두 번째 5월연작.
51834-1 오늘같은 밤이면을 준비합니다.
초연의 대본을 바탕으로 돌이켜 그려
다짐하면서.
2014년 5월 1일
목요일오전 10:55:23

.
오늘같은밤이면(51817
1부) 초연공연대본
신영철
작 구성
5,18
민주항쟁 17주년전야제 초연:1997.5.17 여해문화공간
무대,전면왼쪽 신문사편집국
그 뒷쪽 흐름의
사무실
후면 오른쪽 피아노와 거리.
쇼윈도우(영상,스크린)
1.(뒷면흐름.34세 금준)
흐름의 사무실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 34세의
금준,
흐름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방금 전화메세지를 녹음한
듯 전화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방 안을 정리한 뒤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간다.
2.(뒷면흐름.비어있음)
무대에 남는 흐름의 빈 사무실.
이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빈사무실 공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3.(거리)
거리에 저녁녘 빛이 들어오면
비오는 거리.
4.(편집국.제시)
편집국.
제시의 공간일까?
제시,퇴근을 준비하는 듯
책상을 정리한 후
전화를 걸어본다.
5(뒷면흐름.비어있음)
전화벨소리
흐름의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벨
자동응답기 목소리
금준-안녕하세요. 사무실입니다.
광주캠프참가준비로 일찍
사무실을 비웁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듣고 삐-소리가
난후 메시지를 녹음하는 제시
6.(편집국.제시)
제시-응. 나 제시야. 함께
내려가고 싶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있어 여기 남으려 해.
17년동안 그 분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던 그 부담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이 작업에 참여하려는 내
행동.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죄를
조금이라도 파괴시켜주는
용기가 되었으면 해.
제시 메시지 끝남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음악-카페에서
제시 수화기를 놓는다
7.(뒷면흐름.비어있음)
흐름의 사무실.
빈 공간의 시간의 변화.
8.(편집국.제시)
제시,편집국안을 회상하듯
거닐어보는 제시
그의 목소리-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태해지고
선은 점차 악이나 고루함으로
되어져 가는 것 같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에
대해 고민하거나 그것을
잡고 놓치못하며 추구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소외되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인간적이란
말로 포장되며 세상을
점차 퇴화시켜가고있어.
지난 17년의 역사 안에서도
그게 보여.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면서
자신이 그 옛날했던
말과 사고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퇴화를 인정하는 이는
없어.
이것이 역사와 인류의 슬픔인
것 같아.
반대로 변하지 않는 변질이
있지.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과 고뇌는
항상 이기적 신상
잡기에만 있었지.
늘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비굴화시키고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처신의
맥을 같이해.
즉 일관된 변절. 그리고 한번도
후회하거나 죄를
인정치못하는 존재들.
언론투이 얘기를 하다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언론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어.
모두들 버티다 짤린 존재들.
그 버팀 안에는 항상 비굴한
현실주의적 타협이 들어있어.